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회 - 게시판담당 : 윤순영
글 수 714

아침에 나가야하는데 급히 만들었어요
2005.09.09 12:28:06 (*.134.223.239)
은희언니
나의 25년 전이 생각나네요
전 저희 집의 장녀인데 그리 풍족한 집안도 아니었지만(아! 참 제가 언젠가 어디
댓글에 전 김포 검단면 불로리가 고향이고 아직 땅뙤기 조금 있다고 한 것 같아요)
제 부모님은 자식 넷을 모두 대학 가르치시고, 저는 대학원 다니면서 2년간 모교에서
2년간 조교 생활도 했지요. 그것도 부족하여 시집갈 돈 500만원 미리 달라고 해서
홀로 유학을 떠났지요. 그 당시에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지요. 박사학위까지는
못했지만 또 하나의 석사학위 받는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그리고 중요한것은 남편을
만난것이지요. 그 사람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라 저보다 2년이나 늦게 유학와서는
석박사를 5년만에 마치고 자기 모교로 부임했지요.
근데 은희어니
전 가난하던 그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고 소중합니다
그 흔한 햄버거 하나 맘 편희 사먹을 수 없었지만, 가슴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었어요
두려움이 없었어요. 전 아직도 그 주말 새벽 아침이면 남편과 가파른 언덕 길을 내려와,
학교 도시라서 두 불럭 정도 밖에 되지않는 downtown 의 맥도날드에 앉아서 아침
신문 읽으면서 커피 한 잔 비스킷 하나 시켜서 둘이서 나누워 먹던 그때를 그리워합니다. 남편도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합니다.
은희 언니
끈을 살짝 놓으세요. 그리곤 어느 날 다시 살짝 당기면 이것 저것 많이 붙어서
귀찮아 질지도 몰라요.(제가 주제 넘는 소리를 하네요. 죄송!!!)
저 그렇게 떠나고 울 부모님 특히 엄마가 많이 우셨지만, 전 마냥 즐겁게 지냈어요.
그게 부모 맘이고 자식 맘인가 봐요.
제가 지금 그렇게 지내게 되었지요. 아들이 그리 먼 곳에 있지는 않아도 항상 맘이
애잔해요. 그립구 ......
아마 따님도 씩씩하게 잘 해낼거에요
나름대로 그 생활을 즐기기도 할겁니다
혼자 있을때 느끼는 외로움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그것도 아마 알거에요
제가 혼자 있는 외로움을 즐기듯이요
그런데 힘들고 외로운것은 혼자 살아도 여럿이서 뒹굴고 살아도 힘들고 외로운건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드네요
언니!
여기 밤 11시가 넘으니 제가 졸리운지 글이 두서없이 써지네요
위로해드리고 싶어 뭔가 써야 한다는 생각만 앞섰네요
언니! cheer up!!!!
나의 25년 전이 생각나네요
전 저희 집의 장녀인데 그리 풍족한 집안도 아니었지만(아! 참 제가 언젠가 어디
댓글에 전 김포 검단면 불로리가 고향이고 아직 땅뙤기 조금 있다고 한 것 같아요)
제 부모님은 자식 넷을 모두 대학 가르치시고, 저는 대학원 다니면서 2년간 모교에서
2년간 조교 생활도 했지요. 그것도 부족하여 시집갈 돈 500만원 미리 달라고 해서
홀로 유학을 떠났지요. 그 당시에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지요. 박사학위까지는
못했지만 또 하나의 석사학위 받는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그리고 중요한것은 남편을
만난것이지요. 그 사람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라 저보다 2년이나 늦게 유학와서는
석박사를 5년만에 마치고 자기 모교로 부임했지요.
근데 은희어니
전 가난하던 그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고 소중합니다
그 흔한 햄버거 하나 맘 편희 사먹을 수 없었지만, 가슴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었어요
두려움이 없었어요. 전 아직도 그 주말 새벽 아침이면 남편과 가파른 언덕 길을 내려와,
학교 도시라서 두 불럭 정도 밖에 되지않는 downtown 의 맥도날드에 앉아서 아침
신문 읽으면서 커피 한 잔 비스킷 하나 시켜서 둘이서 나누워 먹던 그때를 그리워합니다. 남편도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합니다.
