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썰렁한 10회 게시판을 위해 내 글을 퍼왔습니다.)

얼마 전에 한 친구가 갖고 있는 떡 기계, 빵 기계 얘기에 뿅 가서 엉겁결에 거금을 주고 떡 기계를 하나 사게 되었습니다. 사실 마음 속으로는 빵 기계가 더 사고 싶었지만, 빵을 끊으려는 이 마당에 빵 기계를 살 수는 없어서 떡 기계를 샀습니다.

우리 집 아침상을 아시는 분은 내가 왜 떡 기계니 빵 기계니 하는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
아침을 안 먹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 못한다더군요. 꼭 밥이 아니라서 그렇지 우리는 아침을 굶지는 않습니다. (우리 애 그나마한 대학에라도 보낸 것은 순전히 아침 거르지 않고 아무거나 먹인 엄마 덕입니다 ^^ )

친구가 소개해 준 게 일본산이라 사용 설명서 번역을 부탁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동안 아무 소식이 없어 아들아이하고 주로 그림에 의존하여 사전도 찾아가며 그냥 작업해 보았더니 우와, 디게 신기하게 떡이 만들어지더라고요.

(한번 만들고 말면) 이 떡이 30만원짜리니까 맛있게 먹자고 했는데, 아뿔사, 소금을 안넣었더라고요. 그래도 워낙 적은 양을 만들었기에 설탕에, 꿀에, 조청에 범벅을 해 싱거운대로 먹을 수는 있었고, 15만원으로 단가가 내려간 두 번째 떡은 간도 제법이고 콩고물도 맛있어서 성공이라고 자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설날 전날 저녁 쌀을 씻어 담가 놓았다가 설날 아침에 떡 기계와 씻어 건진 쌀을 챙겨들고 나갔습니다.

친정 식구들 다 모인 데서 떡 기계 꺼내 놓고 착착 준비를 했습니다. 물 붓고, 쌀 넣고, 소금도 조금 뿌리고. 이제 전원만 꽂고 기다리면 단가 10만원으로 내려간 떡이 나올 판인데,
으악, 이게 웬일? "도란스"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일본산이라 100볼트 전용인데, 친정 집에 "도란스" 없을 생각도, 우리 집의 것 들고 갈 생각도 못했으니....

코메디가 되려는 판이었습니다. 설날 문 열은 전파상도 없겠고..

갑자기 울어버릴 것 같은 이 언니가 불쌍해진 동생이 30여분 걸리는 자기 집에 급히 가서 도란스를 들고 와서야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휴우~

그 다음부터는 4 대가 죽 둘러서서 떡이 휙휙 돌아가며 만들어지는 모습을 신기해 하며 들여다 보았습니다. 희희낙낙. 침 튀길세라 서로 걱정하면서.

잠시 후 다 만들어진 떡을 콩고물 위에 턱 쏟아 잘라서 나눠 먹으니 양도 간도 딱 알맞았습니다. 떡을 먹으며 모두들 정말 설날 같다고 좋아라 했습니다.

떡 기계 두고 가라는 압박을 끝내 물리치고 쿠쿠 밥솥 광고하는 이다도시처럼 떡 기계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설은 내 덕에 더욱 흥겨웠다고 식구들 모두 고마워했습니다. 거금 들인 보람을 느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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