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온 나라가 온통 흰 눈으로 덮여 다음날 다시 거의 모든 국민들이 발이 묶여 많은 고생들을 하셨죠.
여리기도 보통 같으면 한 시간 정도 걸려 가는 출근길이 그 날은 무려 2시간 반이나 지나서 겨우 도착하였답니다.

여기저기에서 적지 않은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였고요


재작년 년 말,
정확하게 말하면 2006년 12월 29일 오후 10시경에 잘 난 여리기는  그 해 일 년 별일 없이 잘 지내다가
기어코 끝판에 생각지도 못했던 자동차 접촉 사고를 내고 말았답니다.
저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상대방도 이해심 많으신 분이라 원만하게 수습을 하였습니다.
 
좌우지간 그 다음날부터 가여운 여리기는 어쩔 수 없이 버스로 출,퇴근하게 되었습니다.
안전하고 시간도 잘 지켜지는 전철을 타고 다니면 좋겠습니다만  멀리 돌아서 가기 때문에 시간이 엄청 걸리겠더라구요.
천만다행으로 안양시내에서 약국이 있는 죽전 가까이 있는 오리역까지 다니는 시외버스가 있기에
그 좌석버스를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보통 자가용으로 출근할 때에는 8시에서 8시 10분경에 집에서 출발합니다만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늦어도 7시 2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하고요 버스는 20분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됩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안양 중심가까지 와서 다시 그 좌석버스를 기다려야 합니다.
아침 이른 시간에 그 버스를 타는 손님은 거의 없는 편이라서 어떤 날은 저 혼자서  전세 내서 한 참을 갈 때도 있습니다.
배차 시간에 조금만 시간이 어긋나면 30분을 기다려야 하고 아주 고약한 운전기사를  만나면 여리기가 타야 할 정류장을
생략한 체 지나쳐 버려서 거의 한 시간을 덜덜 떨면서 기다리느라 기분을 잡치기도 하였지요.
이런 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규칙들이 잘 지켜져야 국민들이 편안하시게 되는 건데...
 
평소에는 운전하고 다니느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분들을 눈여겨 살펴보지를 못했는데
자동차 사고 덕분에 버스 기다리는 동안 주위사람들을 살펴보곤 하였습니다.
 
학생들도 있고 아주머니들도 계시고 이른 시간임에도 의외로 나이 드신 분들도 눈에 띱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 다니시는 젊은이들로 여성분들도 많더군요.
추운 날씨임에도 모두 다 씩씩하고 힘차게 일터로 향하는 모습이  여리기가 젊었을 때 그랬었던 바로 그 그림이더군요.

젊었다는 것 이외에는 유별나게 가진 것도 없이 그저 열심히 일했던 여리기의 그 나이의 청춘들이
왠지 듬직하게 보이고 예쁘게도 보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지나가는 겨울바람같이 싸~한 심정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리 우울한 마음은 아니었답니다.
그들에게도 틀림없이 나름대로의 꿈과 희망이 있을 테니까요.
그들을 보면서 좀 더 열심히 살자는 생각도 가져보고 인생의 어려움에 대하여 투덜거리던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하였지요.

비록 그들은 오늘이 힘들고 괴롭고 앞이 안 보인다고 여길지 몰라도
그들보다 훨씬 앞서서 삶을 살아온 경험자로서의 나는 그들에게도 현재보다는 더 나은 내일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고
그래서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펄펄 함박눈이 내리더군요.
눈을 맞으면서 출근하는 기분 정말로 짱입디다.
이렇게 눈을 마음껏 맞으면서 가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추워서 귀 시리면 쓰려고 준비하였던 벙거지와 장갑을 착용하면 아무 문제없답니다.
이럴 때에는 그저 따스한 것이 최고랍니다.
멋진 점퍼나 비싼 코트, 좋은 외투 등은 오히려 걸리적 거립니다. 버스타고 다닐 때에는 편안하면 그만이잖아요.
남 의식할 것도 없고 그럴 나이도 아니며  거들먹거릴 필요도 없고 그런다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을 것이니까요
 
내리는 눈을 맞으면서 잠시 낭만적인 무드에 젖어봅니다.
옆에 마음에 맞는 이성이라도 있었으면 멋있겠다고 아침부터 별 난 상상도 해 보았죠.
에헤헤헤 인일여고 출신 여성이라면 더 좋을 텐데 라고도 생각하였고요
 
이렇게 오고 가면서 버스 출퇴근을 하다 보니 그 간 무심코 지나쳤던 세상만사가
눈에 새롭게 들어왔습니다.
 
