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이래로--- 집 밖을 벗어나 잠을 잔 횟수가 무려  세번째가 된다.


16,17 일의 연휴동안 교회에서 석모도로 수련회를 갔던 것은  남편을 포함한 교우들과 함께였으니 그렇다치고,  방학이 시작되던 날인 21일에도 영흥도에서 있던 분회 MT 에 참석하느라  밖에서 1박을, 그리고 또  주일저녁인 23일 어제 밤도 집을 나와서 자게 되었다.

정말로-- 오랫만에 너무 즐거웠던 분회 MT의 진한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송파구 오금동에 있는 언니네 집을 지키기 위해 본의 아닌 외박을 하게 된것이다.

아니 좀더 정확히 얘기하지면 제주도로 휴가를 떠난 언니네 개(dog)인 흰눈이를 지켜주기 위해 언니네로 올라와 잠을 잔 것이다.


흰눈이!

2000년 8월, 3개월적부터 분양받아 키우는 우리 집 개 '코카'의 새끼가 바로 '흰눈이'다.

잉글리쉬 코카스파니엘 종인 코카는 우리집 개이고, 나는 그녀의 주인이고, 흰눈이는 코카의 아들이고, 그러면 나는  흰눈이의 할머니? 아줌마? 엄마?



어릴적부터 친정아버지가 개를 좋아하셔서 진도개, 포인터, 달마시안,발바리, 잡종 등 계속 개를 키우며 자랐지만 2000년 여름, 27평에서 32평의 아파트로 옮기며 정성스레 수리와 청소를 하고 한숨 돌린 내게 남편과 두 딸이 소근대며 작당모의를 한 끝에 사가지고 온 귀가 길다란 코카는 내게 또 하나의 일거리가 되었다.





"엄마, 우리가 목욕 시키고 똥 다 치울게요."

"여보, 내가 산책은 담당할게. 애들과의 약속을 지켜야해서 어쩔 수 없었어."



자기 방 청소도 제대로 못 해내는 딸들과 늘 분주하고 바쁜 공인인 남편에게서 그 약속에 대한 실천을 믿은 건 아니었지만, 그 일은 털과 냄새 그리고 위생상태 유지의 불균형을 참지 못하는 내가 -견디는 데까지 견디다- 결국 투덜대며 해내야 하는 또 다른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느새 코카는 또 다른 귀엽고 귀한 우리의 자식이 되어갔다.

1 년동안은  그야말로 천방지축으로 이리뛰고 저리뛰며 대소변을 못가리는데다가 6개월마다 하는 생리때가 되면 온 집이 비상일 정도였는데 새끼를 한 번 낳게 하자는 합의 끝에 임신이 되고 난 뒤로 코카는  너무 조신한 여인네 개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작은 종의 개는 아니지만 뱃 속에 동일한 종의 다른 새끼들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큰 새끼가 6마리나 들어있어 60 여일의 임신기간을 거친 후 코카는  제왕절개로 새끼를 낳게 되었다.

방방 뛰며 오르던 소파에도 배가 불러지면서 뛰어오르지 못하는 코카는

진통이 오던 며칠은 자다가  몇 번이나  내게 달려와 발톱으로  마구 긁으며 나를 깨워댔다.

방 구석이나 책상 밑으로 들어가 터를 잡듯 마구 긁어대기도 했다.





드디어 산기가 보이던 날, 촉진제를 맞게하고 30분간 내가 안고 있으면서 자연분만을 시도했지만 헥헥대며 부들부들 떨기만 할뿐 출산의 기미가 없자 제왕절개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진찰대에 눕히고 마취를 하는 순간 혀가 늘어지며 길게 밖으로 나왔다 .수의사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둘둘 말더니 코카를 안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꼬물락 거리는 새끼들이 연이어 밖으로 운반되어 나왔다.

엥엥엥엥 소리를 내면서----------

"아주머니, 제가 탯줄을 끊을테니 이 휴지로 강아지들을 깨끗이 벅벅 닦어주세요. 빨리요!!"

간호조무사의 말에 따라 휴지를 뜯어 벅벅 닦으려 하면 또 한마리가 나오고,닦으려 하면 또 한마리가 나오고, 잘못해서 산낙지같이 움직이는  그  아그들을 그만 떨어뜨리기도 했다.





추운 겨울의 한 복판이던 그 날, 라면 박스에 6 마리의 강아지들을 담고  배를 꿰멘 어미개 코카를 남편이 차로 실어 집으로 데려왔다.

그 날부터 우리 집은 완전 '개 판'이었다.

찢은 배를 아파하며 불은 젖을 새끼들에게 물리지 않으려는 어미개와, 꼬리를 세우며 죽겠다고 엄마 젖을 파고 드는 강아지들에게 가족들이 달려들어 우유를 먹이고, 오줌, 똥도 닦아주고 하다보면 어느새 한마리는 목욕탕 하수구에 빠지려는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엄마개의 수술자리가 덧나서 다시 꿰메는 사건이 생기기도 하고-----

꼭 박스에 들어가서만 젖을 먹이려는 엄마개의 밑에 강아지가 깔리지 않게 하기 위해 불침번을 서기도 하고---------

"아유! 사람사는 것도 힘든데 왜 개까지 사와서 나를 못살게 굴어! 정말----"

그나마 겨울방학이었으니 망정이지 출퇴근을 하며 그 일들을 감당하려 했다면 나는 아마 죽었을 거다.





