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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정동섭 선생님 기억해.난 폐병으로 돌아가신걸로 아는데'
무섭지만 따뜻한 예쁜 선생님. 어디 누워 계실까
너랑나랑 같은반이었으니 잘알겠지.
그런데 어렸을때 선생님 댁도 가곤 했구나.
어느날 공책을 다쓰고 쓸데가 없어 공책겉 표지에 이어서 쓰고있는데
정선생님이 수업끝나고 집에가지말고 남으라더군
어린마음에 야단맞는구나 종일 맘조리고 하루를 보냈지.
드디어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따라오라더군.
쭐래쭐래 좇아간곳을 ? 글쎄 문방구.
공책과 연필을 잔뜩사주셔서 집에가서 얼마나 자랑을 했던지.
잊지 못할 선생님야.
너 본지 10년되는구나. 내동창과 사니 잘살고 있겠지.
열심히 또 살아라
>
> 2004년 이은미
>
>올해로 만46세인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니까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의 일이다.
>
>
>2학년이 되어서 우리 반을 맡으신 선생님은 그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이 난 이국적인 외모의 노처녀 여선생님이셨다. 약간 신경질적이고 무섭긴 하지만 친절하고 세련된 그 선생님을 우리는 무척 따르며 좋아했다.
>그런데 학기 초가 지난 4월 어느 날부터 안색이 안 좋으시던 선생님은 건강이 악화되어 급기야 몸져누운 채 학교에 나오시지 못하게 되었다.
>안타까워하기만 하던 우리들은 6월의 어느 주말에 몇몇이서 드디어 선생님 댁에 문병을 가기로 하고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끝에 각각 달걀, 꽃, 사탕 등을 나누어 사 가기로 결정했다. 내게는 그 때 막 나오기 시작한 토마토가 배정되었다.
>
>
>선생님 댁에 가기로 했으니 당장 토마토를 사달라고 조르는 내게 어머니는
>“선생님께 문병 가서 드릴 거니까 내일 가기 전에 가게에 가서 싱싱한 것으로 사줄게 조르지 말고 기다려라.”
>하셨다.
>그런데 일요일인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어머니를 졸라 가게에 가보니 싱싱한 토마토는 새로 안 들어왔고, 며칠 전부터 있던 꼭지가 시든 토마토만 있었다. 그 근처의 가게를 다 돌아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되어 발을 동동 구르는 내게 어머니는 난감한 표정으로 십 원짜리 종이 돈 세장을 주시며 선생님 댁까지 가는 동안 보이는 가게에 다 들어가 보고 혹시 구하지 못하면 그냥 빈손으로 가서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라며, 그래도 선생님은 이해하실 거라고 나를 위로하셨다.
>
>짚으로 엮어 만든 달걀 꾸러미를 가지고 온 친구, 꽃을 사온 친구, 사탕을 사온 친구들 틈에서 나는 풀이 죽어 걸어가며 이 가게 저 가게를 지날 때마다 들어가 보았지만 선생님 댁에 도착할 때까지 결국 싱싱한 토마토를 살 수 없었고 내 손에 쥐어진 삼십 원은 꼬깃꼬깃 접혀져 땀에 젖어 있었다.
>
>자리에 누워계시던 선생님은 이제 겨우 국민학교 2학년밖에 안 된 우리들의 행동이 대견하다고 하시면서 반가운 눈물을 흘리셨다.
>
>친구들이 정성껏 준비해간 선물을 드리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나도 무엇인가를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는 마음에 손에 쥐고 있던 꼬깃꼬깃해진 종이돈 삼십 원을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져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고 자초지종을 말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선생님은 그 삼십 원을 다시 내 손에 쥐어주시며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괜찮아, 은미야”
>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생님은 암이 발병되신 거였고, 그 후 치료를 위해 수술을 받으시게 되어 우리 반은 다른 선생님으로 교체되고 2학년을 마치게 되었다.
>예쁜, 미혼의 젊은 나이에 암의 습격을 받으신 불쌍한 선생님은 그 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다시 하시게 되었지만 내가 6학년이 되던 해 온 몸으로 암세포가 전이되어 결국 돌아가셨다.
