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반에 시작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2시간이 훌쩍 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아쉬운대로 영상으로 얼굴을보며 

한 친구가 말하면 다른 친구들은 조용히 경청하는 방식이었지만

만나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대면 독서모임도 어느새 햇 수로 2년 이 되어간다.


11월에 함께 읽은 책은 김중미의 <곁에 있다는 것>과 홍수열의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구요>


<곁에 있다는 것>은 2000년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감동을 주었던 작가가 20년 만에 내 놓은 작품으로 여전히 은강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에 대한 이야기이다.


10대시절 조세희씨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는 조세희씨의 허락을 얻어 두 소설 모두 은강을 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였다.


소설의 주인공들인 지우, 강이, 여울이는 모두 허구의 인물이지만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끌어와 마치 실화인양 인물들의 이야기에 깊이 몰두할 수 있었다.


특히 배경인 은강이 인천의 만석동을 말하며 책 속에 묘사되는 장소들이 우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 친근감이 느껴졌다.

자유공원, 월미도, 배다리, 애관극장, 시립도서관.....

심지어는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가 우리의 모교인 인일여고였기에

분명 소설인데도 그들이 까마득한 우리 후배인양 애틋하게 여겨졌다. 


그런 마음이 유달랐던 한 친구가 있었다.

이 지역에 살았고 지금도 늘 이 지역을 걷고 있으며

무엇보다 여기서 교직을 시작하여 숱한 지우, 강이, 여울이를 현장에서 만났던 친구다.


그 친구에 따르면 이 지역엔 동일방직을 비롯해 대성목재, 한국 중공업, 조선소등 큰 공장들이 있었고 지금은 쇠락했지만 40여년 전만해도 그렇게 가난한 동네는 아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과 이주 노동자, 더 가난한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낡고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


친구에게는 특별히 기억나는 한 아이가 있다고 했다.

처음 담임을 맡았던 아이였는데 지우가 늘 이모할머니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한 것처럼

자신의 고모에 대해 말하던 아이였다.

당시 고모는 감옥에 투옥된 상태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조화순 목사더라는....


조화순 목사는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에서 활동하며 

이 책에도 나오는 동일방직 똥물사건의 실제 주인공이다.

6,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친구이자 언니, 어머니라고도 불리던 분으로 동일방직에서

여성으로만 구성된 노동조합 집행부를 만드셨다고 한다.


어떤이는 이 책이 누군가의 곁에 어떤 모습으로 머물러야 하는가를 묻는 소설이라고 한다.

앞서 이끄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떠미는 것도 아닌 정말 누군가의 곁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책에는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겪는 부당하고 억울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곁에 있는 사람들'때문아닐까?


'아파트는 층수와 넓이로 타인과 자신의 부를 비교한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단순함이 그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은강동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타인과의 어깨동무로 살아남았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노동이든, 공간이든, 무엇이든 나누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은강동이다.'


친구들은 말했다.

곁에 있다는 것은 기댈 어깨를 내어주는 것이요, 들어주는 것이며 기다려 주는 것이다. 

소통의 소중함을 지적하며 우리들이 단톡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고 

격려하고 칭찬하며 아름다움을 나누는 것도 곁에 있어주는 방법이라고...


한 친구의 말도 공감이 갔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정말 인천 사람이 맞나?' 의문이 든 이유가

장소도 사람도 다 낯설었다는 친구.

살면서 오직 학교와 집,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는 집과 직장만 오갔을 뿐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다는 반성이 들었다고 했다.

누군가의 곁에 있어 줘 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삶의 방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단다.


사실 이 친구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온 친구다.

살아오면서 늘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서 늘 믿음이 가는 친구였기에

곁을 내주지 않았다는 친구의 반성이 어떤 의미인지 일 것 같아 그 마음이 내 마음인양...


우리는 벗어남에 대해서도 서로의 경험을 나눴다.


은강에 갇혀있다는 기분이 들면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로든 간다고 말하는 

지우 친구 수찬이처럼 벗어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던 친구들의 이야기.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학생때는 주말에도 학교에 나왔었고 그 해방감이 너무도 좋았었다.

나중에 발령을 받아 강화 섬으로 갔지만 섬은 고립이 아니라 오히려 해방이었다던 친구.


