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문득 8년전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한 달넘게 한국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날이었다.
그 때는 김포 비행장이었다.  그 때도 나는 남편과 동행이었다.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하는데 남편이 나를 보고  “당신 여권 줘.”  한다.
“당신이 갖고 있잖아요?”   깜짝 놀란 나의 대꾸.
“무슨 소리야?   왜 내가 갖고 있어?”

브라질 떠날 때부터 두 사람의 여권을 같이 쥐고 다닌 사람이 누군데
지금와서 왜 나보고 여권을 달래?
우리 둘이는 옥신각신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고
내 여권은 누구의 호주머니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짐 다 풀어서 찾아봐”  남편의 의견은 이랬지만
어디쯤 있을거라는 짐작이 있어야 짐도 열어보지
게다가 이민보따리만큼이나 큰 이 짐을
어떻게 여기 공항바닥에 풀어놓고  찾아보나?

남편은 서울에 도착해서 곧 나의 여권은 나에게 되돌려주었다는데
나는 받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 날 우리는 떠나지못하고 집으로 되돌아 들어왔다.
공항엔 내 친구도 나왔었지만 남편 친구도 나왔는데 얼마나 창피한지……..

집에 와서 당연히 그 짐을 다 꺼내서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여권은 아무데서도 발견되지않았다.
참 큰일이 난 것이다.

이 일을 어쩐다?
브라질로 전화를 해서 영주권을 다시 만들어야 하나?.
여권을 다시 만들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내 여권은 거주여권인데……
별별 궁리와 고민과 짜증속에 새벽 두시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문득
머리맡 방구석에 놓아둔 종이 쇼핑백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짐을 쌀 때 버리기 아까운 몇몇 좋은 쇼핑백들을 모아 놓아두고 갔던 것이다.

집안,  방안, 책장, 책상 모조리 다 찾아보았는데 저 쇼핑백은 검사 안 해봤던 것이다.
“혹시나?”  하고
벌떡 일어나 쇼핑백을 열어보았더니
아!  글쎄,  그 안에 내 까만 핸드백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나,  핸드백도 안 갖고 갔구나.”
핸드백을 열어보니 그 안에 내 여권이 얌전히 들어있었다.
이 핸드백은 정장용이라 평소에 잘 안 들고다녀서 고만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서 우리는 이틀을 더 머물고 떠났으며
나는 두고두고 남편한테 야단을 맞았는데…..

한번 떠나는 나를 두번 배웅 나왔던 내 친구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너 별 짓 다하고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