은희 언니
끈을 살짝 놓으세요. 그리곤 어느 날 다시 살짝 당기면 이것 저것 많이 붙어서
귀찮아 질지도 몰라요.(제가 주제 넘는 소리를 하네요. 죄송!!!)
저 그렇게 떠나고 울 부모님 특히 엄마가 많이 우셨지만, 전 마냥 즐겁게 지냈어요.
그게 부모 맘이고 자식 맘인가 봐요.
제가 지금 그렇게 지내게 되었지요. 아들이 그리 먼 곳에 있지는 않아도 항상 맘이
애잔해요. 그립구 ......
아마 따님도 씩씩하게 잘 해낼거에요
나름대로 그 생활을 즐기기도 할겁니다
혼자 있을때 느끼는 외로움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그것도 아마 알거에요
제가 혼자 있는 외로움을 즐기듯이요
그런데 힘들고 외로운것은 혼자 살아도 여럿이서 뒹굴고 살아도 힘들고 외로운건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드네요
언니!
여기 밤 11시가 넘으니 제가 졸리운지 글이 두서없이 써지네요
위로해드리고 싶어 뭔가 써야 한다는 생각만 앞섰네요
언니! cheer up!!!!
2005.09.09 15:16:03 (*.84.109.6)
오! 미국에 있는 인자....
이렇게 주고 받고 위로하는 날이 금새 돌아왔네그려.
늦은밤 이렇게 나를 위해서 이역만리에서 글을 띄우는 인자를
옆동네라면 뛰어가서 만나고 싶구료.
그 딸아이는 지금 생각하면 애진작에 평범치가 않은 지 인생을 살아갈
조짐이 보였는가하네.
있는듯 없는듯 지 하는일 몰두하면 외로움도 안타고 혼자 토닥토닥 노는것이
다락방에 올라앉아 만화책보기 책읽기 인형옷만들어 오려 입히기등등등.....
중학시절에는 만화책 한권씩 그려내느라 눈도 나빠져서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안경을 써야했고 그 시절에 만화서클 친구들 사귀어 지금까지 교류하니
참으로 남다른것이많네. 지금도 극단시절 동료들 연극에 영상작업 그냥
무료봉사하다시피 하고 프라하도 그래 며칠 늦게 가지않았나 싶으이...
인자 말대로 그저 저는 지 사는방식대로 자유롭게 사는데
의식은 제법 깨어있다고 하는 지 아버지나 나도 옛어른들과 똑같이
새끼에게는 전통적인 사고가 그대로이니 지 자식에게 향한 마음은
그저 본능적인 종족본능이 앞서고 평범한것이 진리고 진실이 아닐까하는
되돌이표속에 머무르는 자식한테만은 배움도 깨어있는 의식도
망각에 늪으로 던져버리는 무지밖에는 없는듯 싶으이.
그러니 잘난체 해 본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지 무엇이겠는가.
유학도 인자처럼 제때 하는 공부가 아니고 뒤 늦게 하는양 보여져서 그렇지
저는 인자 말처럼 그리 생각할거야 아마도......
여럿이서 모여있어도 군중속에 고독이라 하지 않던가,
그래, 인간은 혼자 있어도 외로웁고 여럿속에 있어도 외로운 존재
각기 나름대로 시작도 모르고 끝도 모르는 시간속에 세월이라는 단어만 알 뿐이지
만질수도없고 형체도 모르는 그 흐름을 어이 알꺼나.
지금 따듯한 피가 흐르고 눈에서 눈물이흐르고 피붙이 살붙이가 안보이면 그리웁고
친구가 그리웁고 그래서 나의 존재를 확인 할 뿐이지
우리나이 이 삶이라는것은
살아있어도 죽은듯이 죽었어도 살아있는듯 하지 않을까싶으이.....
얼마있음 인자아우도 그곳 생활 청산하고 고향에 발붙일듯이 말한것으로
기억나는데 돌아오면 한번 진솔하게 만날날이 있지싶네.
