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한선민
글 수 2,982
허 인님의 과찬에 몸 둘바를 몰라 허둥대다 이제야 인사드립니다.
허 인님이 생각하시는 그 이상으로 어머님 가까이에서 많은걸 느끼며 배우고 있는 저로서는 오히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의외로 많은 인일 동문으로 부터 "지존" 의 대우를 받고 계시는 허 인님은 역시 어머님의 자랑스러운 아드님이시며.
(그러나 혹여 어머님께서 또 다른 염려를 하시지나 않을까 해서 말씀드리지는 않겠음)
어머님 또한 잘 아시다시피 워낙 강인하시고 철저한 분이시니 약속하셨드시 " 백수연" 준비 잊지마시고 하시는 일 더욱 번창하시고 행복하시기 빕니다.
3회동기들께,
우선 반갑고 미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그간 총동창회는 물론 3회동기들의 맹활약상을 먼 발치에서나마 감탄해 오던 차에
뜻밖의 일로 거명이 되어 매우 염치없게 생각해.
변명같지만 아직은 공직 (인천시 여성사회교육기관)에 있는 몸이니 널리 이해바라며,
앞서 허 인(제고17회)님의 어머님께서는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과 더불어 사시고자
자원봉사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정착시키신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며,
20여년가까이 그분의 활동에 행정적인 지원을 해 오면서 맺어진 인연으로
그 분의 산수연을 함께 준비했을 뿐인데...
암튼 동창회홈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3회동기들과 그외 동문여러분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며,
넉넉하고 편안한 명절 보내기 바랍니다.
>임 선자 관장님,
>
>오랜동안 저희 어머니을 곁에서 봐 주셔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었지만
>이번 저희 집안 일에 여러가지로 애 써 주신 점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
>
>제가 예전에 매일 인일여고 여학생들 뒤만 쫓아 다니다가
>여러가지로 부족하여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
>할수없이 타향에서 색시를 구하여 결혼했을 정도로
>인일여고와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지만
>이번에 임 관장님이 3회이신 것을 안 기회로
>잘 좀 보여볼 까 합니다.
>
>40대같은 용안으로 사람들을 계속 놀라게 하시고
>건강하시고 행운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
>저는 앞으로 상당기간 한국에 갈 계획이 없으니
>이곳에서 뵙고 인사드릴 기회가 있었으면하고 희망합니다.
>
>또한 아시는 것보다 제가 발 문수가 다소 넓으니
>혹시 제게 상의하실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다시한번 감사드리고 좋은 인연 계속해 나가겠읍니다.
>
>
>
>PS :
>
>제가 보낸 e mail이 잘 들어가지 않는 것 같고
>전화로 감사인사 드리는 것 보다는
>글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은 없고
>다행히 인일게시판을 보시는 것 같아
>혹시 불편하실지도 모르는데,
>외람되게 이곳에 글을 올렸읍니다.
>쓰고 싶은 내용은 더 많지만 public한 곳이니
>이 글보다 마음은 더 감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 바랍니다.
>
>
2005.09.17 03:00:26 (*.27.17.127)
선자야, 선자야. 임선자야. 반갑다. 반가워.
얼마나 기다렸다구........
감정적으로 (중고교시절의 복숭아빛 순수한 감정을 지니고서....라는 뜻)
사무적으로 (너를 통하여 이루고싶은 일이 한가지 있었기에.....라는 의미) 무척이나 기다렸단다.
너도 공직에 있는 몸이니 잘 알겠지만
나도 내 공직, 직책에 충실하기위하여
(해외홍보대사거든. 내가........우하하하~~~~~~~~ 웃지마)
우리 동기 이재선이가 부탁하는 장미선찾기를 기어코 한번 성사를 시켜보고자 노심초사하던차에
어쩌면 너를 통하여 뉴저지의 저명인사의 힘을 빌리면 혹시? 무슨 서광이 비치지나 않을까해서 말이야.
(이해를 돕기위하여 여기 우리 게시판 608 번과 619 번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내가 노심초사했다는 사연은 이렇단다.
동북부 5박 6일의 마지막 날 = 뉴욕.
그 뉴욕 가던날, 보스턴보고 뉴포트보고 뉴욕에는 어두워서야 입성했는데
실지 우리가 저녁식사를 한 곳은 맨하탄이 아니고 뉴저지였어.
가이드말이 한일관이라는 식당은 뉴저지에 하나뿐이라기에
뉴저지 들어서면서부터 가슴이 설레었단다.
우리가 저녁식사하는 곳에서 가깝다면 난 저녁 안 먹고 한일관으로 가서 물어보리라 속으로 맘 먹었지.
....마는 우리가 식사를 한 원조라는 선상식당에서 한일관은 꽤 멀었고, 또 너무 늦었고.
