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일여고 복도에서 내다보면 늘 바다가 있었다.
먼 빛으로 보는 바다는 언제나 가슴에 터질듯이 노을을 껴안고 있었다.
내가 바다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석양빛이 함께 따라오는 것도 그 때 늘 인일여고 운동장 너머 저만치에 누워있던 바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다는 내 고향이고,그리움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래서 그리운 이가 생각날 때면 바다가 보고 싶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찍 제주 성산 일출봉에 올랐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이 가파른 능선을 끼고 오르느라 귀에서 목탁소리가 들리고 현기증이 나서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것을 간신히 참고 끝까지 올라가니 탁 트인 사방에 늘 보았던 옛친구처럼 아주 친숙한 모습으로 바다가 누워있다.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도 않고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그저 무심히 바다만 바라보았다. 때로는 내 얄팍한 언어 심상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풍광과 심정이 있다.
아무리 정확한 단어를 찾아내어 그것을 표현해 보려고 해도 도저히 되지 않는 상황에 접하게 될때 나는 그저 아무런 생각도 담지 못하는 머리가 되어 나를 버리고 속해있는 현실을 버린다.
남들은 그러는 나를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아니 실제로 나는 멍청한 사람이다.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의 실체를 모르고 늘 허상같은 일상에 매여서 그저 등을 떠밀리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바다빛과 하늘빛은 언제나 같은 톤이다.
하늘이 맑은 쪽빛이면 바다도 그렇고, 하늘이 짙은 잿빛이면 바다도 그렇다.
그렇게 서로 닮은 색깔인 바다와 하늘은 그 끝이 항상 맞닿아 있어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별을 하기가 어렵다.
마치 내 이성과 감성이 서로 가슴 한복판을 쪼개어 서로 끝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이제야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는 싯귀에서 말하는 찬란한 슬픔이라는 말이 무얼 뜻하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을것 같다.

제주 성산쪽, 미천굴 가는 길에 있는 '김용갑 아트 갤러리'는 조그만 폐교를 수리해서 만들어 놓은 사진 작품과 설치미술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객지 사람이면서도 제주의 풍광에 빠져 제주를 너무도 사랑했던 사진작가인 그는 사계절 변화무쌍한 제주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내기 위해서 아주 오랜시간을 카메라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원하는 색깔과 그림을 찾아낼 때 까지 혼신을 다해 렌즈만을 응시하며 사진에 미쳐있는 사이 그의 몸은 조금씩 굳어져 가기 시작했다.
이름도 생소한 '루게릭병'이 그를 더 이상 사진을 찍기는커녕 일상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는 장애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갤러리를 찾은 날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따뜻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억새풀과 제주의 검은 돌들이 마치 고대 전쟁사에 등장하는 진법에 나오는 미로처럼 온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뒤켠의 갤러리에 들어섰을 때 마침 제목도 알 수 없는 명상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묘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들어가는데 현관 옆 사무실에 마치 인도의 고승처럼 깡마르고 눈빛만 살아서 형형한 빛을 발하는 작가가 정물화처럼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도 딱히 꼬집어낼 수 없는 동질감과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그 느낌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곧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 '제주의 사계'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한 사진이었다.
같은 장소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른 색감이 나도록 만든 작품인데 나는 그 앞에서 그만 발이 얼어붙고 말았다.
이 작품들 속에는 작가의 청춘과 혼과 열정, 슬픔, 아픔, 기쁨, 미래, 그리고 생명까지 그대로 녹아있어서 도저히 내 짧은 언어로는 그려낼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 이것을 얻기 위해 작가는 제 몸을 그리도 조금씩 죽여갔구나...
나는 그 작가를 모르지만 그의 심정은 알것 같아서 가슴속이 예리한 날에 베이듯이 알싸하니 아파왔다.
사람들은 그저 무심히 보아 넘길 수도 있는 이 장면 하나를 얻기위해 제 생명을 조금씩 갉아먹은 작가의 원죄와도 같은 그 감성이 그에게만 있는것은 아닐터였다.
놀부의 심술보가 아닌 감성보를 하나씩 더 달고 세상에 나온 사람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제 생명을 갉아먹으며 살고 있구나 생각을 하니 도저히 주체할 수 없게 눈물이 쏟아졌다.
왜 멀쩡한 사진 작품 앞에서 우느냐고 누가 물으면 딱히 대답할 말도 없는데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일상의 현실에 묻혀 치열한 생활인으로만 살아야 했던 내 속에서 감히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움추려있던 내 감성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내게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렇게 나를 울게 하는 것 뿐이었던 모양이다.
사진작품 뿐만이 아니라 전시실 바닥에 조형물로 가져다 놓은 이름없는 제주의 작은 돌멩이들도 내 가슴을 마구 흔들어댔다.
볼품도 없고 특징도없는 그 작은 돌멩이는 바로 나였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그저 그런 군상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자각이 들면서, 아무것도 내놓을 것 없는 내 삶이 자꾸 돌아다 보였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붙들고 있던 것들이 정말 귀한것이었을까?
그것들은 그저 내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나는 제주를 생각하면 언제나 그 갤러리를 떠올린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치열한 생활인으로 살아야 하는 내 속에 숨어서 거의 뇌사상태에 빠져있던 나의 감성을 두들겨 깨워준 곳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이미 내게 또 다른 바다가 되었다.
잃어버렸던 내 감성을 만나게 하고 그리움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도 습관처럼 바다를 그리고 있다.  