김포도 남달리 인연이 있는듯 하니 이게 보통인연은 넘는것같고말야.
인자가족 떨어져 살아도 먼 이국땅에서 남다르게 만난 사랑
몇배로 사랑 넘쳐 날 것인즉 부디 건강하시게나....
이렇게 주고 받고 위로하는 날이 금새 돌아왔네그려.
늦은밤 이렇게 나를 위해서 이역만리에서 글을 띄우는 인자를
옆동네라면 뛰어가서 만나고 싶구료.
그 딸아이는 지금 생각하면 애진작에 평범치가 않은 지 인생을 살아갈
조짐이 보였는가하네.
있는듯 없는듯 지 하는일 몰두하면 외로움도 안타고 혼자 토닥토닥 노는것이
다락방에 올라앉아 만화책보기 책읽기 인형옷만들어 오려 입히기등등등.....
중학시절에는 만화책 한권씩 그려내느라 눈도 나빠져서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안경을 써야했고 그 시절에 만화서클 친구들 사귀어 지금까지 교류하니
참으로 남다른것이많네. 지금도 극단시절 동료들 연극에 영상작업 그냥
무료봉사하다시피 하고 프라하도 그래 며칠 늦게 가지않았나 싶으이...
인자 말대로 그저 저는 지 사는방식대로 자유롭게 사는데
의식은 제법 깨어있다고 하는 지 아버지나 나도 옛어른들과 똑같이
새끼에게는 전통적인 사고가 그대로이니 지 자식에게 향한 마음은
그저 본능적인 종족본능이 앞서고 평범한것이 진리고 진실이 아닐까하는
되돌이표속에 머무르는 자식한테만은 배움도 깨어있는 의식도
망각에 늪으로 던져버리는 무지밖에는 없는듯 싶으이.
그러니 잘난체 해 본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지 무엇이겠는가.
유학도 인자처럼 제때 하는 공부가 아니고 뒤 늦게 하는양 보여져서 그렇지
저는 인자 말처럼 그리 생각할거야 아마도......
여럿이서 모여있어도 군중속에 고독이라 하지 않던가,
그래, 인간은 혼자 있어도 외로웁고 여럿속에 있어도 외로운 존재
각기 나름대로 시작도 모르고 끝도 모르는 시간속에 세월이라는 단어만 알 뿐이지
만질수도없고 형체도 모르는 그 흐름을 어이 알꺼나.
지금 따듯한 피가 흐르고 눈에서 눈물이흐르고 피붙이 살붙이가 안보이면 그리웁고
친구가 그리웁고 그래서 나의 존재를 확인 할 뿐이지
우리나이 이 삶이라는것은
살아있어도 죽은듯이 죽었어도 살아있는듯 하지 않을까싶으이.....
얼마있음 인자아우도 그곳 생활 청산하고 고향에 발붙일듯이 말한것으로
기억나는데 돌아오면 한번 진솔하게 만날날이 있지싶네.
김포도 남달리 인연이 있는듯 하니 이게 보통인연은 넘는것같고말야.
인자가족 떨어져 살아도 먼 이국땅에서 남다르게 만난 사랑
몇배로 사랑 넘쳐 날 것인즉 부디 건강하시게나....
2005.09.09 19:10:47 (*.226.183.157)
은희언니 뜽금없는 소리 한번 하려구요. 주위를 환기 시켜 드리려고!
제친구 중에(사실은 친구의 친군데 그냥 마음이 잘 맞아서 우리끼리 인천에 와서 같이 자고 그랬어요) 김포에 사는 박은희라는 애가 있었어요.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김포에서 의원을 하고 계셔서 자기 아버지를 모두 박의사 라고 부른다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교육열이 높으셨는지 애들은 모두 서울에서 할머니가 데리고 계셨는데 오빠 은희 여동생 남동생 오래되서 형제가 또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형제들이 모두 재기발랄에 개성들이 강해서 공부도 아주 잘하고 모두가 튀는 편이었어요.
특히 우리친구 은희는 이화여고에다 서울대 미대를 나왔는데 영어 성경공부 서클에 들어가 공부한게 화근이 되어 (영어를 너무 잘하게 되서)결국 이민도 안간 처지에 미국사람과 국제 결혼을 했답니다.