내가 택시로 갔다온다 한들 일행과 합류하기에 너무 늦을 수도 있겠고
이래저래 단념하고 숙소가 어딘지
숙소정해지면 어떻게 해 보리라...하고 2차 작전을 세웠지만
숙소라는 곳이 또 버스로 한참을 달려서
씽씽 차들이 줄달음질치는 고속도로변 holiday inn 이라는 호텔인거라.
거기서는 더더구나 한일관 갈 꿈도 못 꾸겠더라구. 거기서는 동서남북도 가늠이 안 되니 어쩌겠어?
지척에 와 있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원통함에 눈물을 머금고 뉴저지를 떠났다는거 아니니?
며칠후
버지니아에 돌아와서 이복순네 집에서 점심 먹던날
복순이가 한일관에 전화해보긴 했는데 "모른다"는 간단한 답변이었어.
내 생각에 전화 받은 사람은 필경 한일관 내력을 잘 모르는 종업원쯤일거 같아서
누군가가 직접 가서 알아보면 "한병희" 씨의 소식을 알것같은 감이 드는거야.
그래서말인데
뉴저지에 사시고 뉴저지를 잘 아시고 한일관에서 식사를 하실 기회가 있으실지도 모를
뉴저지 거주자 분에게 부탁을 해 봤으면 하는 궁리가 떠오르게 된거지.
그러던차에
뉴저지 허인씨께서 우리 방에 나타나셨으니
내가 (x11) 요렇게 되지 않을 수가 있겠니?
그래도 차마 만나자마자 댓바람에 그런 부탁 할 수도 없고 (나도 아직 좀 체면이 남아있걸랑)
또 그 양반이 나를 찾아오신 것도 아니고
그리하야 너, 임관장님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란다.
이 total story 를 들으면 재선이가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내 인생 최초의 감투를 놓치고싶지않고 (x7) 깔깔깔 (x18)
40 년전 내 짝꿍의 부탁을 꼬옥 들어주고싶고 (x1) hihihi
내 마음이 그래.
내가 아직 실적없는 시시한 대사이긴해도
최근에 자그마한 실적 하나 올렸다.
미국과 브라질 사이에 이산가족 하나 상봉시켜줬어. (아직 맞상봉은 못했으나 목소리상봉은 마쳤음)
미국에 있는 사람 = 인일가족.
선자야. 허인씨에게 부탁 좀 해 봐봐. 응? 응?
얼마나 기다렸다구........
감정적으로 (중고교시절의 복숭아빛 순수한 감정을 지니고서....라는 뜻)
사무적으로 (너를 통하여 이루고싶은 일이 한가지 있었기에.....라는 의미) 무척이나 기다렸단다.
너도 공직에 있는 몸이니 잘 알겠지만
나도 내 공직, 직책에 충실하기위하여
(해외홍보대사거든. 내가........우하하하~~~~~~~~ 웃지마)
우리 동기 이재선이가 부탁하는 장미선찾기를 기어코 한번 성사를 시켜보고자 노심초사하던차에
어쩌면 너를 통하여 뉴저지의 저명인사의 힘을 빌리면 혹시? 무슨 서광이 비치지나 않을까해서 말이야.
(이해를 돕기위하여 여기 우리 게시판 608 번과 619 번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내가 노심초사했다는 사연은 이렇단다.
동북부 5박 6일의 마지막 날 = 뉴욕.
그 뉴욕 가던날, 보스턴보고 뉴포트보고 뉴욕에는 어두워서야 입성했는데
실지 우리가 저녁식사를 한 곳은 맨하탄이 아니고 뉴저지였어.
가이드말이 한일관이라는 식당은 뉴저지에 하나뿐이라기에
뉴저지 들어서면서부터 가슴이 설레었단다.
우리가 저녁식사하는 곳에서 가깝다면 난 저녁 안 먹고 한일관으로 가서 물어보리라 속으로 맘 먹었지.
....마는 우리가 식사를 한 원조라는 선상식당에서 한일관은 꽤 멀었고, 또 너무 늦었고.
내가 택시로 갔다온다 한들 일행과 합류하기에 너무 늦을 수도 있겠고
이래저래 단념하고 숙소가 어딘지
숙소정해지면 어떻게 해 보리라...하고 2차 작전을 세웠지만
숙소라는 곳이 또 버스로 한참을 달려서
씽씽 차들이 줄달음질치는 고속도로변 holiday inn 이라는 호텔인거라.
거기서는 더더구나 한일관 갈 꿈도 못 꾸겠더라구. 거기서는 동서남북도 가늠이 안 되니 어쩌겠어?
지척에 와 있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원통함에 눈물을 머금고 뉴저지를 떠났다는거 아니니?
