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순이와 어리기는 신흥국민학교 1학년때부터 친구입니다.
신흥학교 근처에는 개울도 없고 따라서 징검다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꽝순이와 어리기 사이에는 무지개가 드리운 그림이 남지 못했습니다.

늘 멀리서 주변을 빙빙돌기만 하는 어리기가 답답하여
꽝순이는 조약돌을 주워 어리기 쪽으로 던지고는 언덕길로 뛰어 갔습니다.
그러나 어리기는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달려가는 꽝순이를 그저 바라만 보았습니다.
참 예쁘구나 생각만 했지 쟤가 왜 저럴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힘센 녀석이 어리기의 뒤통수를 된통 쥐어박아
아프기도 하고 화도 나긴 했지만 감히 대들지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모르는데
꽝순이가 대신 나서 녀석을 야단쳤습니다.
어리기는 고맙고 챙피하고 그러면서 꽝순이가 더 예뻐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리기는 또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다 마주치면 그저 씩 웃고 지나가는 정도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꽝순이를 볼 기회가 없어지자
어리기의 가슴 한구석에는 무언지 모를 아쉬움이 자리잡고 점점 커져 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여학생을 만나러 가는 친구를 따라간 어리기는
꽝순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인사만 겨우 나눈 뒤 아무 말도 못하고
내가 이 자리에 왜 나왔나 전전긍긍하는 사이 모임은 끝나버리고
어리기는 꽝순이의 안타까워 하는 눈빛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대학시절 통학 기차에서 만난 꽝순이는
아직도 어리버리한 티를 벗지 못하고 있는 어리기에게
아버지가 가난하다고 너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잖아
자신감을 불어 넣는 평생 교훈을 주었고
감동한 어리기는 꽝순이에게 처음으로 너 많이 예뻐졌다면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잔디광장에서 데이트 한 번 못하고 또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흘러 2004년 꽝순이는 커다란 인물이 되어 나타나고
이를 알게 된 어리기가 그 동안의 가슴저린 사연을 인일여고 홈피에 공개하자
꽝순이를 부러워하는 눈길도 많았지만
정작 꽝순이의 속마음은 분노로 끓어 올랐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 신흥 동창을 만나고 있는 자리에
어리기가 다음 데이트는 내가 신청하노라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자 꽝순이가 전화통에 대고 절규한 말은
“아직도 다음이냐 난 오십년 동안 말짱 꽝이었는데 너 언제 철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