>
>말기에 병원에 입원해 계신 선생님을 다시 찾아뵈었을 때 나는 2학년 때와 달리 용기를 내어
>“선생님, 많이 아프시지요!”
>하고 손을 잡아드렸다. 그러나 그 때도 2학년 때의 그 삼십 원에 대해서는 바른 설명이나 변명을 하지 못했다.
> 선생님은 심한 고통으로 그리고 독한 진통제에 취해서 눈을 감으신 채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괜찮--아---------”
>
>
>선생님은 가시고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긴 나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교사가 되었지만 순수했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열 때마다 ‘괜찮아.’라는 그 말은 영원히 정리되지 못한 안타깝고도 애절한 빚으로 남아 내 가슴을 때리며 되돌아오곤 한다.
>선생님은 그 때 구겨진 삼십 원의 의미를 아셨을까?
>그리고 ---- 내 마음을 아셨을까?
>
>
>
무섭지만 따뜻한 예쁜 선생님. 어디 누워 계실까
너랑나랑 같은반이었으니 잘알겠지.
그런데 어렸을때 선생님 댁도 가곤 했구나.
어느날 공책을 다쓰고 쓸데가 없어 공책겉 표지에 이어서 쓰고있는데
정선생님이 수업끝나고 집에가지말고 남으라더군
어린마음에 야단맞는구나 종일 맘조리고 하루를 보냈지.
드디어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따라오라더군.
쭐래쭐래 좇아간곳을 ? 글쎄 문방구.
공책과 연필을 잔뜩사주셔서 집에가서 얼마나 자랑을 했던지.
잊지 못할 선생님야.
너 본지 10년되는구나. 내동창과 사니 잘살고 있겠지.
열심히 또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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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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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만46세인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니까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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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되어서 우리 반을 맡으신 선생님은 그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이 난 이국적인 외모의 노처녀 여선생님이셨다. 약간 신경질적이고 무섭긴 하지만 친절하고 세련된 그 선생님을 우리는 무척 따르며 좋아했다.
>그런데 학기 초가 지난 4월 어느 날부터 안색이 안 좋으시던 선생님은 건강이 악화되어 급기야 몸져누운 채 학교에 나오시지 못하게 되었다.
>안타까워하기만 하던 우리들은 6월의 어느 주말에 몇몇이서 드디어 선생님 댁에 문병을 가기로 하고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끝에 각각 달걀, 꽃, 사탕 등을 나누어 사 가기로 결정했다. 내게는 그 때 막 나오기 시작한 토마토가 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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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댁에 가기로 했으니 당장 토마토를 사달라고 조르는 내게 어머니는
>“선생님께 문병 가서 드릴 거니까 내일 가기 전에 가게에 가서 싱싱한 것으로 사줄게 조르지 말고 기다려라.”
>하셨다.
>그런데 일요일인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어머니를 졸라 가게에 가보니 싱싱한 토마토는 새로 안 들어왔고, 며칠 전부터 있던 꼭지가 시든 토마토만 있었다. 그 근처의 가게를 다 돌아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되어 발을 동동 구르는 내게 어머니는 난감한 표정으로 십 원짜리 종이 돈 세장을 주시며 선생님 댁까지 가는 동안 보이는 가게에 다 들어가 보고 혹시 구하지 못하면 그냥 빈손으로 가서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라며, 그래도 선생님은 이해하실 거라고 나를 위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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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으로 엮어 만든 달걀 꾸러미를 가지고 온 친구, 꽃을 사온 친구, 사탕을 사온 친구들 틈에서 나는 풀이 죽어 걸어가며 이 가게 저 가게를 지날 때마다 들어가 보았지만 선생님 댁에 도착할 때까지 결국 싱싱한 토마토를 살 수 없었고 내 손에 쥐어진 삼십 원은 꼬깃꼬깃 접혀져 땀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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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누워계시던 선생님은 이제 겨우 국민학교 2학년밖에 안 된 우리들의 행동이 대견하다고 하시면서 반가운 눈물을 흘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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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정성껏 준비해간 선물을 드리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나도 무엇인가를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는 마음에 손에 쥐고 있던 꼬깃꼬깃해진 종이돈 삼십 원을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져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고 자초지종을 말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선생님은 그 삼십 원을 다시 내 손에 쥐어주시며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괜찮아, 은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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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생님은 암이 발병되신 거였고, 그 후 치료를 위해 수술을 받으시게 되어 우리 반은 다른 선생님으로 교체되고 2학년을 마치게 되었다.
