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나
이 은 미
하하- 웃는 내 목소리에
정갈한 순수함 대신
적당한 타협과 체념의
기름기가 배어 있음에
흠칫 놀란다.
펑퍼짐해진 몸집에
균형을 이루는 조화로움인가.
안달과 조바심 대신
슬픔과 쓰라림도
투명하게 맞을 수 있는
불혹(不惑)의 언저리에 있지만
뜨거운 열정과 과묵한 예리함은
아직 내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데.
여유롭게 많이 가진 건 없지만
가파르게 올라온
까마득히 보이는
삶의 계단을 뒤로하고
이제는
서둘지 않는 마음으로
헛딛지 않는 걸음으로
천천히 계속
오르고 싶은데.
( 99.10 )
기억에 남는 은미의 인상은 깜찍함이었다.
구태여 영화배우에 비교한다면...
오드리 헵번이랄까???
그땐 남자반, 여자반 각각 달랑 한 반씩이라
어쩔 수 없이 친하게 지낼 수 밖에 없는 숙명이었다 ㅋㅋㅋ
가끔 무리지어 은미네 집에 놀러가면 어린이용 잡지가 책꽂이에 즐비해 나를 반갑게 했다.
집에 올 때까지 책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즈음 상냥하고 기품이 넘치시는 은미어머님 왈
'명자는 책을 참 좋아하는구나. 우리 은미랑 사이좋게 지내거라'
그 맑은 목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은미야, 네 어머니 지금도 평안하시니?
.
.
아마도 은미의 깜찍함과 명랑함은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