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인가?  현수야?"
그렇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현수가 많이 아프다는 말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에 만날 약속을 해 놓고도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었는데
막상 오늘 만난 현수는 생각보다 많이 활기차고 씩씩했다.

미리 받아놓은 주소로 찾아가서
집앞에 나온 여인을 만났으니 그녀가 현수인줄 알았지
그냥 어디 길에서 만났다면 물론 서로가 알아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를........ㅉㅉㅉ)

내가 혼자 현수네 집을 운전해서 찾아갈 수는 없으니까 딸이 운전했고
딸이 가니까 애기가 같이 갔고
남편만 혼자 집에 남겨두고 가기 미안해서 역시 동행.  (그래서 우리는 네명)

맑고 더운 여름날의 11시 반.
조촐한 시골 동네의 푸른 숲 사이에서 우리 40년만의 만남이 마치 나흘만의 만남인듯 스스럼없이 이루어졌다.

"어머나,  살다보니까 너를 다 만나게 되는구나."  하고 현수가 웃었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되다니 나도 안 믿어진다. 하하"  나도 웃었다.

그 길로 함께 나가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이 한산한 (내가 보기에)   메릴랜드 시골동네에도 한국음식점이 있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어쩌면 한국사람들이 좀 살고있는 동네인지도 모르겠다.

현수는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처럼 대작은 엄두를 못내지만 작은 소품들은 계속 그린다고 한다 .
요새는 얇은 돌판 (슬레트라네..)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단다.
벽을 따라 돌아가며 여러점의 그림들이 더러는 액자로 더러는 그냥 작품으로 차곡차곡 포개어 쌓여있었다.
가끔 아프리케 수를 놓아 갓난애용 이불도 만든다고 한다.

본래 예술적인 소질과 끼가 많았던 것으로 나도 현수를 기억하는데
지금 투병중에도 좋아하는 취미를 놓치지않고 지속하는 것이 병치료에도 좋다고 스스로 정의하더라.

현수가 사는 곳은 내가 있는 알렉산드리아 올드타운에서 불과 사오십분 거리였어.
다시 한번 만나기로 약속하고
어깨에 올라앉은 앵무새와 함께 문밖까지 배웅나온 현수와 헤어져 차에 올랐다.

이 앵무새는 현수하고 10년을 같이 살았다는구나.  
현수 말은 앵무새가 개보다 더 지능이 높다네.  아주 훌륭한 친구라고 하네.
현수 남편은 그 시간에 근무중이라 만나보지 못했는데 아주 착한 사람이라고 그러더라.

현수는 송호문의 전화를 이미 받았기에 내가 저를 만나러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

돌아오면서 나는
우리 인간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신비를 또한번 생각하지않을 수 없었다.

현수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좋아 보이더라는 말이지
어쩔 수 없이 누가봐도 금방 환자라고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이었어.
그러나
두어시간 같이 지내며 보니까
육체는 쇠약하지만 정신은 얼마나 형형하고 건강한지
그녀를 환자로 취급해서 값싼 위로따위는 감히 할 수도 없었단다. (물론 병명도 물어볼 수 없었지..)

부디 그 시들지않는 혼과 정신으로 육체의 병을 이겨낼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