단풍




한 여름 내 쪼이던 태양 빛을
모두 마시고 심장이 터져
살을 뚫고 뿜어져 나온 선혈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
물 들어 버린 고통의 빛깔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새의 소리가 아름답고
몇 십년 만에 피는 꽃의 향기가 진하고
어둠 직전의 노을이 더욱 붉게 타오르듯
사위어 가는 생명의 손짓이
나그네의 발길을 붙든다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돌아 가는
그대 떠나는 길목에
쓸쓸한 미소로 전송하는 바람과
별리의 입맞춤을 나누고
미련 없이 가볍게 세상을 버리는 낙엽

무심히 지나쳐 갈 수 없는 길손은
떨어져 누운 잎 서너 장
책갈피에 끼워
생명의 순종과 아픔
거스릴 수 없는 계절의 순리(順理)를
오래도록 간직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