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오밤 중에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지 않을수 없던 이유는...
    물안개가 퍼져가듯 유년의 기억을  시공을 초월해서 표현하신
    쇳골거사님의 소년같은 풋풋한 글을 어제 본 이후로
    나의 마음이 어지러워졌기 때문이다.
    왜.......................................................................나에겐 이런 글을 써줄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나는 인생을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았단 말인가.....

    부러움 반. 시샘반
    나는 그 쇳골거사님의 원본을 이렇게 퍼오고야 만 것이다
    이미 본 분들도 많으리라.

    박광성언니...선배님.원장님, 온냐..
    우리는 "이닐으 딸"  맞져?
    거사님의 글을 퍼오는 거사를 치루고야 말았으니(거사가 자꾸 들어가네?)
    저녀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그날의 그 소녀적 감성...부디 생활에 활력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렇게 까지 아부했는데 설마 글 퍼왔다고 인천까지 쫒아오실라구.............^^
    지는 영워난 언니의 팬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언니들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이 한몸 언제든 119 출동 대기중임도 또한 기억해주세요
    아이................땀난다.
    (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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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2119  |   글쓴이: 권순덕  |   날짜: 2004/07/13 14:26  |   조회수: 111  


어제 저녁 광선이를 만났습니다.
국민학교 졸업 후 처음이라 치면 물경 44년만입니다.
용점이가 꼭 찾아야 할 사람을 찾아준 광선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자리에
광택이와 내가 곁다리로 끼어들었습니다.
(박광선씨는 인일여고 3회 졸업생으로 현재 신림동에서 25년째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인일여고 총동창회장을 역임한 인재입니다.)

광선이와는 신흥국민학교 1,2학년 시절 같은 반이었습니다.
사실 그 이외에는 별다른 추억이 없습니다만
광선이는 국민학교때부터 인일여고 시절까지
줄곧 잘나가는 유명인사 대열의 선두에 있었으므로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녀가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나를 기억하는 것은 다소 의외입니다.

용점이가 신흥동창이기는 하지만 광선이를 알아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내가 양쪽을 확인시켜주는 신원보증용으로 따라 간 셈인데
사실 나도 그 옛날 기억만으로 그녀를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처음 딱 눈이 마주치자 아 옛날 얼굴 그대로이네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젖살 통통하던 어린 아이 얼굴이야 아니지만
전체적인 얼굴 모습이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다소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자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약간의 수다스러움과 자연스런 솔직함을 보여주는 광선이의 태도에
나로서는 의외다 싶을 정도로 쉽게 부드럽게 대화가 풀렸습니다.
그 동안 그녀가 살아 온 인생의 자신감과 여유로움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
아주 흐뭇한 만남이 되었습니다.

인천처럼 뿌리가 없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지역에선
국민학교 동창이란 관계로 가슴 깊이 스며든 추억을 남기기가 어렵습니다.
특별히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지형적 특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질적인 기질의 사람들이 어쩌다 한데 모여 각박한 삶을 다투다 보니
공통된 정서가 미처 발달되지도 못하고 바쁘게 헤어지기가 보통입니다.

나 같은 경우도 아무런 뿌리가 없고 보니
미련도 애착도 없이 쉽게 인천을 떠났고 되돌아 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어제 광선이를 만나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학교 1,2학년이 언제 적인데 그 때 봤다는 기억 하나 때문에
전혀 관계없이 따로 살아 온 남인데 그것도 여자인데
평소 낯가림을 많이 하는 내가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두 시간을 마주 보고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녀가 상대를 편안하게 느끼도록 만들 수 있는 인품의 소유자라는 것이
기본적인 이유이기는 했겠지만
어쩌면 그녀와 되새긴 국민학교 시절이
고향의 느낌 같은 것을 떠올리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껏 고향이란 단어는 가슴에 없었던 내게 말입니다.

광택이를 왕따시키고 주로 신흥학교 동기들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정작 본인들이 살아 온 얘기는 전혀 나누지 못했습니다.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 광선이의 얼굴이 모든 것을 다 말해주는 대로
그 동안 잘 살았고 지금도 잘 살고 있으니
이렇게 얼굴 마주할 기회도 생긴 것이겠지요.

바쁘게 사는 그녀를 다시 볼 기회는 쉽지 않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함께 인천 구장에 가서 야구 구경을 하면 좋겠다라고 말입니다.
옛날 인천 야구가 날리던 시절의 동산고 야구부 감독 박현덕씨가 그녀의 부친이고
한 때 부동의 국가대표 4번 타자였던 박현식씨가 작은 아버지입니다.

언젠가 하루 12시간을 야구장에서 보낸 적도 있는 내가
전설적인 야구인의 딸에게 기본적인 야구 규칙을 설명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혹시 인천이 내 고향이구나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명선 ~ 인중,제고의 고향에 돌아와보니 순덕이가 또 국민학교고향에도 돌아가보래네....

한기복 ~ 인터넷이 묻혔던 인연을 다시 끌어내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군

주용점 ~ 난 광선이 기억이 안 났었는데 야구 "박현덕"하는 순간 통통했던 옛 모습이 생각 나더라구. 어쨋든, 남을 배려해주는 마음 씀씀이 복 받겠단 느낌이 들었답니다.
기복아? 너도 김정애 선생님 찾아 신세 갚아야 되지 않겠니?

우창명 ~ 야하-- 친구들!! 아직도 마음은 -- 쇳골거사가 인일여고 이야기하니까 -- 금새 조회수가 80이 가깝구먼-- 그런데 봤으면 무언가 흔적을 냄겨야지용!!!
난 신흥초교 2학년 3학년 2년다녔지만 아무런 기억도 없네요... 단지, 교실이 모자라서 마당에서 공부한 기억밖에는 -- ㅋ ㅋ ㅋ

김광택 ~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린애가 된다는 부분중의 하나가 국민학교때로 돌아가 동갑내기 남녀 동무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라 생각한다. 어떤면에서 더할 수 없는 순수한 우정이 될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