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에서            
          
                                                          박인자

    
바람 몹시 부는 날  지하도에 들어갔다 . ㄴ자로 꺾인 길을 돌아  좌우로 갈라진  길의 한 쪽을 간다  오랜 만에 들어 왔더니 낯선 상호들이 붙어있다
로이드, 작은 솜씨, 그린 분식, 첼로 옷 집 ,헌트 ,달과 여울.........

나는 로이드의 진열장 앞에 멈춰 선다.  앙증맞은 시계가 세상을 신나게 돌리고 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장식품들이 시선을 잡아당긴다. 나는 벽돌 색으로 둘러싸인 시간을  본다.  그 속에서  그림자 하나 없는 세상이 지나간다
시계 바늘이 이 생의 톱니바퀴처럼 물고  헉헉대며 간다
세상이 휙휙 지나간다 나는 잠시 길을 잃는다.
      
달과 여울 앞에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다.
    “점포 정리 원가 세일! 인기 가수 신곡이 몇 개 안 남았으니 빨리빨리 골라 가세요”
나는 그  테이프 두개를 사서 가방 속에 넣는다
이 문세의 붉은 노을, 이 선희의 라일락이 질 때
가방 속에는 지금  스무 곡의 노래가 있다
사랑, 배반, 청춘, 회한이  삘릴리 삘릴리 제 흥에 겨워 흘러간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차 파는 아줌마가 흘러가고  고등학생 두 명이 흘러간다
한기가 옷깃을 파고든다. 이 지하에도 겨울 한파가 스며들기 시작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