처음에는 덕수궁 미술관에서 관광온 미국 화가를 만나 봉사로가이드를 해주다가 후에 펜팔로 죽 연애를 했는데 그 화가가 독신주의자였기 때문에 다행이도(우리 입장에서는) 헤어졌는데 다시 교회에서 미국군인 아저씨를 만나 마침내 결혼 했어요.
집에서도 "쟤는 팔자가 그런가보다"하고 체념하셨다고 그러더군요. 후반부는 제가 일본 가 있었기 때문에 들은 얘기에요.
본래 은희가 답답한건 무지하게 싫어하고 말을 좋아 해서 매일 말그림만 그렸는데 특히 광활한광야를 달리는 말을 그리기를 좋아 해서 서울대 졸업 작품도 커다란 말과 함께 서있는 자화상이었어요.
졸업후에 처음에는 이대 후문 티파니 안집에서 이층 비어있는 다다미 방을 빌려 아래층은 피아니스트가 윗층은 가난한 화가가 산다고 하면서 우리는 매일 만나서 놀고 밤새우고 친한 명사님들을 초청해서 티파티도 열었는데 생각해보니 참 영화 같았네요
거기가 김활란 박사님 손녀되는(언니의 외손녀) 제 친구집이었어요. 본래 그친구의 친구였고요) 나중에는 명동에서 건물가진 친구하고 공동으로 화실을 잠시 열었던 기억이 있고 그다음은 잘 모르겠어요. 그떄도 음악인 초청해서 작은 발표회도 했는데..........
인일은 안나왔지만 첼로의 오혜숙이를 제가 데려와서(여중에서 경기여고로 가서 그당시 서울음대 다녔어요) 발표한 일도 있었는데............................................
일시귀국해서 보니까 친구들 경조사에 그남편이 다 따라 다니고 한국말로 "여보 여보"하며 살갑기가 참 대단하더라구요. 우리 남편은 경상도 사나이에 무뚝뚝 하기가 정말 "어이구 외국인이면 말이나 모른다고 하지"
결혼 전에 우리 친구들끼리(모두 피아니스트지요) 모여서 가끔 살롱 리사이탈을 열어 발표를 하곤 했는데 그 미국남자 친구가 또 다른 피아노 전공의 친구를 데리고 참석한 일도 있고요.
음악회가 끝나면 각자가 준비해 온 다과를 놓고 놀면서 품평회도 하고 했는데 당시로서는 좀 파격적인 모임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대학 친구들은 2학년 때 윤학원 선생님이 만드신 마드리갈 합창단을 함께 다니면서 재미있게 공부하며 노는 법을 많이 배웠답니다.
선생님은 음악담당이시고 다른 두분이 한분은 재정 다른 한분이 연출의 귀재라고 할만큼 재미있게 끌어 주셨거든요.
제친구가 윤학원선생님께서 지휘자로 계셨던 마포 공덕 교회 반주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리 친구들과 성악과 친구들을 모두 몰고 가서 (전 반주자 했어요)놀았지요.
엄청 좋은 단원구성으로 창단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는데 그화근(합창단으로서는)으로 윤선생님은 떠서 선명회 지휘자로 스카우트 되어 가시고 교회도 영락교회에서 지휘자로 영입해 가고 저도 지도 교수님께 동아콩쿨 준비 안한다고 엄청 야단맞고 그만두고 다른 친구들도 3학년이 되면서 각자의 공부 때문에 단체로 그만두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우여곡절 끝에 마드리갈이라는 합창단은 부활해서 잘 굴러 가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희 이야기 하다 삼천포롤 빠져 버렸군요. 저희가 본래 그래요. 리자온니도 잘 그런대요.
허지만 이거 읽는 동안 언니 다른 일은 잠깐 잊으셨지요? 그럼 목적이 달성된거지요.
저도 이래뵈도 산전수전 객지생활에 시집살이에 자식 이별까지 다해 봤거든요..
지금도 아시다시피 이별 중이에요.결혼해서 보낸게 좀 마음편할 뿐이지요.
