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리기가 학창시절 여학생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실패했던 젊은날의 추억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네요
그녀석 성격만큼이나 말 한나 하나가 영롱한 구슬처럼 투명하니 속 마음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이는군요
허락없는 펌을 용서바라며.... >



신입생으로서 새학기가 되고 4월이 오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3월에는 대학생활에 필요한 오리엔테이션, 명칭도 가지가지인 신입생환영회, 전국 각지에서 모인
낯 선 친구들과의 만남, 아직은 피곤하기만한 기차통학에의 적응등으로 대학 1학년 초기를 바쁘게
지내다가 한결 온화해진  4월을 맞이하면서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오르게 된다.

말로만 듣던 미팅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가슴이 떨리고 은근히 기대가 되는 기분을 한편으로는 숨기기도 한다.
남자끼리 있을 때에야 궂이 내숭떨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의리는 있어서들 4년을 함께 지낼
班 여학생들 앞에서는 노골적으로 내색을 할 수야 없지않은가.

지금은 너무나도 좋은 세상이 되어서 국민학교, 아니지 어쩜 유치원시절부터 이성친구들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만 우리때에는 대학에나 들어가야지 본격적인 여자들과의
교제를 할 수가 있었잖은가.

하긴 어느 시절에나 뛰어난 녀석들은 각 방면에 있기 마련이라 고등학교시절에도 옆집 여학생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슬쩍 슬쩍 소문을 내고 다니는 친구들도 없지는 않았으며 그렇게까지는 못해도
어떤 넘들은 월담하여 성적올려준다는 요술 방석을 집어 오기도 하였다는데 난 그 때 뭘하고 있었지?

이제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충청도 양반출신의 한 샌님은 오밤중에 개 한마리 끌고서 한창 기분
오르려하는 아베크족에 접근하여 분위기 망쳐놓기를 수시로 하다가 엉뚱하게 개구멍을 통하여
여학교에 침입하여 몽유병 환자처럼 그 곳 라이락 향기에 취하여 밤새도록 흐느적거리곤 하였다더군.

개나 들낙거리는 통로를 몰래 다니시느라 수고많이 하셨더구만.


요사이는 전,후기 대학이 없어서 그 전보다는 덜하지않나 여겨지는데 그 당시에는 후기대학생들은
참으로 가슴저린 차별(?)을 많이 겪었다.
미팅 행사에도 여지없이 그 영향을 피해가기가 쉽지않았다.

군대다녀 오느라 연장자가 된 죄로 어거지로 우리학과의 대표가 된 non ne께서 신입생 필수 과목인
미팅을 위하여 여기저기 여학교를 쑤셔보기도 하였으나 외모에서부터 신선한 감각이 떨어져서 그런지,
아님 후기대학이라 그런지 도무지 성사가 되지를 아니하여 모든 남학생들 한테서는 원성을, 여학생들
한테서는 조롱을 받아야만 했었다.

거의 한 달이나 지난 4월 말쯤에 드디어 미팅약속이 되었단다.
상대는 걸맞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지금 찬 밥 더운 밥 따질 때인가?
급해도 너무나들 급하던 시기였었지.
물론 나도 참가를 해야지.
내가 누군데~~  우리과를 대표하는 요샛말로 얼짱이잖은가.


그런데 돌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인명그릅의 왕초 박일복이가 고교도 졸업했겠다 이제는 여엇한 성인이 되었으니 그 기념으로
각자 짝을 만들어서 야유회 한 번 가잔다.
이런 비러먹을 일이 있나.

그 당시에 깔치가 있는 넘은 그 녀석뿐이었고 나머지는 완전 외로운 기러기였거늘.
아무튼 알아서들 해결하기로 하였고 놀러가는 장소는 아마도 작약도가 아니었나 싶다.

어찌된 이유에서 그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영직이랑 한 편이 되어 하루 날 잡아서 남대문시장
맞은 편, 옛날 서울시경 앞 정류장을 헌팅장소로 잡아 아가씨 꼬시는 일을 벌리기로 하였다.
아마도 녀석이나 나나 혼자서는 도저히 이런 중대한 일을 해 볼 염두가 없었기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연합전선을 형성하게 되었으리라.


