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의 여자가 음악으로 똘똘 뭉쳤다
주부 록그룹 '샤인'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며 삶의 활력을 되찾았어요'

평소엔 주부로, 무대에 올라서면 뮤지션이 되는 여성 5인조 밴드가 있다. 인천지역 주부 록그룹 '샤인'이 그 주인공. 취미로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이제는 각 단체에서 초청 받는 어엿한 프로가 되었다. 실력 또한 만만찮은 이들의 이색 도전기.

방음벽이 설치된 지하 스튜디오. '바람과 구름' 노래가 한창이다. 드럼, 키보드, 베이스 기타, 기타, 보컬 등 5명의 여성은 이미 노래에 취한 상태다. 곧이어 'More than I can say',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이 연주된다. 1시간 정도의 연습을 끝낸 멤버들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들 행복한 표정이다.
30대부터 50대까지 평범한 주부들이 모인 이색 록그룹 '샤인'이 결성된 것은 지난해 1월. 리더 서순희 씨(40·보컬&기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인천에서 '허리우드 악기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혼자서 기타를 연주하고 음악을 공부해왔다. 그러다 '뜻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음악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고, 가게 손님 중에 멤버를 물색했다.

가장 먼저 의기투합한 이는 바로 임범순 씨(50·드럼). 드럼 스틱을 사러 악기점에 들른 임씨를 꼬드긴 것. 당시 임씨는 쉰 가까운 나이에 학원에서 드럼을 배우고 있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드럼을 치고 싶었어요. 서른두세 살쯤에도 하고 싶었는데 못했어요. 그러다 4년 전부터 학원에 다니면서 배웠죠. 그때는 목적 없이 배웠는데, 그룹사운드로 모이면서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하게 되었어요.”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밴드 결성에 나섰고 10여 명의 멤버가 모였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주부들이었기에 연습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집안일과 음악을 병행하기 힘든 주부들이 몇 명 탈퇴했고 5명의 멤버만이 남게 되었다.

조명희 씨(37·베이스)의 경우 코드 스케일도 몰랐던 초보였지만 이제는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멤버다. 세 아이를 둔 전업주부인 그녀는 동네 아줌마와 수다를 떨다 통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동네 아줌마가 서씨를 소개시켜 주었다. 서씨로부터 기타를 배우던 조씨는 어느 날 베이스 기타를 배우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베이스 파트는 어렵고 재미없기 때문인지 3명이나 포기한 상태였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합류했어요. 그룹 사운드 자체가 멋있잖아요. 체질에 맞더라고요. 처음에는 쉬웠는데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문제지만.”

그러고 보니 조명희 씨는 꼭 베이스 기타리스트 같은 스타일이다. 짧게 자른 커트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약간 반항기가 있을 것 같은 눈매. 멤버들은 모두 조씨가 '연습벌레'라고 한다. 그녀는 최근 실력을 늘리기 위해 학원까지 등록해서 배우고 있다.

딸의 악기를 구입하기 위해 악기점에 들렀던 박경희 씨(40·키보드)가 멤버로 가입했고 보컬을 구한다는 방송을 보고 찾아온 김영숙 씨(32·보컬)가 오디션을 거쳐 올 5월에 합류했다. 일주일 전에 이혜리 씨(34·키보드)가 추가로 합류했다. (잠시 미국으로 건너간 박경희 씨의 자리를 메우고, 추후에는 키보드 2대로 연주할 계획이라고 한다.)


가족들의 적극적인 후원 힘입어 연주

그룹 이름은 '샤인(Shine)'으로 지었다. 말 그대로 어두운 곳을 비추자는 취지다.
정식 연습을 한 것은 작년 5월부터였다. 열정에 불탔지만, 실력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악기점 셔터를 내려놓고 연습을 했어요. 악보도 잘 외워지지 않고 외워도 돌아서면 까먹었죠. 곡 하나 맞추는 데만 3개월이 걸렸죠. 지금은 보름이면 한 곡 거뜬히 맞출 수 있어요.”(서순희 씨)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가족들의 도움이었다. 공연을 앞두고 밤늦게까지 연습하다보니 가족들의 눈치가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합주실에서 함께 연주한 곡을 녹음해 테이프를 남편한테 들려주는 방법을 택했다. 남편들의 반응은 “어? 꽤 잘하는데” 였다. 그후 남편들은 열렬히 서포트를 해준다고 한다. 조씨의 남편은 베이스 기타를 사주었고, 임씨의 남편은 공연 때마다 무거운 드럼을 날라주는 매니저 역할을 자처한다. 기자가 찾은 날도 키보드 이씨의 남편 김성욱 씨는 아내가 연습하는 사이 아이를 돌봐주고 있었다.

연습은 평균 일주일에 두 번. 직장인 남성그룹 '팬타토닉'의 연습실에서 오전 11시쯤 모여 3시간 동안 연습하고 헤어진다. 다들 부지런하게 사는 주부들이라 함께 모여서 사담(私談) 나눌 시간도 없다. 하지만 함께 음악을 하다보니 절로 마음이 통한다고.

이들의 첫 공연은 작년 11월 인천 송도성당에서였다. 100명이 넘는 관객을 앞에 두고 펼친 공연이었는데, 결과는 대성공! 이후 성당 주최 바자, 부천 성가병원의 환자 위로의 밤, 해동 실버타운 어버이날 행사 참여공연, 제3회 아줌마의 날 행사공연, 원주여성대회 초청공연 등 공연은 줄줄이 이어졌다.
“성당 등의 공연은 무료로 봉사합니다. 어떤 공연에서는 행주, 수세미, 쟁반, 양말 등을 받기도 해요. 출연료를 받으면 모았다가 불우이웃을 위해 쓸 생각입니다. 취미활동도 하고 봉사도 되고 일석이조죠.”
멤버들은 한결같이 록그룹 활동을 잘했다고 뿌듯해한다.

“드럼을 치면서 생활에 활력이 생겼습니다. 음악을 하니까 정신적으로도 좋고요. 팝송도 많이 늘었어요. 콩나물 대가리 하나라도 더 알게 되지 않습니까?(웃음)”(임범순 씨)
“엄마가 TV에 나오니까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합니다. 주위에서도 다들 부러워하고요.”(조명희 씨)
“매스컴에 나오니까 시장에서도 많이 알아봅니다. 얼마 전에도 제주도에서 감귤 한 박스를 보내왔더라고요.”(김영숙 씨)
“이제 팬 관리를 해야겠다”며 웃는 멤버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9월 28일에는 여고 축제 때 공연하기로

다른 멤버들도 훌륭했지만, 특히 나이 50에 활력 있게 드럼을 치는 임범순 씨의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그녀는 주부들에게 “병들지 않는 이상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충고의 말을 잊지 않았다.
“주부들도 취미가 있으면 자꾸 찾아서 생산적인 방향으로 계발해야 할 것 같아요. 제 주위에도 찜질방 다니고 먹고 마시고 놀러 다니는 친구들 많아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게 즐거움도 주고 보람도 있지 않을까요? 회비 3만 원만 내고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게 참 행운으로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