>예쁜, 미혼의 젊은 나이에 암의 습격을 받으신 불쌍한 선생님은 그 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다시 하시게 되었지만 내가 6학년이 되던 해 온 몸으로 암세포가 전이되어 결국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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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에 병원에 입원해 계신 선생님을 다시 찾아뵈었을 때 나는 2학년 때와 달리 용기를 내어
>“선생님, 많이 아프시지요!”
>하고 손을 잡아드렸다. 그러나 그 때도 2학년 때의 그 삼십 원에 대해서는 바른 설명이나 변명을 하지 못했다.
> 선생님은 심한 고통으로 그리고 독한 진통제에 취해서 눈을 감으신 채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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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은 가시고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긴 나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교사가 되었지만 순수했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열 때마다 ‘괜찮아.’라는 그 말은 영원히 정리되지 못한 안타깝고도 애절한 빚으로 남아 내 가슴을 때리며 되돌아오곤 한다.
>선생님은 그 때 구겨진 삼십 원의 의미를 아셨을까?
>그리고 ---- 내 마음을 아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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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1 14:48:03 (*.235.13.179)
동창회 홈피에 들어오니 남자동창도 만나게 되네.
위웅일씨! 반가워요! 위웅일씨가 몇 년 전 엘지빌딩의 보스로 있을 적, 삶에 지쳐있었던 내게 무척 부럽게 보여지는 삶이었답니다.
위웅일씨! 반가워요! 위웅일씨가 몇 년 전 엘지빌딩의 보스로 있을 적, 삶에 지쳐있었던 내게 무척 부럽게 보여지는 삶이었답니다.
2006.08.21 15:27:31 (*.208.153.131)
위웅일씨
우리 홈피에서 손님들도 소속을 밝히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고20. 아무개 라던지
인고74.이철수 라던지..
수정하시고 친구도 만나뵙기 바랍니다
우리 홈피에서 손님들도 소속을 밝히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고20. 아무개 라던지
인고74.이철수 라던지..
수정하시고 친구도 만나뵙기 바랍니다
2006.08.21 16:05:38 (*.240.127.26)
제가 대신 밝힙니다. 위웅일-제고 20회 입니다.
저와 한명자,윤정수,조선옥, 지숙완 이렇게와 동명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구요.
저와 한명자,윤정수,조선옥, 지숙완 이렇게와 동명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구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단다.
어느 날 오후, 엄마가 동생과 숙제 빨리하기 경쟁을 시키셨어^^
숙제 먼저 다 하는 사람 맛있는 거 주신다고 말야.
마루에 배 쭉 깔고 숙제하려다가 그만 머리가 헷까닥하는 바람에
잔머리를 굴렸지. 10칸짜리 노트에 빽빽히 써야 할 글씨를 네 칸을 한 칸인양 듬성듬성 써 버렸지.ㅋㅋ
그 다음 날 숙제 검사를 하는데 그때 뛰는 가슴이란...
콩닥콩닥 콩닥콩닥.....................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야^^
그때 선생님은 숙제 안 해온 친구들은 손바닥을 때리셨어.
차례를 기다리며 별별 생각을 다했지. 이 위기를 어떻게 모면할 것인가 ..
아무리 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질 않아
어쩔 수 없이 엉터리 숙제를 들고 선생님 앞에 쫙 펴 놓았지 ㅋ
그때의 선생님 표정이란!
흐이그, 이젠 매 밖에 없지 싶어 체념하고 있는데...
이게 웬일? 명자야...무슨 일이 있었니?
그때 내 얼굴이 어땠겠어?
자초지종 말씀을 드리고 나니까
선생님 왈 "명자야,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그 목소리가 너무도 감명깊게 내 마음을 치는거야^^
물론 손바닥도 안 맞았지. ㅎㅎㅎ
오!!!백골난망이신 그 은혜 어찌 잊으리오ㅋㅋㅋ
그 후 개과천선해서 착한 명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야...
그러니 선생님이 무섭기보다는 다정하신 분일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