며칠후
버지니아에 돌아와서 이복순네 집에서 점심 먹던날
복순이가 한일관에 전화해보긴 했는데 "모른다"는 간단한 답변이었어.
내 생각에 전화 받은 사람은 필경 한일관 내력을 잘 모르는 종업원쯤일거 같아서
누군가가 직접 가서 알아보면 "한병희" 씨의 소식을 알것같은 감이 드는거야.
그래서말인데
뉴저지에 사시고 뉴저지를 잘 아시고 한일관에서 식사를 하실 기회가 있으실지도 모를
뉴저지 거주자 분에게 부탁을 해 봤으면 하는 궁리가 떠오르게 된거지.
그러던차에
뉴저지 허인씨께서 우리 방에 나타나셨으니
내가 (x11) 요렇게 되지 않을 수가 있겠니?
그래도 차마 만나자마자 댓바람에 그런 부탁 할 수도 없고 (나도 아직 좀 체면이 남아있걸랑)
또 그 양반이 나를 찾아오신 것도 아니고
그리하야 너, 임관장님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란다.
이 total story 를 들으면 재선이가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내 인생 최초의 감투를 놓치고싶지않고 (x7) 깔깔깔 (x18)
40 년전 내 짝꿍의 부탁을 꼬옥 들어주고싶고 (x1) hihihi
내 마음이 그래.
내가 아직 실적없는 시시한 대사이긴해도
최근에 자그마한 실적 하나 올렸다.
미국과 브라질 사이에 이산가족 하나 상봉시켜줬어. (아직 맞상봉은 못했으나 목소리상봉은 마쳤음)
미국에 있는 사람 = 인일가족.
선자야. 허인씨에게 부탁 좀 해 봐봐. 응? 응?
2005.09.17 03:05:14 (*.27.17.127)
허인씨. <좋은 인연> 이 되도록 선자의 부탁 (= 조영희의 부탁 = 이재선의 부탁) 을
알아봐 주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솔직히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ㅎㅎㅎ
알아봐 주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솔직히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ㅎㅎㅎ
2005.09.17 03:48:41 (*.81.30.53)
"좋다"
정리를 하면 이렇군요.
인일 3회이신 장 미선씨를 찾는데, 부군 성함이 한 병희씨고.
(608, 619번은 봤는데, 조 영희 선배님에 대한 댓글이 하도 많아
자세히 못 보고 학교 때처럼 요점만 보았읍니다.)
참고 삼아 부연 설명을 드리겠읍니다.
말씀하신대로 한일관은 New Jersey에 하납니다.
저희 집에서 자동차로 2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읍니다.
제가 잘 아는 식당이기도 하구요.
선상식당 "원조"라는 곳도 어딘지 압니다.
그런데, 제 의문은 3회 선배님 부군이라면 나이가 60이 넘으셨을텐데,
한일관 개관 이래 그렇게 나이 많으신 manager는 없었읍니다.
종업원, manager, 심지어 주차장 아저씨까지 아는데,
연세가 그렇게 많은 분은 없었읍니다.
어찌됐든 임 관장님의 말씀이라 생각하고
한일관에 가서 수소문 해 보겠읍니다.
혹시 추가 정보사항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고 저도 기대합니다.
정리를 하면 이렇군요.
인일 3회이신 장 미선씨를 찾는데, 부군 성함이 한 병희씨고.
(608, 619번은 봤는데, 조 영희 선배님에 대한 댓글이 하도 많아
자세히 못 보고 학교 때처럼 요점만 보았읍니다.)
참고 삼아 부연 설명을 드리겠읍니다.
말씀하신대로 한일관은 New Jersey에 하납니다.
저희 집에서 자동차로 2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읍니다.
제가 잘 아는 식당이기도 하구요.
선상식당 "원조"라는 곳도 어딘지 압니다.
그런데, 제 의문은 3회 선배님 부군이라면 나이가 60이 넘으셨을텐데,
한일관 개관 이래 그렇게 나이 많으신 manager는 없었읍니다.
종업원, manager, 심지어 주차장 아저씨까지 아는데,
연세가 그렇게 많은 분은 없었읍니다.
어찌됐든 임 관장님의 말씀이라 생각하고
한일관에 가서 수소문 해 보겠읍니다.
혹시 추가 정보사항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고 저도 기대합니다.
다시한번 애 쓰신 것에 감사드리며
저희 어머니에 대한 과찬에 송구스럽군요.
아무리 인천이 좁은 곳이지만
떨어질 수 없는 인일과 제고의 인연이 대단하다고 느꼈읍니다.
혹 제가 이곳에 글을 올려 처신에 불편하신 점이 있더라도
제 지능지수로는 이 방법밖에 없었음을 양지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공직생활에 행운이 행운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인연 계속해 나가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