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Rev.Hanyo Kim's column... www.fkpc.org

아내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려면 - Aug.8, 2004


남편 잠 자는 밤에 아내가 망치로 그 남편의 머리를 내려치고, 칼로 난자하여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얼마

전 뉴욕에서 일어났다. 한국신문들 뿐 아니라, 미국 신문에서도 이 사건은 대서특필되었다. 임신 8개월 중

이었던 아내는 남편을 살해한 그 날에 손목을 끊어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긴급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뱃

속 아기는 억지로(?) 태어났고, 현재 자살에 실패한 아내는 구금중이다. 얼마전 아들의 장례식 때, 그 어머

니는 통곡하며 실신하기를 거듭했다. 정신이 날 때마다 부르짖는 한많은 어머니의 절규, "그X 때문에... 여자를 잘못 만나서..."

왜 그랬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대하며 묻는 질문이다. 한국 신문들, 그리고 미국 신문에서도 살해

동기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외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부부 모두 일류학

교 고학력의 소유자들이었고, 외모가 출중한 부부였다. 영어 때문에 미국 생활에 적응을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자들도 아니었다. 세상 향략 만끽하며 방탕하게 살던 부부도 아니었다. 애를 못낳아서 시어머니에게

구박 받는 며느리도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교회도 꼬박꼬박 가는 교인이었다. 젊고 아름답고, 그리고 첫

애의 출산을 설레임 속에서 기다리던 신혼부부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남자는 매사에 철두철미한 성격이었다. 대충하는 일도 없고, 얼렁뚱땅하는 일도 없다. 그리고 무슨 일이

든 맡으면 확실하게 매듭을 짓는 소위 완전주의자였다. 그의 신앙생활도 그랬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일을 정확하게 하려고 했다. 그에게 일을 맡긴 자는 그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그를 더욱 신임했지

만,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겐 그의 기준에 못 따라가 항상 문제가 야기되었다. 그가 한때 교회생활에

열심을 냈던 것도 주님을 사랑함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의 철두철미한 삶의 철학 때문에 열심을 낸 것이 아니었나 결과론적으로 돌아본다.


여자는 이러한 남자가 매력이 있었다. 매사가 분명했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박력 있어 보였

다. 좀 건방져 보이는 것은 오히려 실력있는 자가 가진 자태라고 여겨졌다. 교회생활에 열심 있는 것도 처

음에 믿음이 없었던 여자에게는 그 남자가 소유한 신비함이라고 여겨졌다. 길이 보이게 가름마탄 헤어스

타일에 단정한 복장, 로렉스 타입의 시계와 굵은 반지, 그리고 빤짝이는 까만 구두, 이 모든 것이 다 매력

이었고, 요즘 남자들처럼 술 담배를 하거나, 음담패설을 입에 담는 일도 없는 그야말로 깨끗하고 투명스러운 남자를 사랑했다.


그러나, 문제는 결혼날짜를 한 주 앞두고 발생했다. 여자는 매사 깨끗하고 완벽한 남자에게 자신의 과거

가 죄책감으로 다가오면서 결국 그 과거를 털어 놓게 된다. 남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오던 성(城)이 한

꺼번에 무너지는 절망을 느낀다. 그러나, 이미 청첩장은 나갔고, 친척들이 한국을 나가기 위해서 비행기

티켓을 다 사 놓은 마당에 결혼을 취소하는 것은 그의 명예에 더 큰 오욕이었다. 결국 결혼은 감행되었고,

그 이후 여자를 향한 핍박이 시작된 것이다. 철두철미하게 쌓아왔던 인생의 성(城)에 구멍이 난 것을 심리

적으로 정신적으로 소화할 수 없었던 남자는 모든 분노와 불만을 여자에게 쏟아 놓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더러운' 여자를 만나서 생긴 저주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그렇게 열심히 교

회생활 했는데도 이런 일이 생기도록 방관한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설교하는 목사

들도 이중인격자같이 보이고 결국 교회생활도 등한히 하게 되었다. 남자의 거칠어지는 입술이, 결국 거칠

어지는 행동이 되었고, 여자는 하루 하루를 눈물 속에서 숨죽이며 지냈다. 그 와중에 여자는 임신을 했다.

혹시 이것이 남자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가느다란 희망을 걸어 보았지만 그러나, 남자의

핍박을 더욱 거세지고, 임신한 배를 걷어 차면서 뱃속 생명까지 저주하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이렇게 반년이 흘러가고, 그리고 그 결과 신문기사의 그 끔찍한 사건이었다.


신앙생활은 얼마나 철저히 사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흠있는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 주면서 사느냐이다. 신

앙생활은 자기 기준에 남을 끌어 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남의 수준으로 내려가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다. 우리 주님이 하신 것처럼 말이다. 완벽주의의 동기가 자신의 철학이나, 고집이라면 그것 때문에 남을

헤치게 된다. 가장 완벽하셨던 주님께서 허물에 쌓인 우리를 헤하신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하게 세워주셨

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기의 허물과 잘못을 먼저 보고 남을 향한 이해와 용서와 아량을 보이는 인격

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진리는 부부 사이에서 제일 먼저 실천되어져야 할 일이다. 아내보다 잠자리 먼저들고도 마음이 편한 남편이 되고 싶으면 이 길 뿐이 없다.-靑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