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생활 26년을 시작하는 새 부임지가 영원 중학교로 정해지던 날
나는 지원했던 곳이라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지만 주위의 동료들이
“그 학교 너무 커서 고생 하실 텐데요.”
“왜 그렇게 크고 문제 있는 곳만 골라 다니세요?”
“그 학교 장난이 아니래요.”
라며 한마디씩 했다.


남부교육청 관내 학교들의 공통점이 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이 모인 곳 아닌가, 내가 거쳐 온 양화, 오류여중, 개웅, 영서, 영남 모두 그랬는데 뭐 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지만 정말 장난이 아닌 것이 이내 기정사실화되기 시작했다.


학급수도 많고 학급당 학생수도 많은 곳이어서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발휘하리라며 각오는 단단히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보건실을 드나드는 아이들, 파스와 대일밴드는 자기 것 인양 말도 없이 당연히 집어 가는 아이들, 마음에 들게 해주지 않는다고 문을 나서자마자 냅다 욕을 해대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꺼내놓고 쓰는 약들 중 몇 가지가 종적을 감추는 일까지 있게 되었다.

스스로 인정 있는 자임을 자부하는 ‘나’이지만 그래서 보건실이 마음 아픈, 상처 입은 아이들에게까지 싸늘한 곳이 되면 안 된다 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던 ‘나’이지만 너무 힘이 들었다.


게다가 49세의 나이건만 갱년기 증세까지 일찍 확실하게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심한 우울증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게 되었고  ‘다시 태어나는 중년’이라는 책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며 자신감 있게 중년을 맞이하리라 했던 나의 꿈은 새 부임지에 대한 꿈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좋은 직장 있겠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 자식들 있겠다, 이젠 무슨 걱정이냐고들 했지만 일과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의 회한과 슬픔과, 앞날에 대한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증세가
나를 내리누르면서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려 너무 힘이 들었다. 체중도 5킬로 정도가 줄어들었다.
내 의지와는 반대로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 동료교사들과 가까이 할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다.
다행이 형부가 정신과 의사인 덕에 인터뷰를 하고, 이미 알고 있던 것이긴 했지만 홀몬 분비의 변화와 나이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다시 확인하고 약을 먹게 되었다.


약도 먹고, 미루어왔던 하고 싶은 일들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햇볕도 많이 쬐고, 밥도 잘 먹고 하기 위하여 점심시간이 끝나면 학교 뒤뜰을 걸었다.
산수유가 피고, 벚꽃이 피고, 목련이 피고, 철쭉이 피고 제비꽃과 민들레가 자잘하게 피고,   나비가 날고 하는 그 곳을 거닐다 보니 오래된 학교라서 큰 나무들이 꽤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다가가면 영험한 기운과 엄숙함 속에 포근함을 주는 긴 가지의 나무가 있었다.
느티나무였다.


사춘기시절 이복오빠를 좋아하는 느티나무--? 와 관련된 ‘그에게서는 늘 비누 냄새가 났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그렇게 큰 그리고 오래된 그렇지만 정갈한 나무를 본 적이 드문 것 같다.
그 느티나무를 벗 삼아 매일 그곳에 가서 잠시 서서 있다오면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 자리를 나의 자리라고 혼자서 명명하며 매일 걷고 있다.
사람이 아닌 자연이지만 그 나무와 정다운 인연을 맺고 그에게서 새 에너지를 받으며 다시 예전의 내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영원 중학교는 또 하나의 나의 사랑하는 고향이 되리라는 기대를 품으면서.

                                                                                                                   2006년  5월     이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