아침에는 다들 눈들을 감고 명상들을 하는지 잠을 자는지 조용하지만
저녁에는 한 편에서는 피곤들 하여 쉬고 있는 와중에 술 한 잔 거나하게 들이키고는
주위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허벌나게 떠들어 제키는 분들도 더러는 계십니다.
남 녀 불문하고 엄청 시끄럽게들 잘난 이야기들 합디다.
처음에는 이런 몰상식하고 예의 없는 사람들이 있나 하면서 무지 속상해하였으나
달리 생각하면 그것도 세상 살아가는 한 모습이라 여겨져서 오히려 즐기면서 다녔답니다.
 
자가용으로 다닐 때에는 거의 가지 않던 안양시내에 들어서면서 건물들을 둘러봅니다.

어라 “카이로프락틱”?
학중이 녀석이 허리가 좋지가 않다던데 이곳에 한 번 가보라고 해야겄네.

“대물림 두부정식”?
오호 고 넘 참 이름 한번 맛갈스럽게 잘도 지었네. 한 번 마눌하고 먹으러 와야겠군.

“OO가발"점이라.  
내 머리를 위해서라도, 약국 고객들을 위하는 차원에서라도 이곳은 꼭 들러봐야 하는데...

번쩍 번쩍 거리는 네온사인을 올려다보니 “쉘 위 댄스”
느지막하게 한 번 사건을 만들어 봐? 한 달 강습료는 얼마나 되려나?

“XX색소폰 강습소”라
나이 들어 은퇴하면 취미생활로 색소폰을 배워봐야지.

이렇게 재밋는 구경을 하면서 출퇴근 하였습니다.

좌석버스 안양 종점에서 우리 집까지 오려면 다시 한 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 시각은 11시 가깝기 때문에 집 방향의 버스가 금방 금방 잘 오지 않습니다.
시내버스를 타는 일이 없다보니 행선지가 집 부근으로 지나갈 것 같아 운전기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타다보면
엉뚱한 곳으로 가는 통에 허겁지겁 도중에서 하차하여 걸어서 집으로 올 때도 한두 번 있었지요.
이럴 때에는 늦은 시간이니 가능하면 넓은 한 길로 다닙니다.

그 날도 도중에서 내려 신경질을 내면서 걷고 있다가 아주 멋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교차로 한 모퉁이에 군고구마 장수가 계시더군요.
고구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빠알간 숯불이 있는 드럼통은 보기만 해도 따스해지더군요.
늦은 시간임에도 가로등과 주위 상점들의 불빛을 이용하여 중년의 듬직한 군고구마 사장님께서 책을 읽고 있지 않습니까?
가슴까지 훈훈해집니다.
아하 이런 괜찮은 인생살이도 있네.
 
“3000원어치 주세요” 하니 덤으로 한 개 더 주어 따끈따끈한 녀석이 5-6개 되더군요.
더욱 걸음을 빨리하여 집에 들어가 터억하니 내 놓으니 집사람이 놀랍디다.
평소에 뭘 사가지고 들어가는 일이 거의 없는 재미없는 남편이 자동차사고로 걸어 다니게 되더니만
별 넘 의 짓 다 하는구나 여기는 듯 하면서도 싫지는 않았나봅니다. 맛나게 잘도 먹는 걸 보나까 말입니다.
 
여리기는 먹는 것 그다지 밝히는 넘이 아니기 때문에 군것질 사들고 간다는 것은 특별한 날
예를 들면 결혼기념일이나 애들 생일이나 마나님 생일 정도입니다.
 
군고구마를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아서 그 다음날은 뭔가 또 괜찮은 것이 있나 살펴보고파
좌석버스 종점에서부터 일부러 걸어서 집으로 오다보니 손으로 만든 만두랑  찐빵을 파는 가게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것도 한 번 사 보았답니다.
캬~아~  고것도 오랜만에 먹어보니 각각 나름대로의 기분좋은 맛이 있습디다.
덕분에 일주일가량을 이렇게 살아보았습니다.

때로는 이런 경우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바쁘게 살다보면서 놓쳤던, 예전에 우리들이 살았던 그 시절이 아직도 있더라고요.

“메밀묵 사아~~~려”
“찹쌀떡 사아~~~려”

그 소리가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