서울역 앞 버스정류장도 학생들이 많은 곳이지만 그 곳에는 인천으로 통학하는 안면있는
남녀학생들이 바글거렸고, 인천 여학생인줄 모르고 혹 대쉬하였다가 나중에 소문이라도 나서
쪽팔리는 꼴 보일 수도 있겠다싶어 서울역에서 좀 떨어져 있으면서 명동에서도 그리 멀지않은,
어느정도 물 좋을 것 같은 서루시경 앞을 선정했던 것 같았다.

자 이제는 실행만이 남아 있는데 그나 나나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라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 이를때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있는 상식 없는 지식 동원하면서 작전을 짜 보았으나 기막힌 수는 아니 보이고
무조건 부닥쳐 보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다.

"조팔계(영직이 별명), 네가 그래도 이야기는 구수하게, 넉살좋게 잘 하잖니. 난 말도 더듬고..."
"뭔소리여 네가 인물도 출중하고 풍기는 인품도 바람둥이처럼 보이지않고 순진하게 보이잖니.
무엇보다도 첫 인상이 헌팅의 가장 성공률을 좌우하는 요인이란다"

한 참을 정류장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마음 약하지만 친구를 위해서는 없던 용기도 불러 일으키는
쾌남아 여리기가 나서서 우선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그래 말보다는 우선은 얼굴이란 말이 맞기는 맞아. 내가 나서마...>

자 그럼 누구를 고른다?
한 명한테 말을 걸까? 그래야만 말 붙이기도 쉽고 영직이도 옆에서 거들면 그 녀도 차마 거절하기
어려울테지.
아니지. 그래도 두 명한테 말을 걸어야 한 명이라도 응할 의사가 있으면 성사되기가 쉽지않을까?
어이구 왜 이리 요 것 저 것 따져보고 결정해야 할 일이 많을꼬?

댓쉬하기도 전에 기력이 다하고  진이 다 빠지는 것 같다.

에이 우선 쉽게, 맘 편하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부담이 덜 한 한 여성에게 올인하는 것이 낫겠다싶어
단독 찬스를 택했다.

그러면 얼굴은 어떤 형이 좋을까? 미인형, 아님 착한 형, 아님 무난한 형?    키는......
행동에 앞선 너무나 깊은 사고는 좋은 결과와는 상극이라는데 어이하여 이다지도 헤매는고?
"노력하는 동안은 방황한다"고 하였지만  이건 "방황하는 동안에는 노력한다"가 되겠다.

한 참을 공격목표를 탐색하다가 첫 인상에 개성이 강하게 생긴 여자는 아무래도 氣에서 여리기가
밀릴 것 같아 피하기로 하고 순하게 생긴, 말 붙이기가 쉬울 것 같은 여성을 선택하였다.

가자!!!!

심호흡 한 번 크게하고 목표물에 접근하는 순간 그 물체가 낌새를 알아차린 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치타가 포획물에 달려가듯 재빠르게 다가가 "저 실례합니다만 차나 한 잔 하실까요"
숨도 쉬지않고 한 숨에 내뱄어버렸다.
호흡이 순조롭지 못하면 말이 막히고 산통이 다 깨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단박에 쏫아버렸다.
미리 이 것 저 것 마련하였던 멋진 문구는 그 순간에는 전혀 무용지물이었다.

하~ 이런,
이 여자분 힐끔 처다보더니 말도 없이 방금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는 시내버스로 빨려들어간다.
이잉~! 댓구 한마디 듣지도 못하고 정말이지 닭 쫓던 개 모양 멀거니 멀어저가는 뒷모습만 바라보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하여 가슴도 벌렁 벌렁거린다. 다리도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눈도 아마 돌았었을걸?

에이 다이지(돼지)녀석, 지가 한 번 해 볼것이지..  이게 무슨 망신이람.
아무리 애를 써도 후회막급한 생각만 떠오르고 마음이 진정이 되지를 않는다.
살아 생전 이런 망측한 일은 처음당하기에 여간해서는 그 속상함, 좌절감, 어리석음, 낭패감,
애꿋은 그 여인에 대한 끝없는 저주감등으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영직이보고 한 번 해보라는 말도 하기싫다.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않고 얼굴도 보기싫다.
그저 집으로 가고만싶다.

지금, 아니지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 알았지만, 세상에 어느 여자가 생판 모르는 녀석이 느닷없이
달려와 커피 한 잔 마시자는데 두말없이 온단 말인가?  만약에 그러자고 하였다면 그 여자는
온전한 여인이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 당시 여리기의 마음에는 말 한 번 건네면 어쩜 가능도 하겠다는 생각이 분명히 존재했었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틀림없이 그대로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니까 시도 했었으리라.
말 한마디 건네면 좌우지간 예스까 노까 답변은 어김없이 올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얼마나 어리석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진하였던가?
여자와의 관계는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풋사나이가 알 수 있었으리오.


