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말씨아라는 이름의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물론 여자이지만 우리같은 한국사람이 아니고 브라질여자입니다.
그녀하고는 년전에 함께 스페인여행을 했었습니다.

그녀는 나이 오십이 되어가는데  미혼입니다. (이점은 인옥이와 같네.)
외동딸인 그녀는 은퇴한 부모님과 함께 삽니다.
그래서 그 집 식구는 세명입니다.

그 세사람은 모두들 체격이 자그마하고  태도가 온화하고  마음씨가 부드럽습니다.
서로 서로 매우 아껴주며 오손도손  매우 다정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나는 한국 가기전에 두번 그녀의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 때는 혼자서...)
그녀의 집은 내가 사는 상파울로에서 400 km 떨어진 해변도시입니다.
리오데자네이로가 빤히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말씨아뿐 아니라 그 부모님까지도 어찌나 환대를 해 주는지 부담스러울 정도였지요.
우리는 해변을 산책했고 산길도 산책 했으며
맛있는 식당에 가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식사도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나에게 ‘소피아’ 라는 이름이 수놓여진 타월을 선사했습니다.
자기가 직접 한뜸 한뜸 수놓은 십자수였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선물이었습니다.

내가 돌아오는 날, 출근한 딸을 대신하여 버스터미널까지 나를 태워다준 부부는
나의 버스가 떠날 때까지 돌아가지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부르릉 발동을 걸자  그 아버지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두 눈에 대고 우는 시늉을 하였습니다.
노인의 천진한 장난 제스츄어에 우리 셋은 하하 웃으면서 헤어졌습니다.

그랬는데..........................

내가 한국에서 일년만에 돌아와서 얼마 있다가 안부전화를 했더니
글쎄........ 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렇게나 건강하고 명랑하고 매사에 다정하고 적극적이던 그녀가 왜? 어째서?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두 사람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전화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에 나는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  말씨아네 집에 갔었습니다.
조용한 부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여전히 평화스럽게 살고는 있었지만
늙은 아버지와  이제 더 이상 어리지도, 더 이상 젊지도않은 딸에게
가버린 사람의 빈 자리는 너무나 컸습니다.

아버지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아니하고 집에만 있다고 딸이 걱정을 합니다.

딸도 나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도 자주 눈물을 흘렸습니다.

작은 성당에서 어머니를 아는 아주머니를 만났을때
빵집 여점원이 ‘왜 어머니는 요새 안 오시느냐?’ 고 물었을때
어쩔 수 없이 두 눈이 빨개졌습니다.

“미안해”   하고 말씨아는 눈물을 훔치면서 쓸쓸히 웃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돌아올 때 부녀는 배웅을 하면서 여러번 ‘와 주어서 고맙다’ 고 합니다.
말씨아는 나보고 ‘한달에 한번씩 만나면 좋겠다’ 고 하고 웃었습니다.

오늘 말씨아가 전화를 했습니다.
사진을 찾았는데 모두 잘 나왔다고 합니다.
해변에서, 산에서, 오래된 성터에서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웃으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었거든요.

머지않은 시일내에 다시 그녀를 찾아가 보리라 마음을 먹으면서
‘왜 한번 간 사람은 두번 다시 볼 수가 없을까?’  하는
너무나 바보같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