다른 친구도 소설 속 인물인 여울이에게 공감을 느끼며 여울이 은강을 벗어나고 싶어하듯

가난한 집을 벗어나고 싶어 더 나은 혼처를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결혼을 선택했던 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모두에겐 그런 시절이 있었다.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자유를 숨쉬고 싶던 시절들.


부당함에 대한 경험도 있었다.


교내 논술대회에서 1등을 해 시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갈 기회를 얻은 지우에게 

학년부장 샘은 말한다. 

상위권 대학에 지원할 여울이 스펙에 아주 요긴하니 기회를 양보하라고 ...


이 이야기가 유달리 가슴에 꽂힌 이유는 나 역시 그런 부끄러운 교사였기때문이다.

실용과 효율이라는 변명을 내세워 낯 뜨거운 일들을  낯 두껍게 저질렀다.


한 친구는 말했다.

학생만 아니라 교사도 이런 부당한 일을 요구받았단다.


교생지도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았던 친구에게 관리자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선생님은 승진에 관심이 없으니 교생지도 업무점수를 필요한 선생님에게 주는 것이 어떻겠냐며 서류상 담당자를 다른 선생님으로 바꾸라는 은근한 압력.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 제안을 거절했다는 친구는 여린 듯 강하다. 


이 책은 희망을 노래하는 책이다.


여울이 오빠 한울이에게 주목한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때까지 우수한 학생이던 한울이는 

명문대에 입학한 후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였음을 자각하며 방황하다 끝내 학교를 자퇴한다.


자신에게도 좌절의 시간이 있었고 삶의 의지가 한 번 꺽이자 어디에도 맘을 둘 수가 없었다.

스스로 피해자라는 마음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이후 운동권에서 활동하며 사회 정의실현을 위한 노력에도 동참했으나

그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해 연대한 것이지 정말 그들을 마음으로 안은 것은 아니었다는 자각.


힘든 시간을 지내며 달라진 한율이가 동생에게 했던

'응, 지금은 좋아. 그래서 더 좋아지기 위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살거야'

라는 말이 가슴에 닿았다고 했다.


강이는 말한다.

'지우는 내가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고 걱정하지만 나는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 착한 사람들이 나처럼 가난하고 힘이 없는게 문제이긴 하다.

그래도 마음이 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숫자가 늘면 그것도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의 변

'어떤 가난도 사회적이지 않은 가난이 없고 정치적이지 않은 가난이 없다.

법은 가난한이들의 것이 아닏니다.

역사속에서 어떤 시대도 가난한 이들의 편이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그래서 미래도 가난한 자들의 편이 아닐거라고 체념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우리는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지우와 강이, 소찬이, 영민과 정민, 연우와 란까지 그들이 힘을 합쳐 

구청에서 추진하려던 쪽방 체험방을 백지화시킬 수 있었던 그들의 연대를 응원하며 그 속에서 희망을 본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나'가 '너'가 되어보려는 시도일지 모른다.

가난과 불평등 속에서 희망을 심는 일, 누군가는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하겠지만

책을 읽고나면 지우와 강이, 여울이처럼 정말로 해낼 수 있겠다고 믿게 된다.

자본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지금, 공동체를 통해 연대하기를 선택한 이 책의 청년들 곁에 있고 싶다 


이길보라 작가님의 추천사로 독서후기 마무리할께.


한 친구가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표현이 사랑스럽다고 지적했다.

어린 강이가 엄마를 따라 걷다가 담장이 넝쿨을 보며 스파이더맨이라고 하잖아.

자신이 아들과 어릴 때 길을 가다가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내리는 것을 보며

아들이 '엄마, 눈하고 비하고 손잡고 내려'하더래. 너무 예쁜 말이지? 

아이들은 다 시인이다.


곁에~~~를 쓰다보니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구요>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빠졌네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연대가 절대적이라 생각해.

재활용을 잘 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친구들이 이 책 읽고 다들 깨갱

재활용에서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지식을 나눔한다네.


다음 도서는 김승섭 교수가 쓴 

<우리 몸이 세계라면>과 그의 도 다른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으로 할께


어느새 한 장 남은 달력이 가볍게 나풀거린다.

시작보다 마무리가 더 중요한 것 같아.

다들 건강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