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이나 집을 비워두었다가 돌아오니 우편물이 산적해있음은 물론이려니와
전화 앤써링 메모도 적지않게 모여 있었는데
우편물도 전화 녹음도 실은 대부분 별로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가지 낭랑한 폴투게스로
“소피아라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저는 안나마리아라는 사람이구요.
제 전화번호는 0000-0000 입니다.”    라는 녹음이 있었다.

8개의 숫자를 하나 하나 또박또박 두번이나 되풀이해서 녹음해 놓은 모양이
마치 우리 집 식구 누구에게라기보다  제 삼의 누군가에게
소피아 소식을 알면 이 번호로 알려달라는듯한 뉘앙스가 풍기는 내용이었다.

안나마리아는 나하고 산에 같이 다니던 브라질 여자다.
석달만에 돌아온다던 소피아가 무소식으로 해를 넘기니 매우 궁금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나의 전화도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된 것이나 아닐까 싶었던지?
아니면 폴투게스가 서투른 우리 남편을 의식해서 그랬던건지?

브라질 도착 보름후에 내가 전화를 했을때 안나마리아가 직접 받았다.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전화통이 부서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그 다음 나에게 불평을 했다.
“한국 가서 전화 한다더니 왜 안 했어?”

내가 그런 약속을 했었던가?   나는 그런 기억이 안 나지만 당연히 사과를 했다.
안나마리아는  “별일 없었다니 다행이다.  돌아와서 기쁘다.”  반색을 하고
그동안의 밀린 이야기들을 시작했다.

일년동안에 등산팀 멤버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어찌 전화로 다 들을 수가 있겠나?
하던 그녀도 듣던 나도 이심전심으로 “우리 만나서 계속하자.”  
잠시 후 의견이 일치되어 당장 이번 토요일 아침에 만나기로 정했다.

그녀가 사는 곳은 ‘큰 바위’ 라는 이름의 공원 근처다.
서울로 치면 내가 서초동이라면 그녀는 정능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
토요일 이른 아침에 그녀의 집에서 만나 큰바위공원을 돌기로 했다.

‘큰바위 공원’ 은
흠~ ~   서울대공원이라고 치자.
울창한 수목이 들어차있고 원숭이가 나무위에서 끽끽 거리는 곳이다.
벌써 여러번 우리는 그 곳을 가 봤지만 언제 가도 좋은 곳.
내가 서울 가기 직전에는 한밤중에도 한번 가 봤던 곳이다.

원래는 낮에만 출입이 되는데 안나와 나는 공원 관리소에 교섭을 해서
어느 달 밝은 보름날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어냈다.

우리 둘이만 갔느냐고?
천만에……….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소냐?
안나는 모든 멤버들에게 메일을 띄우고 전화연락을 하고 그랬는데
그 보름날 밤에 모인 인원은  69명이었다.

캄캄한 숲속길을 걸어 큰바위까지 가서 너른 바위위에 모두 모여앉아
어스름한 밤기운속에 명멸하는 대도시 상파울로를 내려다보던
그 멋진 밤을 나는 서울에서도 추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요일!
토요일에 나는 그녀를 만난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을것인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언가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도는 코스에 따라 다른긴 하지만 공원 한바퀴를 돌려면 서너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 시간이면 그래도 꽤 많은 소식들을 주고받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