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가   ‘별건 아니지만….’   하면서 조그만 상자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집에 와 풀어보니 얌전한 꽃무늬의 팬티 석장과 점잖은 첵크무늬의 손수건 두장이 들어있었다.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니라 좋았다.

그런데 팬티는 펼쳐보니 무척 컸다.
“아니,  내가 이렇게 뚱뚱해?  야, 이건 너무 크다. 그치?”
옆에 앉아있던 딸은 아무 대꾸없이 웃기만 한다.

나중에 입어봤더니 크기는커녕 엉덩이를 꼭 조인다.
“와아,  보기하고는 다르네.”
보기하고 다른 것은 팬티가 아니라 내 몸뚱이다.  
아니, 내 실체를 아직도 잘 모르는 내 주제가 보기와 다르기도 하다.
그래서 아마 딸은 대꾸를 못한 모양이다.

이 팬티도 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감촉이 좋고 시원하고 몸에 붙지도 않고 너무 좋았다.  
처음에 봤을 때는 좀 투박해 보였는데……….
벌써 수없이 여러번 입어서 이젠 꽃무늬도 좀 희끄무레해졌다.

나에게 이 선물을 준 친구는
30년 훨씬 저 너머 옛날의  그 어느날,  황당했던 나의 약혼식에 와 주었던 친구다.
그녀는 그 후 역시 황당 (이번에는 당황이라고 바꿔볼까나?) 스런 내 결혼식에도 와 주었다.  
그리고 8년전 내가 한국 왔을 때 나는 그 친구를 또 만났다.

그 친구와 영분이가 나에게 밥 사주고 노래방까지 갔다.
노래방에서 그녀는 ‘꿈이여 다시한번’을 불렀다.  
그 노래방에서는 부탁도 안했는데 노래가 다 녹음되었다.
그 녹음테이프를 친구들은 부득이 나에게 주었다.

“한국와서 잘 놀다간 약발로 또 한참 잘 살겠네….”  
나도 모르게 외롭고 고달픈 이민자의 넋두리가 나왔다.
그 때 이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약효 떨어지면 또 와.”

영분이의 ‘가을 편지’와  이 친구의 ‘꿈이여…..’  를 나는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이제 이 친구가 오늘부터 의원 사모님이 되셨다.
나는 한국에 와서 박사들하고 막 맞먹고 놀았는데
이제는 의원사모님하고도  또 진짜 의원님하고도 놀게 생겼다.

아니, 그들하고 잘 놀았지만
이제부터는 같이 잘 놀수야 없겠지만……..

이제는 국회의원이 된 안명옥후배를 내가 만나본 것은 단 두번뿐이지만
그녀와의 인연도 참으로 신비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계기가 되어서 내가 인일홈페이지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안명옥의원,   의원사모님이 된 우리 동기 윤혜경.  
진심으로 축하,  축하한다.

혜경아,  그동안 수고 많았겠지만 앞으로는 아마 더 수고함이 있어야할거야.
지금까지 잘 해 왔으니 내내 한결같이 잘 하리라고 믿는다.

나는 지금도 네가 준 꽃무늬 팬티를 입고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단다.
나는 너를 브라질에 가서까지도 매일 기억하겠지?
기억 안 할 도리가 없겠지?
팬티란 참으로 좋은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