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24장

"8: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으려 절하고 9: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11: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12: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13: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14: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15: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위의 말씀을 자판기에 옮기며 읽는데 예수님과 바울께서 하신 말씀이 들립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눅6:43~44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되니 너희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10:5~6

 

다윗이 오랜만에 장인 어르신을 뵙게 됩니다. 쫓고 쫓기는 현장에서 모처럼 다윗이 "내 아버지!"를 부릅니다.다윗은 시편에서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101:2> 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완전한 길에 주목하면서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기를 집안에서 힘쓴 것은 자신에게 임하시는 주의 성령을 지극히 사모하며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버지 사울 왕께 방금 전에 일어난 Fact를 보고해드립니다. 자신이 보고해드리지 않으면 누구도 Fact(사실)속에 담긴 Truth(진실)를 말해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다면 다윗이 이 사건을 통해 말하고픈 진실은 무엇일까? 나는 결단코 내 아버지이면서도 여호와께서 기름 부은 왕을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이요, 그런 악은 악인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Fact로 설명하면 다윗은 사울 왕의 정적으로 그에게 언제라도 죽임 당할 수 있습니다. 근데 방금 전에 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와서 죽일 수 있었지만 왕의 옷자락만 벤 것입니다.

왜냐면 사울 왕의 어떠함을 심판할 자는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기름 부으셨으니 그분께서 하실거라는 진실(turth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름 부은 자를 실컷 쓰시고 심판하신다는 말처럼 두려운 말은 없습니다. 

 

유일하게 좋은 나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악인 중에서 악인을 심판하시는게 아니라 의인 중에서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인이라고 칭해주신 여호와 앞에서 살다보면 내 속에 말씀에 복종치 않는 악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악은 여호와께서 가장 승한 즐거움의 기름을 부으신 예수 왕안에 거하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방해합니다.

 

한 주요 한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지체들을 주께서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악입니다. 주께서는 십자가에서 친히 쏟으신 사랑의 피로 교회를  용서하사 아무도 정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주 사랑에 온전히 복종할 때 비로서 주께서는 모든 복종치 않는 것(악,  악인)을 벌하십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 왕 아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의 그림자로서 그도 여호와 앞에 자신을 죽기까기 순종함으로서 자기 손으로 사울을 죽이지 않고 살려줍니다. 이렇듯 그가 온전히 여호와 앞에 복종하였을때 복종치 않는 사울의 악과 그와 그의 왕국을 벌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를 끝까지 붙잡고 순종하자 그 믿음의 고백대로 여호와께서 그와 사울 사이 재판장이 되어주사 그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사울 왕의 손에서 건져주신 것이 그렇습니다

 

"16: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9: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20: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21: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22: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은 자연적인 다윗이 한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으심이 다윗과 함께 활동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울이 이것을 알아 차렸다면 내 아들 다윗를 부르며 울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 이스라엘의 아버지!여호와를 부르며 여호와 앞에서 소리 높여 울며 회개했을 것입니다.  이 장면은 기름 부으심의 역사를 체험한 왕 같은 제사장들이 날마다 주 앞에서 민감하게 깨어 있지 않으면  마음의 굳어짐과 함께 회개의 문도 닫힐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자기 영과 육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한 분열된 자아 현상속에 오래도록 시달림을 받으며 살아 온 불쌍한 우리 인생을 보게 만드는 거울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과 인격이 하나 되려면 자신이 죽은 자라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죽은 개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죽은 자가 영의 목소리를 들으면 살아납니다. 우리 중 아무도 자신은 이미 죽은 자였지만 주의 은혜로 다시 산 자가 되었음을 인식하며 사는 자는 드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통회하는 심령과 겸손한 자의 영은 반드시 소생시켜 회복시키십니다. 곧 내가 죽은 개라는 것을 알게 하심과 동시에 당신의 자녀로 살도록 도우십니다.죽은 자라는 자각 없이는 문득 문득 스치듯 들려오는, 살리는 영의 목소리가 누구신지 모릅니다. 마치 나사로가 죽어서야 비로서 주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듯이 내 혼도 그렇습니다. 

죽일듯이 달려드는 율법이란 사울 세력의 체제 아래  살다보면 내 속에 다윗처럼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만을 찾아 헤메이는 목마른 사슴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