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이맘때 쯤 우리 송년모임 한 날두 펑펑 눈이 쏟아졌다.
유난히 붉은 하늘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도심의 네온 싸인 불빛에 반사되어서 그려려니 생각했는데
어제밤 창 밖엔 소리없이 밤새 내리는 눈을
배경으로 한 하늘 역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포근하게 느껴진 밤
겨울밤은 깊어만 가는데
유난히 맑아진 기억 저편으로의 여행은 잠을 멀리 쫒아버리고
난 어느새 어느 젊은날
늦가을과 초겨울 경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서로의 갈길을 예견했는지
어쩜 마지막 여행이 되어버린
그날 !~~

11월을 보내고 마지막 단풍잎이 겨울을 재촉할 즈음
우리 친구 다섯은
수덕사로 여행을 떠났다.

수덕사 앞마당 커다란 느티 나무엔 아직 단풍든 잔엽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이응노 화백의 부인이 주인인 수덕 여관에 여장을 푼 우리들은
그 유명한 김일엽스님도 찾아가 뵙고
관세음보살처럼  후덕한 얼굴에 범접할수 없는 기품을 느끼게하는 카리스마에 주춤 한발 물러서 뵈었는데
조용히 미소지며 반기는 그 얼굴빛은 유난히도 희고 광채가 났었다는 기억이 선명하다.

밤깊은줄 모르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었던 우리들~~
창호지 창문이 유난이 훤했던것을  
그때까진 밤새 소리없이 내리던 눈이란 생각을 전혀 못했었다.

잠시 눈붙이고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난 우리에겐 온통 천지가 새하얀
설국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드나들면서
우린 얼마나 환호했던지......
천지를 떠나갈듯 환성을 지르며 기뻐하던 우리에겐
현실적인 걱정이 그 기쁨을 잠재웠다.

완전 마비된 교통으로 집에 갈일이 난감해 졌는데
궁하면 통한다구 어찌어찌하여 지금의 봉고차 비슷한 다인승 차에 간신히 빌붙어 얻어타고
삽교로 나오던중
점점 옆으로 기우는듯한 차는 눈덮인 논두렁에 처박히고
차속에서 한바퀴 구른 우리들은
밤새내린 푸근 푸근한 눈 덕분에 아무런 부상없이
긴긴 눈길을 걸어서 기차역 까지 지치지 않고 걸어간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크리스 마스 풍경같던 그림같은 마을들......

지금 옆지기와  잠시 떨어져
그황홀한 눈길을 같이 하지 못한 아쉬움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도 그시절 생각하며 나를 놀리는 친구들~~

그해를 보낸 다음해엔
우린 모두 각자의 길을 갔는데
한 친구는 수녀원으로.....
또 한친구는 낭군과 함께 미국으로.....
나는 우리 옆지기와 보금자리 꾸미고
나머지 두친구는 화려한 싱글의 시간을 만끽하고
몇해후 모두 좋은 신랑감 만나 신접 살림 차리고......

마치 이별을 예고하는 듯 마지막 여행이 되고 말았다.

이런 젊은날의 기억이 어제밤 유난히 잠못이루는 밤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눈발은 춤추듯 휘날리는데
젊은 날 소중한 추억을 같이 했던 친구들 이름을 불러본다.

은숙아!~~
순자야!~~
혜숙아!~~
영순아!~~

내가 그때처럼  순수한 정열이 있다면
소복히 쌓인 눈밭에 너희들 이름을 새겨 볼텐데......
우리 옆지기 이름 눈밭에 새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