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2: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골로새서1장

 

지난 겨울 양로원에 계신 어머님을 코로나로 직접 뵐 수 없어 세 달 넘게 전화로만 대화하다 보니 어머님의 고통을 놓고 어두운 밤에 간절히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지금 이 순간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창조주이시며 부활의 주께서 제자들을 찾아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듯이 어머님께도 찾아 가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될 줄 제가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 다음 날 어머님께 전화드려 기도 드린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어머님께도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으니 평강이 어머님께 있을 거라고 아뢰였습니다. 말씀으로 천지 창조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시니 그대로 될거라고 아뢰였는데 그 날 이후부터 어머님과 통화하면 실로  평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으로 바울과 디모데가 편지를 씁니다. 이 말은 마치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이! 라고 웃으며 건네는 인삿말처럼  상투적일 수도 있습니다. 허나 하이!라고 인사하며 거리를 걷는 것과 굳게 닫힌 입술로 걷는 것에는 미세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라는 까마득한 날로부터 무수한 날들이 지난 어느날 예수께서 지상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태초에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천년 전 사람의 몸을 입고 오사 그 입을 친히 열어 말씀으로 새 창조를 이루시기 시작하신 것으로 지금도 여전히 이루시는 중입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이루신 천지 창조 그 이상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가장 큰 새창조 역사는 십자가로 사단의 머리를 박살 내고 사망과 저주의 권세를 끊어 내신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와 진노가 아닌 은혜와 평강을  받아 누리게 된 사도 바울과 디모데가 본인들이 맛보고 있는 평강과 은혜가 골로새 성도에게도 있을지어다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이 때 내 속에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혜와 평강이 있는 것일까? 이 은혜와 평강은 어떻해 해서 내게까지 오게 된것일까? 각성하여 알아 보려하지 않고 그냥 스치듯이 떠나보내면,그 귀한 선물인 은혜와 평강의 주께서 내 의지와 생각과 감정의 통전적인 인격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그저 상투적인 경건한 언어로 내 몸 밖에서 떠돌뿐입니다.

 

"3: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음이라 6: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골로새 성도들을 놓고 감사부터 하는 사도 바울이 너무나 부러워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1).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은 필연적으로 주의 몸된 지체로서의 성도에 대한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알려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은밀한 사랑도 있을 것이지만 사랑과 기침은 속일 수 없답니다. 남 말이 아니고 내 말입니다. 은밀히 계신 주님 사랑과 멀리 있어 늘 심령으로 사랑한 교회와 종들과 성도들을 어찌 속일수 있을까요? 이 은밀한 사랑 중에 먹여 주시는 생명 양식을 결국은 큐티 사랑으로 나타나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2.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의 믿음은 들음으로 나는 것으로 이 들음은 곧 그리스도의 말씀(복음 진리의 말씀)입니다. 근데 골로새 성도들은 복음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껏 감겨 있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각성하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복음 듣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듣고 하나님 은혜를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열매 맺어 자라는 시점을 복음을 듣는 날부터라고 말하지 않고,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하나님 은혜를 깨닫기 전과 깨달은 후의 변화를 온 천하에서도 자라나는 열매로 표현합니다. 죽음은 성장도 성숙도 정복도 번영도 확장도 없습니다.  허나 성령의 열매요,복음의 열매요,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맺게 된 수많은 영생의 열매를 자라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필요를 공급하여 충만케하시는 충만으로서 온 천하,온 우주를 충만케하십니다.

 

특히 바울은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교회인 골로새 성도 중에서와 같이 <온 천하에서도 열매가

자라나는도다>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충만의 시작이요 본점이 교회라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이는 교회가 얼마나 대단한 정사와 권세와 나라와 영광과 부와 지혜와 존경과 지식의 역활을 감당하는 거점인가를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영적 대각성은 교회 대각성과 맞물려 나타나는 것으로 교회의 역활을 크게 깨닫는 교회일수록 영적대각성도

함께 일어나 무너진 기도의 제단을 다시 쌓지 않으면 안될만큼 커다란 부담감을 갖게 만듭니다

왜 예수께서는 내 집은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온 몸과 영으로 깨어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대각성된 성도와 교회는 추수할 일꾼들을 온 세상으로 보내사 만물이 영생의 열매들로 충만해지도록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의 필요를 채워 줄 것으로 시작하여 여호와의 눈동자인 예루살렘이 세워져서 온 천하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를

찬양하는 목소리들로 충만해 질 것과 여호와의 눈동자 못지 않게 아름다운 주님의 몸된 신부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성령과 예수를 아는 지혜와 지식과 믿음과 사랑과 헌신과 감사로 온 천하가 충만해지길 기도합니다

공해와 오염에 병든 만물이 치유되어 소생하는 역사로 충만해 질 것과 집없는 이들에게 집이 공급되어지고 음식과 돈이 핍절한 이웃들에게 음식과 돈이 공급 되어져 그야말로 만물이 충만해지도록 기도합니다. 등등..

 

어제 사무엘상 끝장 끝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 맺어 자람으로서 나타난 사건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비통한 사울의 죽음 후에 머리가 잘리고 블레셋 벧산 성벽에 시체가 못박혀 조롱 당하는 소식을 듣게 된 야베스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야베스의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블레셋 군대의 위험에도 밤새도록 달려가서 그와 그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다가 생전에 그가 좋아하던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금식한 것입니다. 이렇게 용감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사울 왕이 베푼

은혜가 아니면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의 오른쪽 눈이 실명된채 암몬의 종으로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암몬의 나하스 왕이 힘없는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을 무시 조롱하며 협박할 때 사울이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하여 밤새 달려와 구해준 은혜를 물에 새기지 않고 마음으로 깨달아 열매를 맺으니 사십 평생 사는 동안 그 깨달음의 열매가 자라 은혜를 갚는 인격체들이 된 것입니다 

 

사울 왕의 은혜를 깨달아 그의 시체를 어찌 대우해 주었는가? 를 묵상하면서 나는 날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사 죽으신 예수의 시체에 얼룩진 피와 혈흔과 채찍의 상처들을 감사와 사랑과 회개와 애통의 눈물로 얼굴만이라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른채 깨끗이 닦아드린 적이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사울보다 더 악하고 맨발 벗고 달려도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낙심치 않음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를 헛되게 하지 않을 줄 믿기 때문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