너무 길어서 언제 날아갈까 걱정되빈다. 그럼 이몸은 헛소리 그만하고 저녁이아 먹으로 갈랍니다. 흉보려면 속으로만 보이소 기죽이지말고들!(:l)
제친구 중에(사실은 친구의 친군데 그냥 마음이 잘 맞아서 우리끼리 인천에 와서 같이 자고 그랬어요) 김포에 사는 박은희라는 애가 있었어요.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김포에서 의원을 하고 계셔서 자기 아버지를 모두 박의사 라고 부른다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교육열이 높으셨는지 애들은 모두 서울에서 할머니가 데리고 계셨는데 오빠 은희 여동생 남동생 오래되서 형제가 또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형제들이 모두 재기발랄에 개성들이 강해서 공부도 아주 잘하고 모두가 튀는 편이었어요.
특히 우리친구 은희는 이화여고에다 서울대 미대를 나왔는데 영어 성경공부 서클에 들어가 공부한게 화근이 되어 (영어를 너무 잘하게 되서)결국 이민도 안간 처지에 미국사람과 국제 결혼을 했답니다.
처음에는 덕수궁 미술관에서 관광온 미국 화가를 만나 봉사로가이드를 해주다가 후에 펜팔로 죽 연애를 했는데 그 화가가 독신주의자였기 때문에 다행이도(우리 입장에서는) 헤어졌는데 다시 교회에서 미국군인 아저씨를 만나 마침내 결혼 했어요.
집에서도 "쟤는 팔자가 그런가보다"하고 체념하셨다고 그러더군요. 후반부는 제가 일본 가 있었기 때문에 들은 얘기에요.
본래 은희가 답답한건 무지하게 싫어하고 말을 좋아 해서 매일 말그림만 그렸는데 특히 광활한광야를 달리는 말을 그리기를 좋아 해서 서울대 졸업 작품도 커다란 말과 함께 서있는 자화상이었어요.
졸업후에 처음에는 이대 후문 티파니 안집에서 이층 비어있는 다다미 방을 빌려 아래층은 피아니스트가 윗층은 가난한 화가가 산다고 하면서 우리는 매일 만나서 놀고 밤새우고 친한 명사님들을 초청해서 티파티도 열었는데 생각해보니 참 영화 같았네요
거기가 김활란 박사님 손녀되는(언니의 외손녀) 제 친구집이었어요. 본래 그친구의 친구였고요) 나중에는 명동에서 건물가진 친구하고 공동으로 화실을 잠시 열었던 기억이 있고 그다음은 잘 모르겠어요. 그떄도 음악인 초청해서 작은 발표회도 했는데..........
인일은 안나왔지만 첼로의 오혜숙이를 제가 데려와서(여중에서 경기여고로 가서 그당시 서울음대 다녔어요) 발표한 일도 있었는데............................................
일시귀국해서 보니까 친구들 경조사에 그남편이 다 따라 다니고 한국말로 "여보 여보"하며 살갑기가 참 대단하더라구요. 우리 남편은 경상도 사나이에 무뚝뚝 하기가 정말 "어이구 외국인이면 말이나 모른다고 하지"
결혼 전에 우리 친구들끼리(모두 피아니스트지요) 모여서 가끔 살롱 리사이탈을 열어 발표를 하곤 했는데 그 미국남자 친구가 또 다른 피아노 전공의 친구를 데리고 참석한 일도 있고요.
음악회가 끝나면 각자가 준비해 온 다과를 놓고 놀면서 품평회도 하고 했는데 당시로서는 좀 파격적인 모임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대학 친구들은 2학년 때 윤학원 선생님이 만드신 마드리갈 합창단을 함께 다니면서 재미있게 공부하며 노는 법을 많이 배웠답니다.
선생님은 음악담당이시고 다른 두분이 한분은 재정 다른 한분이 연출의 귀재라고 할만큼 재미있게 끌어 주셨거든요.
제친구가 윤학원선생님께서 지휘자로 계셨던 마포 공덕 교회 반주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리 친구들과 성악과 친구들을 모두 몰고 가서 (전 반주자 했어요)놀았지요.