그리하여 딱 한 번의 역사적인 길거리 사건을 끝으로 새내기 일학년때의 걸 헌팅은 막을 내렸다.
얼마나 그 일로 인하여 자존심이 상하였던지 모르는 여학생에게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었고
해서 일학년때 통학하면서 이야기 나눈 여학생은 아마 같은 반 동료이었거나 국교 동창뿐이었지 싶다.

그렇다면 인명클럽의 야유회는 어찌 되었을까?

대학교 미팅도 약속이 되어 있었으나 박일복이의 후환이 두려워 서울시경 앞에서의 그 망신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끼리의 야유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에 몇 명이나 짝을 데리고 나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요사이 다 늙게 혁혁한 명성을 날리고
계신 우리의 장양국군도 그 시절에는 어벙한 넘이라 물론 혼자서 나타나셨을 것이다.

싱글맨들은 그 유명한 <현지 조달>에 목숨을 걸기로 하였다.
여러명이 있었으니 뭔 넘의 용기들이 났었는지 아님 일복이의 호통에 죽어라 달려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렵지 않게 즉시 조달에 성공하였다.


평소에 여성분에 대하여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 여리기여서 서울로 통학하면서 수많은 여학생들과의
만나는 기회도 많았음에도 엄격한 자체 선택사항에 맞지를 않으면 눈도 주지않던,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면서 여자에 대해서만큼은 그 기세등등하던 넘이 현지 조달에 만족했을리가 있었을까?

이제는 나도 눈치가 있고 세상 물정도 어느정도 알아차려서 그때 그때 분위기 맞추는데 전혀 어색치
않는 수준까지 왔으나 젊었을 시절에는 정말로 마음에 없는 말이나 행동을 숨기기가 쉽지 않았었다.

영직이는 신나게 파트너와 히히닥거리고 있다.
여리기는 옆에 앉은 여성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를 아니하여 이름도 물어보지 아니하고 내버려두고
혼자서 바다에 돌이나 던지고 있었다.
어쩜 나에게 일생 일대의 커다란 수치감을 안겨준 그러나 따지고 보면 아무 죄없는 버스 정류장의
그 여인에 대한 앙가품을 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려나?

강이나 호수에서 얇고 납작한 돌을 비스듬하게 던지어 물장구가 몇 번이나 생기는지를 하는 바로
그 운동을 기를 쓰고 열중하고 있었으니 분위기 망치는 폭탄이었을 것이다.
이런 넘들은 다시는 놀러가는데 끼여주면 안된다.
그 여자분도 그날 더럽게 재수없었다고 이를 갈았으리라.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그 분에게 바보같은 짓을 해서 미안스럽고 죄송하다.


이런 기막힌 사연으로 인하여 가여운 여리기는  대학 미팅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는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고 남부끄러운 새내기 신입생 생활을 보냈다.
"현지 조달"도 그 긴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는 허망한 경험으로 끝나버렸다.


첫 걸 헌팅의 실패는 그 후 여리기의 대학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다시는 함부로 여학생들에게
들이대는 우를 범하지 않고 안전하게 통학이나 하는 쫌팽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기나긴 대학시절동안, 많지도 않은 여학생과의 접속 실패담에서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아~~~  그 누가 말했던가 "청춘은 아름다워라"라고.




  


  







이건식 ~ 허~~~~~어~~~그거 차~암~~

장양국 ~ 오~잉!! 여리기가 청춘고백을 하셧네!!네가 시경앞에서 얼쩡거리것은 내가 알지^그때 여리기 먼 친척벌 여동생이 시경국장 비서로 있을 때 인데 혹시 여학생 꼬시다 불량배 한테 얻어 터지면 공권력의 도움을 받을 요량으로 시경앞 버스정류장에서 얼쩡거린 것 아닌감 ㅋㅋ 한가지 충고의 말씀: 세상이 얼마나 변한지 아는가? 모르는가? 여성의 힘이 하늘을 찌를 기세데 여성보고 "깔치"라니?? 자네 정신이 있는겨 없는겨?? 아무래도 뭇여성들로 부터 1013홈피 폐쇄하라고 사법당국에 고발할까 드렵다!! 그땐 네가 책임 질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