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적극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못해서 지금까지 자괴지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이 한가지 있었다.

울릉도에서 돌아오던날, 고속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중간쯤 왔는데 버스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누가 화장실문을 열어놨나부다.”   이건 남편의 추측.
“이 버스에는 화장실 없어요.  아마 누가 토했나봐요.”  나의 말.

시금털털, 역겨운 냄새가 버스안에 진동했다.  나서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도 물론 가만히 참고 앉아있기만 했다.

얼마쯤 가다가 버스가 길 한켠으로 들어서더니 정지했다.
기사가 차내의 실내등을 켜더니 운전석에서 벌떡 일어나 나오더니 승객들을 향하고 서서 물었다.
“무슨 냄새 안 나요?”   얼굴을 잔뜩 지푸리고  화난 목소리였다.

“네에. 냄새나요.”
기사아저씨는 쿵쿵 버스뒷쪽으로 걸어갔다.
나도 자동적으로 머리를 돌려 버스 뒷쪽을 쳐다보았다.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은 맨 뒷쪽줄 어디쯤에
어느 신사하나가  옆좌석의 누구에겐가로 기울였던 상체를 급히 들어 기사와 눈이 마주친 모습이었다.
마치 수색 서치라이트에 갑자기 잡힌듯한 장면이었는데
그 신사의 시선은 당황하고 미안하고 잘못을 들킨듯한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저런…. 아마 부인이 차멀미를 한 모양이군.”  이것이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다음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하는 거요?  여기서?”   기사의 호통소리가 버스안을 울렸던 것이다.
그 남자는 울상을 하고  마치 저지른 죄를 몸으로 덮어감추려는듯 좌석뒤로  몸을 구부렸다.
그 아래 바닥에 그 부인 (실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는 모르지만)  이
토한 오물 옆에 기진맥진 주저앉아있는 모양이다.

“그럼 말을 해야지. 여기다 이러면 어떡하는거요?”
기사의 목청은 높았고 노기를 띄었다.
“갑자기 …  그만…..”
기어들어가는 남자의 소리.

잠시후 기사가 앞으로 돌아왔다.  투덜투덜 중얼중얼대면서……
그러더니 운전석으로 가 앉았다.   버스가 곧 출발했다.

“어머나!”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냥 가다니?   아무 조치도 하지않고 그냥 가다니?
버스의 운전기사가 승객이 멀미가 나서 구토를 했는데 큰소리로 야단만 치고 마치
‘화는 나지만 그래도 내가 용서해준다’ 는듯이 쭝얼쭝얼거리면서 차를 출발시키다니…….

나는 기가 막히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않았다.
저 여자를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거 아닌가?

일으켜세워 버스밖으로 데리고나가 맑은 물로 양치도 좀 시키고 찬 바람도 좀 쐬어주고 무슨 드링크라도 있으면 먹이고
그동안에 버스안의 오물도 처리하고 환기도 좀 하고 …………..
그리고나서 떠나면 안 되나?
당연히 그래야 하는거 아닌가?

그러나 속으로 화를 내면서도 나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아니하였다.
단지 귓속말로 남편에게 기사 흉만 잔뜩 보았을 뿐이었다.
냄새나는 버스안에서 근 두시간을 오면서 나는 생각만 여러가지로 많이 했을뿐이었다.

왜 나는 벌떡 일어나 기사에게 그런 건의를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했을까?
왜 나는 혼자라도 뒷좌석까지 가서 무슨 일이라도 도움을 제의하지 못했을까?

만일 이런 일이 브라질에서 일어났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여기에는 확고한 생각이 든다.

브라질에서였다면 그런 행동을 하는 운전기사는 없었을 것이다.
우선  “아이고. 딱해라.  괜찮아요?”  이런 말은 자동적으로 나왔을 것이다.
옆좌석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무어라도 해 주려고 떠들썩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 기사가 버스 세우기전에 옆 사람이 먼저 기사를 불러 버스를 세웠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여자는 버스안에다 구토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가 브라질 여자였다면 토하기전에 속이 울렁거릴 때 먼저 소리라도 쳐서 버스를 세웠을 것같다.

똑같은 일이 브라질에서 일어났다면
나도 앞뒤 재지않고 기사의 출발을 저지시키고 무어라도 했을것같다.
나는 그들의 반응이 어떠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기에……..

내가 이렇게 말하면 “흥. 브라질은 천국인가베?”  하고 비꼴 사람 분명히 많을 것이다.
천국은 아니다.  
강도,  도둑놈, 거지, 빈민층,  문맹자  득실득실한 곳이고 온갖 부정이 뒤끓는 곳이다.
그러나  인정이 남아있는 순박한 곳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이 날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슬프기도 했고 무력감도 들었고 내 자신이 싫어지기도 했다.

서울에 다 와서 버스에서 내릴 때 나는 그 사람이 무척 궁금하면서도 혹시 마주칠까봐 뒤도 돌아보지않았다.
부끄럽고 착잡한 내 꼴이 들어날까봐 겁도 났던 것일까?
이렇게 나는 소극적이고 비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