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칼을 들고 밭두렁을 휘젓고 다닌 것은 순전히 봄햇살 때문이었다.
이 화창한 봄날 방 안에 틀어박혀 자잘한 글자들과 씨름 하는게 갑자기 짜증이 났다.
눈병이 도져서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고통스럽고 눈부신 햇살이 나를 마구 유혹하는거였다.
밖에 나가 보니 뜨락에는 살구꽃, 진달래, 히야신스,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방에 틀어 박혀 있던 여자가 갑자기 칼을 들고 나타나 들판을 휘젓고 다녔다
그것도 빨간 브라우스에 빨간 모자를 눌러쓰고 빨간 장화를 신은 모습이었다는걸 나중에 생각해내고
웃음이 났다. 얼마나 튀는 옷차림새였을까?
어쨋거나 어제 나는 봄을 캤다. 지천으로 널린 쑥이며 봄나물을 한 바구니 캐며 흙 냄새를 맡으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물을 캐고 흰머리 소년(?)은 삽으로 텃밭을 갈아 엎었다
작년에 길길이 자라서 뻣뻣한 대만 남은 아주까리 가지를 빨간 장화로 터프하게 부러트리는 내 모습을 보며
대견스럽다는 듯 흰머리 소년이 말했다.
"아주 힘이 쎈데"
"흥 이까짓건 한 손가락으로도 부러트리겠는걸"(속으로만)
내친김에 흰머리 소년은 삽을 나는 칼을 들고 동네를 반 바퀴쯤 돌았다. 누가 보면 식목일 행사 하러 가는줄
알았겠다. 길가에 무리져 피어있는 보라색 제비꽃을 두 삽 퍼서 우리집 마당에 옮겨 심었다.
내년에는 민들레와 함께 보라색 제비꽃이 마당 가득히 피어나길 바라면서-----
                                                            
                                                                  화창한 봄날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