김춘선
( 2005-04-14 15:55:48 )  

제주도에 다녀왔어.
마침 왕벚꽃과 유채꽃과 튜울립이 한창이었어.
한림원의 왕벚꽃 군락지에 왕벚꽃과 유채꽃이 만발을 해서
묘한 색깔의 조화를 이루고 있더라.
만개한 꽃들 속에 들어가 서 있자니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더라.
이게 바로 김영랑이 말하던 찬란한 슬픔의 봄이란 건가 싶었어.
내가 지금 사추기를 지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너희들은 그런 맘이 없니?



김혜숙
( 2005-04-14 18:15:20 )  

춘선아, 누가 너보고 멍청하다고 하겠니?
내 기억에 너는 굉장히 강한 느낌을 주었던 아이였거든.
아니, 언니같은 아이였다구. 지금 글쓰는 거봐두 굉장히 똑똑하구만...
그나저나 좋았겠다. 나두 제주도 가구싶다.
신혼여행 가구 가족이랑 몇 번 간게 벌써 10년은 된 것같다.
아! 아니구나. 큰딸 음악캠프때 선생님 만나러 풍림콘도 4년전에
다녀왔다. 거기만 갔다가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왔으니까 간 것도
아니잖아... 춘선아, 너는 훌쩍 잘도 다닌다. 치!치! 부러워랑.....



김춘선
( 2005-04-14 19:41:18 )  

헤이, 귀여운 여인 !

나는 네 이름만 보아도 아주 유쾌해진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그리 맑게 살 수 있는거니?

혜숙아,
오늘 보니 봄이 갑자기 무르익어 버렸어.
이러구러 우리의 봄날이 또 가고 있는거 있지.



강신영
( 2005-04-15 00:49:37 )  

춘선아 안녕!
넌 고교 시절에도 뭔가가 좀 특별 했었는데 지금도 맘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나 보다.
2년전인가 제주도 갔을 때가 생각 난다, 우린 예나 지금이나 모두들 뭔가 특별한 모습으로
순간 순간을 아끼며 열심히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겔까?
오늘 아들 녀석 때문에 학교에 갔다왔는데 (늦둥이라 이제 고1임. 실력고사후 담임과
개별면담임) 기다리는 동안 교정을 둘러보니 지난번 입학식때는 그리도 황량해 보이던
모습이 참으로 멋지게 변모하고 있더라. 특히 죽은듯 보이던 나뭇가지에 살폿이 내려앉은
작은 잎새들은 너무도 신비롭기만 하더라, 저 작은 잎 처럼 지금 우리아이는 아주 여리고
힘이 없어 보이나 좀 뒤 무성한 잎으로 변하듯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음 하는 바램은 너무 야무진 꿈 인가? 우린 지금도 다들 이렇듯 꿈을 먹고 사는데
아들 놈은 내가 몰라서 인가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네......
그저 하느님께 맡기니 알아서 잘 이끌어 주세요, 라고 하는 내가 참 우습다.
순탄치 않은 애녀석 덕에 오늘도 난 고민 속에 빠져 보는 구나! 감사! ㅋㅋㅋㅋ
잘들 지내라. 인일의 딸들아!