엄청 좋은 단원구성으로 창단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는데 그화근(합창단으로서는)으로 윤선생님은 떠서 선명회 지휘자로 스카우트 되어 가시고 교회도 영락교회에서 지휘자로 영입해 가고 저도 지도 교수님께 동아콩쿨 준비 안한다고 엄청 야단맞고 그만두고 다른 친구들도 3학년이 되면서 각자의 공부 때문에 단체로 그만두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우여곡절 끝에 마드리갈이라는 합창단은 부활해서 잘 굴러 가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희 이야기 하다 삼천포롤 빠져 버렸군요. 저희가 본래 그래요. 리자온니도 잘 그런대요.
허지만 이거 읽는 동안 언니 다른 일은 잠깐 잊으셨지요? 그럼 목적이 달성된거지요.
저도 이래뵈도 산전수전 객지생활에 시집살이에 자식 이별까지 다해 봤거든요..
지금도 아시다시피 이별 중이에요.결혼해서 보낸게 좀 마음편할 뿐이지요.
너무 길어서 언제 날아갈까 걱정되빈다. 그럼 이몸은 헛소리 그만하고 저녁이아 먹으로 갈랍니다. 흉보려면 속으로만 보이소 기죽이지말고들!(:l)
2005.09.09 21:51:56 (*.84.109.6)
명옥이 그대 정말 대단하구료.
이런 장문의 글을 두드리느라고 .....고맙고 고마우이...
그런데 고 박의사집이 바로 우리 바깥사람 한동네집이라네.
세상 참으로 좁은것 이렇게 또 느끼네그려.그리고 귀에대고 살짝꿍[작은소리로]
아마도 은희라는 그 친구 언니일찌 싶으이. 은숙씨라고 고 은숙씨가 우리 그사람
첫사랑이라네. 초등때 양곡초등학교들 나왔을거야 아마.
자기집은 아버님께서 가난이기고 집안 일으키실려고 오직 돈버시는일에만 전념하시느라
정서적으로 메마르다못해 무지하셨기에 어렸을때 그 집분위기를 몹시 부러워하고
더불어 은희라는친구 언니를 좋아했는가보데.
결혼할때 초등동창들이 은근슬쩍 놀리면서 어릴때 이야기들을 하더라고...
정말로 명옥이 때문에 웃고 있네 세상사 이러저러 재미있는 인연이지뭔가,
그러고보니 은희라는친구 동명이인 이지만 정이가네그려
명옥이는 내가 생각해도 음악을 해서인지 정서적으로 그림을 하고 글을 쓰는
쪽으로는 무엇이든지 잘 하는 재주꾼이네
10월 4일 만나면 시집도 주고 다른것도 주고싶은것이있다네
미국사는 친구남편도 음악하는사람인데 제고 6회이고 L.A쪽에서는
30년 넘게 교회합창 지도하고 지휘자도 오랜동안 하고 성가,우리가곡 해마다
발표해서 그곳 교포사회에서 칭송이 자자하고 거의 합창단원들이 의사부인,
간호사들이어서 좀 화려한것 같드라구 발표회끝나고 C.D보내오면 보곤한다네.
그쪽에서는 드레스도 몇번 갈아입고 대단치도 않더군,참 친구남편은 서울음대작곡과
출신이고 피아노 바이올린도 수준급이라 우리가 가면 연주도 해주고
피아노실이 엄청크고 피아노도 그랜드피아노중 이름있는 좋은것이라 소리 또한 좋고
다른것은 몰라도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웁게 보이더라구.
그래도 가끔 고국을 그리워하고 친구는 나하고 가깝게 살고싶어하는데
그게 그리 쉽겠나 말이지.....
덕분에 이얘기 저얘기 즐거웠었네.
10월 4일 반갑게 만나자고요....
보고싶당!
이런 장문의 글을 두드리느라고 .....고맙고 고마우이...
그런데 고 박의사집이 바로 우리 바깥사람 한동네집이라네.
세상 참으로 좁은것 이렇게 또 느끼네그려.그리고 귀에대고 살짝꿍[작은소리로]
아마도 은희라는 그 친구 언니일찌 싶으이. 은숙씨라고 고 은숙씨가 우리 그사람
첫사랑이라네. 초등때 양곡초등학교들 나왔을거야 아마.
