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기의 김춘선의 ‘그림이야기’라는 글을 읽고 코끝이 찡했다.
찬찬히 다시 한번 읽었다.
그러다가 퍼뜩 생각이 났다.

“아!  어머니 생신날이 다가오는구나.”
이번에는 잊지말고 챙겨드려야지.
작년에는 한국에 있었고, 재작년에는 내가 상파울로에 부재중이었고 그 전해에는 어땠나?
어머니 생신을 함께 지낸게 언제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늘, 어머니 생신날 아침.
미선이 말대로 삼위일체로 생신을 축하해드리기로 맘먹었다.
꽃과 케익과 금일봉의 삼위일체의  선물을 드리고  함께 마주앉아 점심을 먹기로 했다.

화려한 장미도 아니요,  고상한 난도 아니고  앙징맞은 관상용 고추화분을 골랐다.
빨간 종이로 포장을 하니 더욱 어여뻤다.
케익도 아무 빵집에서나 사면 자칫 느끼하고 그저 달기만 하기 일수다.
몇 바퀴 더 돌아서 특별히 맛있다는 집에 가서 샀다.

“초는 몇개나 드릴까요?”   여점원이 묻는다.
“초?   안 줘도 되요.  안 켜도 되니까.”  나의 대답이다.
“.........................”  

점원이 돌아다 본다.  의아한 얼굴.
“아마 본인도 초  세어보는거 싫어할 거 같아서요.”

점원도 웃고 옆에 서 있던 손님도 웃는다.
그 손님이 한마디 한다.
“그래도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귀중한 생일이 되지 않나요?”

그말을 들으니 프랑스 여배우 시몬느 시뇨레가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사진기자들에게
“주름살이 잘 나오도록 찍어주세요.  그거 만드는데 오래 걸렸다구요.”  그랬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생일이 갑자기 진짜로 소중한 기분이 들었다.
의례적으로 의무적으로 치루는 연례행사라는 기본관념이 깨지는 기분도 들었다.    

점심식사를 어디서 할것인가로 남편과 약간 옥신각신했으나
언제나처럼 내가 이겼다.
아무렴, 어머니의 기호를 내가 더 잘 알지.
한국식당의  매콤 따끈한 국물을 먹고싶은건
엊저녁에 과하게 마신 술에 아직 속이 거북한 자기 사정인줄 누가 모를까봐?

녹음이 짙푸른 공원안에 있는 조촐한 브라질 식당으로 갔다.
브라질 친구를 통하여 알게된지 얼마 안되는 뉴 훼이스 (나한테는) 식당이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길조차 양옆으로 키 큰 나무들이 도열해 서 있다.
과연 어머니는  어린애마냥 좋아하셨다.

“것 봐요.  내 말이 맞지........”
새 모이 먹듯이 조금 잡숫는 식사량인데  음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간밤에 온 비에 깨끗이 씻긴 나뭇잎들, 서늘한 그늘,  상큼 향긋한 바깥내음이
늙은 어머니를 행복하게 하였다.

“아이구.  좋구나.  정말 좋다!”
82살의 어머니는 조글조글 만면에 웃음을 지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