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둘러보니 저희 동문 규종 소년과 흥복 소년이 애 많이 쓰고 계시네요.
저희 동문에게 좋은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말아 주세요.

Nyongja 소녀가 출타 중이니 다른 소녀 분들도 “때는 요 때다”하고 숨을
고르시는 것 같아요. 몸이 편하지 않은 분도 빨리 나으시고요... 아직 사십 대
燒女가 요즈음 너무 자주 아프신 것 같아요. 어서 일어 나세요…

저희는 요즘 올림픽 경기 보느라고 바이오 리듬이 엉망입니다.
보통 새벽 두 세시에 잠들고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새벽 4시 반 5시나 되야
잠에 들어가니 오후에는 자세가 조금은 흩어지곤 하지요. 그래도 재미 있지요.
또 업무적으로도 무척이나 쫓기고 있지요. Tucsan 과 같은 SUV 인 기아 Sportage-II,
또 EF Sonata 후속인 NF Sonata 신차 일정 맞추느라 정신 없이 바쁘게 사느라고
이 곳에 자주 못 들렀지요.

오늘은 사실 Nyonja 소녀의 약점을 간파하고 슬픈 이야기와 우스운 이야기
두 가지를 다 해서 귀향 소녀를 흔들고자 자판을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있지요.
아직도 어머니, 아버지, 장인 어른, 장모님 또는 시부모까지 네 분 다 생존하고
계신 분들을 4/4로 부른답니다.

저는 1/4 이었는데 작년 11월 21일 이후로는 사분지 빵(영)이 되었지요.
지금도 가끔씩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슬퍼지고 술이라도 한 잔 하면 더욱 더
생각 나지요. 어떤 때는 진공 소재기 청소하다 갑자기 생각나면 소리 지르며
소리 내어 울기도 하지요. 다행히 진공 소재기 모우터 소리에 감추어 지지만
옆집에서도 들릴 정도로 크게 “오마니”하고 소리쳐 보기도 한답니다.
작년에 저희 어머님을 인천 길 병원으로 모셨는데 누님 말씀이 인일 여고 허 교장
선생님도 상을 당하여 같이 있는 동안 2층, 5층을 오가며 인천 여중, 인일 여고,
인중 제고 동문회장 같았지요.

발인 전날 제가 어머니가 신던 신발 한 짝을 영전에 갖다 놓고 한 없이 슬피
울었지요. 평소 허리가 많이 아프셔서 조금 걸으시면 허리가 울려서 아프다고
조금 더 폭신 폭신한 신발을 신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쌔스 신발을 사다 드리려고
맞는 사이즈를 고르기 위해 한 짝 만 차에 넣고 다니다 게으른 제가 사다 드리기
전에 돌아 가셔서 가슴 속에 사무치는 슬픔이 되였지요.

지금도 가끔씩 술이라도 많이 마시고 나서 어머님 훈계를 되 새기려면 차에 가서
어머니 신발 한 짝을 꺼내어 볼에 비벼도 보고 입도 맞추고 한답니다. 지난 주
화요일 밤에는 비가 오는데 또 주차장에 가서 차 트렁크 열고 반성하다가
최근에 사귀고(?) 있는 아파트 반상회 멤버인 昭女에게 들켰습니다.
“우리 아저씨 요즈음 여자 사귀나 보지. 웬 여자 신발에 볼을 비비고 입까지
맞추시네…  굉장히 좋아 하시나 봐…  아니면 누구 꺼야?”저는 얼른 신발을
다시 넣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고 얼른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

지난 수 개월 동안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반상회 불참자 명단과 함께 벌금
안내문을 붙여 놓은 것을 제가 매직으로 지웠는데 지난 오월 달에는 드디어 화가
난 반장 아주머니하고 또 다른 아주머니가 제 아파트에 찾아와서 경고를 했답니다.
벌금을 내시던가 아니면 반상회를 참가 하던가 택일 하라고…

그래서 반상회가 도대체 무얼 하는 곳인가 호기심도 나고 해서 지난 6월 달에는
회사도 일찍 마치고 나와서 반상회가 열리는 아파트에 갔습니다.