자기집은 아버님께서 가난이기고 집안 일으키실려고 오직 돈버시는일에만 전념하시느라
정서적으로 메마르다못해 무지하셨기에 어렸을때 그 집분위기를 몹시 부러워하고
더불어 은희라는친구 언니를 좋아했는가보데.
결혼할때 초등동창들이 은근슬쩍 놀리면서 어릴때 이야기들을 하더라고...
정말로 명옥이 때문에 웃고 있네 세상사 이러저러 재미있는 인연이지뭔가,
그러고보니 은희라는친구 동명이인 이지만 정이가네그려
명옥이는 내가 생각해도 음악을 해서인지 정서적으로 그림을 하고 글을 쓰는
쪽으로는 무엇이든지 잘 하는 재주꾼이네
10월 4일 만나면 시집도 주고 다른것도 주고싶은것이있다네
미국사는 친구남편도 음악하는사람인데 제고 6회이고 L.A쪽에서는
30년 넘게 교회합창 지도하고 지휘자도 오랜동안 하고 성가,우리가곡 해마다
발표해서 그곳 교포사회에서 칭송이 자자하고 거의 합창단원들이 의사부인,
간호사들이어서 좀 화려한것 같드라구 발표회끝나고 C.D보내오면 보곤한다네.
그쪽에서는 드레스도 몇번 갈아입고 대단치도 않더군,참 친구남편은 서울음대작곡과
출신이고 피아노 바이올린도 수준급이라 우리가 가면 연주도 해주고
피아노실이 엄청크고 피아노도 그랜드피아노중 이름있는 좋은것이라 소리 또한 좋고
다른것은 몰라도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웁게 보이더라구.
그래도 가끔 고국을 그리워하고 친구는 나하고 가깝게 살고싶어하는데
그게 그리 쉽겠나 말이지.....
덕분에 이얘기 저얘기 즐거웠었네.
10월 4일 반갑게 만나자고요....
보고싶당!
2005.09.21 20:32:30 (*.84.109.111)
여기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내가 동생들에게 얼마나 위안을 받고
행복한 마음을 같고 외로운 시간을 잘지냈는지 알겠네요.
인자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12기방에 드나드는것 같아 반가웁고
30주년 참석 못하는것은 서운하지만 나중에 볼 기회가 얼마든지 있으리라
기대가 되네.
명옥이 이글을 읽고보니 다시 한번 우연치고는 기막힌 연이네
알지도 못하던 인물들이 나하고 아주 무관하지 않은것 같으니 말이지
그런데 시어머님 우환으로 그렇게 만날날을 기대하던 봄날 모임에
참석치 못한다니 정말 섭섭하네그려.
옥규말 말따나 또 알겠나 우리가 그곳으로 찾아가 볼 날이 있을지.....
어떤 이유이든간에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우리 그것을 한번 믿어보자구요.
본인 건강도 한번 적신호가 온것같은데 본인의 건강도 조심하구.
행복한 마음을 같고 외로운 시간을 잘지냈는지 알겠네요.
인자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12기방에 드나드는것 같아 반가웁고
30주년 참석 못하는것은 서운하지만 나중에 볼 기회가 얼마든지 있으리라
기대가 되네.
명옥이 이글을 읽고보니 다시 한번 우연치고는 기막힌 연이네
알지도 못하던 인물들이 나하고 아주 무관하지 않은것 같으니 말이지
그런데 시어머님 우환으로 그렇게 만날날을 기대하던 봄날 모임에
참석치 못한다니 정말 섭섭하네그려.
옥규말 말따나 또 알겠나 우리가 그곳으로 찾아가 볼 날이 있을지.....
어떤 이유이든간에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우리 그것을 한번 믿어보자구요.
본인 건강도 한번 적신호가 온것같은데 본인의 건강도 조심하구.
그래도 우는 모습보다는 나을것도 같으네.
사진찍기 싫어했는데 요즈음 홈피때문에 못난 모습이라도
올려주고,
또 이리 위로해주니 감사하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