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가 시작되면 나는 교사로서의 소신을 지킬 수나 있을까?

2005년 5월2일 월요일 맑고 햇볕이 쨍쨍하여 더움

내일 갈 현장체험학습 자료집을 복사해서 아이들마다 하나씩 작은 책으로 만들어 준비했다. 그러면서 교원평가 2007년부터 전면 실시라는 소식을 들었다. 다면평가를 실시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우리나라가 시작하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몰라서 안하고 있을까. 아니다. 교육을 망치는 일이기에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미국 교육잡지에 실려있는 이야기다. 교육부가 좋아하는 그 미국도 다면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국가가 교사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이렇게 야단법석일까 싶은거다.

실제 서울 모 사립고등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원평가의 폐혜는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날씬하고 얼굴 예쁘고 젊은 선생에게는 학생 평가가 후하단다. 그렇다면 나는 다이어트하고 보톡스 맞고 성형수술을 해야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교사의 수업의 질 향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또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평가하면서 묻는 질문이다. "왜 우리들에게 평가를 하게 하나요? 우리들 한테는 아무런 변화나 도움을 주지 않는데."
아이들에게 수업의 질을 높이려는 효과보다는 평가를 하는 아이들 앞에서 주눅들어서 학생 눈치를 보느라 교육이 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오히려 교사들은 기계적으로 수업하고 아이들에 대해 방관하며 오로지 성적 올리는 일 외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살을 하든, 비행을 하든, 학교폭력의 희생이 되든, 왕따로 괴로움을 당하든 일단 몸부터 사릴 것이다. 왜? 성적 올리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나는 단언한다. 교원평가 시작되면 나는 지금처럼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이들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고.
학교장이 아무리 잘못을 하더라도 아이들 입장이나 교사들 처지에 서서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치마바람 날리는 학부모들이 편애를 요구하면 넌즈시 동조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 교사 수업 참관할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여유를 동시에 갖고 있으므로. 가난한 아이들은 교사들의 시선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당연하지 않는가. 평가자에게 잘보여야지.

부적격 교사가 한 학교에 한 두명 쯤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수업 한 번으로 알아낼 수 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능력이 좋아서 한번쯤은 거룩한 페스탈로찌로의 변장은 너무도 쉬운 일이 될 것이다. 까닭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평가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비교육적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다 해줄 요량으로 교육철학을 바꿔야 한다. 아이들이 체육시간에 피구만 하자면 일년 내내 피구만 하고 체육교육과정은 엿 사먹어도 된다. 수학 시간이 싫다고 하면 슬슬 나가면서 시험지 문제 미리 알려줘가며 성적 충분하게 조작하여 올려낼 수 있다. 이미 고등학교에서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 않는가. 성적 부풀리기라며 맹성토하는 현상이 초중고를 망라하고 전국적으로 확산 될 것이다. 은밀하게 더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누이좋고 매부 좋다는 탈법과 범법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이성을 마비 시키는 일에 우리 모두 공법자가 기꺼이 될 것이다.



정년 단축하면서 호봉 높은 늙은 교사들 한명이면 신규교사 3명을 쓸 수 있다는 논리로 국민을 호도했다. 그래서 힘없는 늙은 교사들이 교단을 떠났다. 그런데 그 후로 나타난 것은 초등에서의 교사 부족 현상이다. 아주 심각하다. 그래서 다시 퇴출 시킨 그 늙은 교사들을 불러 모아 재취업을 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메꿔지지 않는다. 그래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임용고시를 통해서 교대졸업생들을 배출하면서 생긴 문제는 대도시로 몰리면서 도지역에는 지원하지 않는 기형을 낳은 것이다. 이것은 교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정책 입안자의 잘못이 결국 이러한 현실을 낳은 것이다. 이 정책 입안자야 말고 퇴출 시켜야 한다.
그러면서 교사부족과 교실부족이 겹쳐지며 학급 인원수가 과밀이 되어 가는 대도시와는 달리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시키면서 농촌 아이들을 통학까지 시키며 희생시키고 있다. 무상교육이라고 이름만 번드르한 그런 제도 속에서 기본 교육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다.
무상교육이란 단순화 하면 급식비, 체험학습비, 수학여행비, 우유값을 내지 않는 것이다. 학교 예산을 보면 학부모들이 내는 돈이 학교예산의 절반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학교예산은 점차 줄이면서 국민들에게 교육세를 부담시키면서 세금도 직접 걷으면서 또 학부모 주머니에서 수익자부담이라는 이름으로 급식비, 체험학습비, 수학여행비, 우유값 등을 내게하고 있다. 이것은 무상교육이 아니다. 국민들이 모른다고 해서 법으로 정하고 약속한 부분인 교육예산 지디피 6%는 그저 대통령 선거용으로, 말 잔치로 끝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교육적 실패는 모두 교사들 때문이라고 몰아부치는 교육부는 부도덕의 표상이다.
잘못된 교육정책 하나가 얼마나 교육 현장을 유린하는지는 정년 단축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하게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교원평가가 되면 동화책 읽어주기도 하지 말아야지. 오로지 형편없는 교과서 내용을 금과 옥조인양 달달달 외우게 해서 성적이나 올려야지. 창의성 개발 따위는 입에서 꺼내지도 말아야지. 국가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제작하고 제조하는 일에만 전념해야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에 대해 용납하지 말아야지.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 이익에 집착하도록 잘 가르쳐야지.

이렇게 쓰면서 이런 것이 과연 교원평가를 하면 학교예산을 자꾸 줄이면서도 가능한 신세계라고 허풍을 떨고 있는 교육부의 속임수에 속아넘어갈 불쌍한 국민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차라리 무정책으로 교사들의 소신에 맡겨두는 것이 차라리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세상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교원평가가 이뤄내는 신세계에서 나는 하나의 소모품에 불과한 교사가 아닌 부품일 뿐이고 우리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