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숙아!
실로 오랜만에 불러보는 정말 정말 부르고 싶던 그리운 이름이다.
한참 꿈많은 시절에 만나 30년도 넘게 세월이 흐른 육십을 바로 코앞에 두고 만나다니..
그러나 인숙아
그동안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또 서정주 시인의 국화앞에선 누님같은 성심이로부터 ...(생략)

지난번 평택의 재선네 집에서 만났을 때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 그저 손만 잡고 흔들었었지...
그것도 주님안에서의 만남이어서 더욱 감사했단다.
비록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했던 5월의 교정은 아니었지만 신록이 아름다운 대자연속에서의 만남은 축복일 수 밖에 없었어.
그런 만남의 장소를 제공해주고 또 신토불이 음식까지 먹도록 수고해 준 재선이에게 내가 정말 고마워한다고 전해 주렴.
인숙아!
막상 펜은 들었으나 무슨 말을 먼저 해야 될 지 모르겠다.
중학교 일학년 때 너와 한 반이 된 것은 나에겐 행운이었고 너로 인해 내 학창 시절 내내 풍요로왔어.
지금도 너와의 추억은 거의 다 기억하고 있는 편이야.
너는 중국집 빵을 더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동인천역앞, 자유공원 올라가는 길목에 있던 별제과점에서 고로케와 우유들고 바로 위층에 있던 별음악감상실에서 흐르는 멜로디에 심취해 있던 기억이 더 새롭단다.
담배연기 자욱했던...
언젠가 그 시절을 회상하며 찾아갔을 때 옷가게로 업종이 바뀌어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라.
아무튼 클래식,팝송, 상송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던 감미로운 음악의 선율과 함께 고전은 물론 대중 인기 소설도 꽤 많이 읽고 많은 얘기를 나누던 너와 나의 우정은 끝이 없었지...
공부시간에 선생님의 눈치 보며 숨어서 감질나게 읽었던 슬픔이여 안녕과 좁은 문, 전원교향악, 재미작가 김은국의 순교자가 문득 떠오른단다. 순교자 내용은 희미하지만...

인숙아
우리가 열심히 읽고 토론했던 흙속에 저 바람속에, 이것이 한국이다 등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안경너머 지성의 눈빛이 날카로웠던 이어령 교수를 내가 참 좋아했었거든. ...(생략)

인숙아, 생각나니?
끔찍이도 음치인 내가 최양숙의 호반에서 만난 사람과 첫사랑을 배워 너랑 흥얼거리던 일들을...
「파란 물이 잔잔한 호수가의 어느날 처음만난 그 순간 불타오른 사랑은-」
「태양처럼 왔다가 꽃잎처럼 사라진 나의 사랑은 흐르는 별과 같이...」

인숙아 이런 일도 있었지
장콕도의 내귀는 소라껍질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며 바닷가에서 국어 숙제인 사투리를 조사하다가 정박중인 함정에 해군 장병들과 갈매기 계급장이 똑같다고 해맑게 웃으며 주고 받던 말들..
너랑 나누었던 말들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많았지. 정말로 정말로..

원형교사 옥상에서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끝없이 펼치던 그리운 시절의 오솔길 거쳐 나는 지금 교복을 입고 교문 앞에 서 있는 느낌이야.
교문에 이르는 좁은 길을 우리는 지성의 오솔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

인숙아
돌이켜 생각해보면 현옥이와 더불어 우리는 경쟁자관계였지만 질투하고 미워하는 경쟁자가 아닌 선의의 경쟁자, 서로에게 격려가 되었던 아름다운 우정을 지닌 그런 사이였었어... (생략)

인숙아,
만나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지?
각자 나이 만큼의 속력으로 세월은 흐른다고 하는데 인생은 성경말씀처럼 잠깐왔다가 사라지는 안개같은 것인가봐.
김승옥의 무진기행..

..(생략)
끝으로 꿈 이야기로 펜을 놓는다.
안개속에서 나는 너라 정답게 걸어오다가 배다리에서 너를 잃어버리는 꿈을 꾸기도 했고 한번은 하늘나라의 왕비간택에 참석한 우아한 너를 눈부시에 바라보다가 꿈에서 깨어난 적도 있었어. 정말 허망했었지..
그래서 인숙이는 하늘나라갔나보다 하고애써 잊고 지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는 이미 천국에 처소가 마련된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게 분명한 것 같다. 분명해...
그러니 크게 한턱 내라. 한턱 내...
다음 소식 전할 때 까지 부디 건강해.  알았지?
인숙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남이 보면 동성연애하는 줄 알겠네.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