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우리 큰 딸 결혼식 하루 전날이었다.
한복 입은 사진을 찍는다고 집으로 사진사가 오고
우리식구는 모두 한복차림으로 포즈를 취하고 거실에서 사진을 여러번 찍었다.

이 사진촬영에 나는 친한 친구 H 와 M, 두명을 초대했었다.
우리 애들을 어려서부터 보아온 이 친구들은
가히 이모나 고모쯤되는 의무감과 기쁨으로 어여쁜 한복을 떨쳐입고 우리와 함께 촬영에 임해주었다.

촬영이 다 끝나서 나는 저녁상을 차리려고  얼른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부엌에서 부산히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한 친구 H 가 한복차림인채로 갑자기 부엌을 들여다보면서

“어!  소피아는 여기 있는데 …….그럼 저 방에 있는 여자는 누구야?”   하고 깜짝 놀란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방에 무슨 여자?”
우리 둘이는 황급히 복도를 지나 우리 방으로 가 보았다.

방문을 여니 거기에는 침대옆에 또 한 친구 M 이 어깨가 다 드러나는 속치마차림으로  엉거주춤 서 있고
조금 떨어져서 옷장앞에 우리 남편이 역시 웃통을 벗어제낀 맨 살 차림으로 서서  멋쩍게 우리를 바라보았다.
“앗!  이게 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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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연고인고 하니….
남편이 먼저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단다.
옷장문을 열어놓고  옷을 벗으면서 옷걸이에 걸고 있었는데
M 이 들어오더니 침대옆에서 저고리를 훌떡 벗더란다.

M 은 옷장문에 가려진 남편을 미처 못 보고 빈 방인줄 알았던 것이다.
와이셔츠를 벗은 남자와 저고리를 벗은 여자가 그제서야
서로를 알아보고 어쩔 줄을 모르는 바로 그 순간에
제 3의 여인 H 가 방에 들어선 것이었다.

H 도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왔다가  웃통을 벗은 남녀를 보고 기겁을 해서 돌아나온 것이다.
엉겁결이라 돌아서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확인은 못하고
으례이 부부지간인줄 알고 나왔는데 막상 마누라는 부엌에 있으니 깜짝 놀래서,
“그럼  방에 있는 그 여자는 누구야?”   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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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벌개서 아무 말도 못하고 민망해하는 두 사람을 보고 우리는 얼마나 웃었던지….

남편과 M 은 서로 알아본 순간부터 어찌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단다.
모르는 남도 아니고  서로 오랜 세월 잘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그렇다고  허물없이 같이서서 옷을 갈아입을 수는 없는 일인데

모르고 이미 벗은 옷을 도로 입고 나갈 수도 없고
갑자기 내외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서로 아는 척을 할수도 모르는척 할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둘이는 돌아서서 묵묵히  이미 벗은 옷 다음의 옷을 만지작거리는 그 순간에 들어선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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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후 오랫동안 이일로 여러번 폭소를 터뜨렸다.
나는 H 에게   “왜 하필 그 때 들어갔어?  좀 더 있다 들어가지.”  하고 웃었다.
H는  “나는 처음에는 귀신인줄 알았어.”   했다.
무안한 M 은 번번히 얼굴이 벌개졌다.

만고강산 태평한 둔보씨 우리 남편만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