김춘선
( 2005-04-15 09:16:15 )  

신영아,
너는 웃는 모습이 참으로 환한 아이였어.
지금도 그렇지?
옛날 노인들이 몸이 늙지 마음은 안늙는다고 하시던 말씀이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었구나 싶어.
친구들 누구를 보아도 세월과 함께 변했다는 느낌이 없고
교복을 입고 재잘거리던 그 때의 그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니 말이야.
우리에게 추억을 공유한 친구가 없었다면 얼마나 황량하고 쓸쓸했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에도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내 어릴적 모습을 기억해 준 신영이가 너무 고맙고 반가워서
만사를 제쳐놓고 이렇게 대답을 하고 있단다.

오늘도 좋은하루~~



11.김명희1
( 2005-04-15 13:11:57 )  

김춘선 후배..
바다를 보며 쓴 이 글을 읽으며
처음 부분
인일여고 복도와 도서관에서
늘 바라보던 저녁 노을의 바다...

그 뒤에 이어지는 바다에 대한 느낌들이
어쩜 그렇게도 내 맘(?)을 잘 표현해 준 것 같은지
눈물이 다 납디다.

난 잘 뛰어다니는 덜렁이과인데
마음 가는 그림, 경치, 사진...특히 음악을 접할 때면
사고가 멈추거나
눈물이 나거나 합니다.

내 경우 후배처럼 아름다운 감수성이 아니라
실은
아직 덜 자라서 그런가 하지만....(자라지 못한 채 늙는 중)

후배의 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군요.



김춘선
( 2005-04-15 13:17:30 )  

명희 언니,

남이 쓴 글을 보고 울 수 있다는 것은
언니도 오장 칠부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랍니다 (감성보 추가...)
잘 뛰어다니는 것과 감수성은 상관관계가 없고요,
오히려 남보기에 활달하고 덜렁대는 사람이
더 여린 속내를 지니고 있다는거 아는 사람은 다 안답니다. ^^*

저랑 같은 마음이 되어주신 언니를
저도 오래 기억하고 사랑할거예요. 진심으로요.  



12.강인숙 ( 2005-04-15 15:20:44 )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인일의 딸들이 여기 모였구나. 신영아 보고싶다. 춘선이도, 혜숙이도, 옥규도 .이제야 와서는 왜 이리 마음이 바쁘니?



김춘선
( 2005-04-15 17:10:29 )  

나두 보고싶다.
그동안 애들 키우고 사느라 바빠서 다 잊고 있던
너희들이 마치 어제 본것처럼 생생하고 마냥 정답고 그래.
이심전심이겠지? 인숙아~



12.김연옥
( 2005-04-15 20:45:42 )  

인숙아~
어떤 인숙인지 이제부터 헷갈리기 시작인거 같은데?
강인숙이가 또 왔으니까... ㅎㅎㅎ
이제 먼저 들어온 강인숙을 강인숙1 ,
나중 들어온 강인숙은 순서대로 강인숙 2로 편의상 부르면 어떨까?
강인숙들아~~~
암튼 매우 반갑다. 강인숙1, 강인숙2. ㅎㅎㅎㅎ



5.김순호
( 2005-04-16 14:19:08 )  

헤이 춘선!
이제야 답하네
언니들하구 옵빠들 만나게 해드리느라
쬐께 바뻤지
제주도는 안녕하시고?
가엾은 제주도 .....자꾸 가라 앉는다며?
야들아!!! 제주도로 고만가라 쩌기 대마도로 신혼여행들 가라
가서 푹 가라 앉혀 버려라 키키키키키....!!!
근데 인일여고 도서관에서 바다가 보였나?
암만 생각해도 안보였든것같은데 증축을 했나?
아니믄 내가 공부를 넘 열심히 해서 바다를 못봤나?
요건 언니들이 알겠네....
바다를 보고 참 생각이 많았네
그대는 여성 문단에 올라야 것어
헤이 춘선 !!!
건강히 잘 다녀와 예쁘고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한번 만납시다
동문 한마당 카툰난 봤수?
좀 봐봐 웃겨.....ㅎㅎㅎ



김춘선
( 2005-04-16 21:40:26 )  

순호언니

우리 때는 인일여고 교실 복도에서 바다가 보였어요.
원형교사 말고요.
그리고 제가요...
이미 문단에 등단을 해서 명색이 수필가예요.
요 몇년 동안 절필하다시피 해서 내놓은 작품이 없었는데
이 홈피에 열심히 댓글을 달면서 다시 글쓰는 데 시동이 걸리네요.
다 감사한 일이지요.

지금 둔내에서 왔거든요.
너무 좋은 만남의 시간들이었어요.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웠다니까요. 이 맘, 언니는 잘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