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최성원

동창회준비로 바쁜 친구들을 그냥 볼 수가 없어, 김경희가 나서서 안내문발송업무를 맡아 일을 하게 되었다는데, 7반의 확인된 주소록이 특히 적다며 내게 전화를 했어.

별일 아닌 것 같아도 막상 하고 보니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하네.

7반 총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언변이 좋은데다  음성이 나긋하여 경희의 말투는 그래서 준엄하게 들리는 그 말을 수긍 반성하기도 했어.

내가 슬그머니 빠지더라도 유능한 친구가 많아 괜찮을거라 생각했는데, 나서지 않는 유능한 친구들은 이미 다른 일을 하느라 바빠서 그 날에만 시간을 낼건지.

하는 수 없이 나서게 된 나는, 그 날 모임에 7반 친구들의 참석률이 저조하게 되기라도 하여,  가뜩이나 얌전하신 담임이셨던 현금희 선생님을, 혹여라도 무안하게 해드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퍼뜩 들더라구. 각 테이블을 빠짐없이 돌며 여전히 담임노릇을 꼼꼼히 하실 허회숙 선생님도 한편 의식하게 되었고.

우리가 이제 나이 오십인데, 아줌마인데, 장모님 시어머님인데, 뭘 더 망설이고 말고 깊이 생각하고 말고도 없다.

경희전화를 받은 이튿날인 어제 온종일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어. 7반 총무노릇 개시 한 거지. 사무적인 말만은 할 수 없기에 이런저런 정담까지 나누다보니, 목, 귀청, 귀에다 전화기를 갖다대주던 팔이 많이 아팠고,  온종일 전화를 한 거지만 짬 내어 하다 보니 열한명한테 밖에 못하게 되더라구. 전화로 회비액수까지도 약정을 받아내다보니 더 길어진거지.

근데 신기한 일은, 학창시절 공부에 쩔어서 자기가 몇반이었는지도 모르기도하는 친구들이, 내 얼굴이 기억나지도 않을테지만,  인일이라는 인연의 끈에, 무척 친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것처럼 반가와 하는 거였어. 소심한 나는 조심스레 한 전화였는데 그들이 반가이 전화를 받아주니 어찌나 고맙던지. 전화로 하는 수십년만의 상봉은 감동적이었어.

사실 연초엔, 학벌, 직업, 경제, 사는 지역, 자존심 운운하며 반응이 떨떠름해 그럼 나는 더한데 하며 포기한거였어. 위 조건을 다 갖춘 한 친구는 미혼인게 결격사유라고도 하더라구.

내가 이제야 맘을 바꾸듯 다른 친구들도 바꾼거였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친구들이야.



전화하기, 주소록작성, 회비모금, 연예준비, 우편물발송.

전화하는 일 한 가지만 하고나서, 이런 일들이 각반으로 나누어서 해도 일이 크다는 것을 하룻만에 알았어.

그래서 7반 행정업무를 따로 함이 옳겠다는 결론을 내린거지.

메모남기기에 글을 올리다보니 길어져서 안되겠기에 이 곳에 올리게 됐어.



어제 한미희랑 통화했는데

“경옥이가 전화를 했을때 받지않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게 혹시 나 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리데.

사실 내가 전화로 뭔가를 상담을 하는게 있는데 당시 하도 많이 전화가 몰려 귀가 아팠거든. 그래서 모르는 전화는 안받고 있었어. 경옥이 전화번호 암기안돼있어.



경옥아 속 썩여서 미안해.

잘 될거야.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착해지~거~었지. 근데 시간이 별로 없네. 서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