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2014년 3월28일묵상<삼상24장1~7>)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러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삼상24:1~7

 

사울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다윗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말씀 순종에 목숨 건 다윗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다윗의 사람들이 

그 상황에 어찌 그리 잘 맞아 떨어지는 말씀을 먹어주는지 놀랠루야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이다"삼상24:4

 

다윗은 그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무슨 생각으로 일어났을까? 

가서 단 칼에 죽일려고 일어났을까?

 

그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대단히 차분한 행동을 보여줍니다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벱니다

단번에 칼로 콱 찔러 죽이는 것보담 더 숨죽이는 행위였을 것입니다

 

만일에,

다윗이 정녕 사울을 죽이고 싶었다면 그렇게 가만히 겉옷 자락만 베었을까? 

당대 내노라하는 용장 다윗이 무장 해제한 몸으로 변을 보고 있는 사울을 

뒤에서 찔러 죽인다는게..내게는 너무나 낯설게 느껴집니다

무사 다윗답지 않아서리...

그렇게 비열한 방법으로 그를 죽인다는게 오히려 다윗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현직 왕은 사울이지 않습니까?

더구나 그는 벗 요나단의 아버지이지 않은가?

아니 그의 장인이지 않은가?

이렇게 머리를 굴리고, 저렇게 머리를 굴려봐도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시험만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붙혀줄 원수가 과연 사울 왕이였을까?

그래서 다윗은 사울을 정녕 자기 원수로 여겼을까?

다윗이 수금을 타면 악영에 사로잡혀 있던 사울 왕에게서 악령이 떠나는 것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해보았을까?

영적 싸움의 현장 체험을 자주 자주 해 본 다윗에게 있어 원수는 혈과 육이 아니라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불순종의 영들이라는 걸 알았을까?

젊디 젊은 소년 다윗이 악령에 시달리는 아버지 벌 되는 사울 왕 보기를 얼마나 처연하게 보았을까?

 

다윗이 옷자락을 베곤 이내 맘이 찔렸다 합니다

옷자락 벤 행위는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입니다

사울 왕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는데 죽이지 않았다는 <아주 멋진 자기 의>를 

밝히고픈 치밀한 작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가만히 옷자락만 벤 자신의 고의적인 행위에 대해 맘 아팠습니다

그 행위가 얼마나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애쓰는 교활하고도 교만한 행위인지 

찔려오는 맘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에게는 기름부음으로 인해 여호와의 영이 늘 운행하고 있었으니 

남들보다 더 더욱 예민하게 아팠을 것입니다

종들은 물론 성도들도 어김없이 다 이래야합니다

차등기름부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다 같은 한 성령님의 기름부으심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덜 아프고  누구는 달달달 떨면서 아파야하는 기름부으심이 아닙니다

아프면 피차 다 똑같이 달달달 떨면서 아픈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사울의 겉옷자락을 벤 뒤 단 칼에 자기 의를 베었을 것입니다

이후론 다윗에게 갈수록 강도 높은 자기 부인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생각 부인>보다 더 어려운 <자기 의 부인>을 할려면 그래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다윗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라며 여호와의 말씀을 명분삼아 권했다면

다윗은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사울을 죽이지 말 것을 권합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을 원수로 보았지만 다윗은 사울을 기름부음 받은 한 형제로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교회는 사역자들을 비롯한 여러 은사자들과 여러 지체들로 연합된 한 몸입니다

한 영되신 성령께서 그리 하나로 묶은 것을 우리는 자꾸만 질서라는 명분으로 신분계급화시켜 수직적인 질서를 강요합니다

성령님께서도 과연 그럴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내 육질로 먹으면 안됩니다. 역으로 내 육질이 말씀에 먹혀져야 합니다 

만일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이 준 말씀을 자아와 육체의 욕망으로 먹었다면, 그는 <지금이 바로 원수를 죽일 수 있는 그 날이라>며 다구치듯이 들려주는 말씀을 사울을 죽이는 도구로 썼을것입니다. 

말씀은 도구가 아닌 여호와의 인격입니다.

허나 그는 말씀을 분별하여 거절합니다.

 

주님!

말씀을 주로 섬기는게 아니라 주 뜻이 아닌 내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고의적인 것은 물론 부지 중이라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