와! 젊은 아주머니들 대 여섯 분이 모여서 도란 도란 이야기 꽃 피우시고
한 쪽 구석에는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 뻘 되는 昭女 두 분이 조용히 앉아
계시더니 저 보고 아저씨는 여기 오시는 것 아니라고 타이르며 안 사람은
뭐 하느라고 바깥 양반을 이런데 보내느냐고 에이 요즈음 젊은 것 들은…
하시며 혀를 끌끌 차시는 것 아닙니까. 순간 아! 반상회는 남자가 가는 곳이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회사에서 퇴근하자 마자 갔으니 정장 차림 그대로 남자가 들어 오니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 졌지요. 그냥 돌아 나가려니까 昭女 한 분께서 그래도 이미 들어오신
분이니 준비 한 과일이나 한 쪽 들고 가시라고 하여 용기를 내어 다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어느 분이 준비해 오셨는지 맛있는 케이크에 녹차도
한 잔 곁들여 마시고 참외와 수박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이때부터 질문이 시작 되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어디 있느냐?” “오늘은 너무 멀어서 못 온다,”
“다음에는 오느냐?” “아니다 내년에나 온다.”
“그 집에는 애들도 없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세 명이나 있는데요”
이런 이야기하며 세대주 인적 사항 묻는 통에 주민 등록 번호가 죽어서 없다고
하는 바람에 외국인 이라고 들통나고 혼자 사는 것까지 다 밝혀 졌습니다.

갑자기 다른 아주머니 들이 질문 공세에 가담하기 시작 했습니다.
“밥하고 빨래는 누가 해 주냐? 파출부가 오냐?” “아니요 제가 다 합니다”
혼자 지내니 무섭지 안느냐 등등 질문 공세에 성심 성의껏 대답하고 나니
그날 반상회는 저 때문에 그냥 그렇게 끝나고 말았지요.

문제는 그 다음 입니다. 제가 일 주일에 한 삼일 정도 밖에 집에 없는데
저희 아파트 아주머니와 昭女들이 저를 감시하기 시작 했다는 겁니다.
하루는 다리미질을 하느라고 무척(?)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803호 아주머니가 집에서 만든 빵이라고 한 접시를 갖다 주지 안나, 504호
아주머니는 수박을 썰어서 갖다 주지 안나, 맞은 편 1004호 昭女는 지난
일요일에 아주 제 아파트에 들어 오셔서 광복절이라고 태극기까지 달아
주시지 안나, 정말 반상회 가기를 잘 했다고 생각 했습니다.

사실은 두 번째 반상회에 참가 할 때 빈손으로 가기가 쑥스러워 제가
애지 중지 숨겨오던 양주, 30년생 밸런타인 한 병을 가지고 갔더니
반상회가 그런 곳이 아니라고 반장 아주머니가 점잖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반상회 이야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그 반장 아주머니가 그 양주
누구 줄 거냐 하고 묻길래 자리를 쭈욱 둘러 봤더니 다들 저 달라는
눈치였습니다. 반장 아주머니 주자는 의견, 반상회 열리는 집에 주자는 의견
등등 이야기 하다가 도대체 얼마나 좋은 술인지 한 모금씩 맛을 보기로 하고
병을 땄습니다. 양주 잔에는 한 모금 씩 이라더니 모두들 꼴딱 꼴딱 채워서
드시고는 캬 하시며 맛이 기막히다고들 하십니다.

이게 한 병에 얼마요 하고 묻길래 미화로 235불이니 한화로는 약 28만원
정도한다. 면세점 가격이 약 30만원이면 시중 가격은 약 90만원 한다고
하였더니 너도 나도 한 모금씩 더 하자고 애원하는 통에 금방 한 병을
다 비웠지요, 아마도 반상회에서 아주머니들이 음주를 곁들였으니 위법 사항이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분위기는 최고였습니다. 그 아주머니들 그 날 반상회
끝나고 맥주를 사다 더 드시고 노래방까지 가서 여흥을 즐겼답니다.

저는 다음 일 때문에 못 갔지만 하여튼 요즈음 우리 동에 아주머니들 뵈면
서로 상냥하게 인사하고 매월 반상회 열리는 날을 기대하시는 눈치가
역력합니다.

오가는 인사말이 “요번 반상회 때도 꼭 나오시는 거죠?” 하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