그런 과정 속에서 어미 코카는 조신하게 철든 엄마가 되어 이리저리 천방지축 뛰어다니지도 않게 되었고 엄마답게 대소변도 가리게 되었다. 그리고 강아지들이 귀찮게 하면 몰래 숨기도 하는 잔꾀를 부리기도 했다.





강아지들이 태어난지 2달이 지나면서 꼬리 잘라주기, 예방접종 하기 등을 마친 후에도 우리의 의무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으로 그 아그들을 분양을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럭저럭 5마리의 강아지들이 집을 떠나갔지만 눈 주변에 흰 털이 박히고 덩치는 크지만 인물은 영 아닌, 게다가 심술맞기까지 해서 자기 형제들을 괜히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한 놈만 남게 되었다.

혼자 남게 되니까 외로움까지 타면서 낑낑 울어대서 내가 수건으로 들쳐 업고 집안일을 하기도 했다.

그놈의 이름을 '흰눈이'라고 지어줬다.

6개월이 다 되도록 아무도 흰눈이를 데려가지 않고 우리집은 모자 개까지 합쳐 6식구가 되었다.

코카와 흰눈이는 우리가 어딜 가든지 늘 동행하는 가족이었다.

양평에 있던 작은 시골집에 갈 때는 여지없이 두 마리를 데리고 가서 풀어주고 마음껏 놀게 했고 집 뒷 산에 오를 때도 꼭 두 마리의 개들은 가족이 되어 우리와 동행했다.

영국 왕실에서 도요새를 잡던 사냥개 출신이라는 코카들은 비둘기나 새만 보면 온 힘을 다해 쫓아가는 모습을 보여 유전자의 당위성을 입증하기도 한다.





교사에, 엄마에, 주부에, 사모에 게다가 개 두마리까지 --  늘 바쁜 동생의 일상을 보다 못한 언니가 나를 돕는 의미로 흰눈이를 데려다 키우기로 결정했다.

형부가 개를 싫어하고 특히 코카스파니엘 같은 큰종의 개는 싫다고 했지만 순전히 나를 위해서 언니가 남편의 뜻을 거역하며 흰눈이를 떠 안은 것이다.

다른 강아지들을 분양할때도 섭섭했지만 6개월동안 업어 키우기까지 한 흰눈이에게는  미운정 고운정이 더 들어서 마음이 아팠다.

더구나  언니네 집에 데려다 놓으니 흰눈이는 쭈그리고 소파 밑으로 들어가 숨어 나오지 않다가 우리가 집에 오려고 하자 자기가 먼저 갈 채비를 차렸다.

  집으로 돌아와 '언니가 오죽 잘 키워주겠어!'하며 서글픈 마음을 달래던 나는 전화를 통해 아무것도 안 먹고 현관 문 바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흰눈이의 얘기를 들은 후 그만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흰눈이 어떻게!!----------"

하면서.





대소변을 못 가리고 마루를 새로 깔은 언니 집의 골치거리가 되기도 하고 , 자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형부에게는 곁을 주지 않고, 언니를 무척 따르면서도 낮에 혼자 있어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언니에게 달려들어 무는 바람에 몇 달 간 우리집으로 쫓겨오기도 했지만  흰눈이는 이제 아주 매력적인 자태의 성견이 되었다.

언니가 강의가 없는 날이면  올림픽 공원에 데려가 몇 시간씩 운동을 시키고, 목욕에 미용에,정성스레 키워서 애교도 만점, 지혜도 만점인 손을 들어 문도 열 줄 아는 멋진 흰눈이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5살이 되어가는 이 흰눈이가 아직 우리 가족들을 잊지 않고 우리 집 근처에만 와도 먼저 뛰어와 우리 가족들에게 몸을 비비며 반가워하는 것 뿐 아니라

내가 전화를 하면 소리를 듣고 크게 울어대는 것이 큰 얘기거리가 되었다.

남편이나 애들을 다 잊지 않고 좋아하지만 유독 내 목소리를 들으면 울부짖고 며칠 간 우울해 하는 것이다.

이 흰눈이를 위해서 휴가를 떠날때마다 언니는

" 흰눈이 친 엄마! 와서 봐 주라. 어디 맡길 데도 마땅잖고 너희 집까지는 인천이니 너무 멀고---"

히며 부탁을 하고, 나는 기꺼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서 아들? 손주? 친구? 인 흰눈이와 함께 하는 우리 둘만의 시간을 오붓하게 갖는 것이다.





어제 밤에도 흰눈이는 나와 산책을 하고  밥을 먹고, 내 주위를 돌며 핥고 뽀뽀를 하고,내게 몇 시간 동안 공을 던지고 놀아달라고 하고, 화장실까지 따라오고,  매일 자는 자기 자리에서 자지 않고 내 옆에서 자기의 큰 몸을 기대며 잤다.



인간 못된 것이 개 만도 못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고,

못된 인간들이 애완견을 부모보다 더 섬긴다고 비판도 하지만,

세월이 간다한들 우리 '흰눈이' 를 내가 어찌 돌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지 흰눈아!!     그지 ??!!

                                                                                                                   2006년 7월   이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