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눈이 피곤한데다 이십오년 전에 수술한 귀에 통증이 와서

2014년 3월 27일에 묵상한 "셀라하마느곳(분리의 바위)"을 펌해 올립니다

기록은 오래도록 보존되어 좋습니다

묵상 이십년 세월속에 무엇을 묵상했었는지 까막히 잊고 살고 있는데 보존된 기록을 보며 다시 새 힘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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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개인주택에서 가게 건물로 이사왔을 때 아이들이 참으로 좋아한 것이 있었습니다

3층 아파트 천장이 만족하리만큼 높다는 것이였습니다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천장이 높은 공간에서 자란 아이들의 창작 아이큐가 높다 합니다

밖에 나가 고개를 뒤로 젖히면 지붕이 아예 없이 높은 하늘 궁창이 펼쳐져 있음을 봅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바라보면서도 끝내 내 빠듯한 생각들을 먼지 털 듯 털어내지 못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내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시길 바라며 자판기를 두드립니다 

 

이제 막 블레셋으로부터 구원을 입은 그일라 사람이 다윗이 여기 있노라고 사울에게 고하자 사울은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고 말합니다

자기 생각에 하나님을 갖다 붙힙니다. 

자기 힘,자기 판단,자기 상황속으로 하나님을 자기 편리대로 생각한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남편은 내게 자주 자주 질문합니다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모태에서부터 예수란 분에게 발목 잡혀 이제껏 살면서 하나님 사랑하는게 얼마나 힘들면 그런 질문을 할까 싶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사랑하는 차원이 나보다 높아,자기 긍정이나 자기 인식이나 자기 애로 하나님 사랑을 추구하질 않습니다

때문에 자기 부인, 자기 삭제, 자기 증오로 가득찬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우시길을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들가운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을까요?

나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성경에 보니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다했습니다

여지껏 살아보니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다는 내 자긍심마저 다 빼앗아가시더라고요

귀있는 자는 들릴 것입니다

우린 결코 거룩 거룩 거룩하신 지존자를 사랑 할 만한 존재가 못됩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달라고 간구하지 아니할 수 없답니다

 

사무엘서를 읽다보면 하나님께서는 아예 소년기를 지나 한창 젊은 시절때부터 다윗으로하여금

하나님만 찾고 하나님만 사랑 할 수 밖에 없도록 쥐 잡듯이 훈련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이 사울보다 더 크나큰 살인죄와 간음죄를 짓는 것을 보면 그도 사울과 동일한 죄인임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울에게도 소년 때 젊은 때 그렇게 훈련시켰다면 그 역시 다윗 못지 않은 위대한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허나 하나님께서는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래셨을까요? 

그것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왕됨을 버리고 자신을 왕으로 택한 죄악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사람 왕을 원한다함은 곧 사람인 내 자신이 왕이 되고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사울왕을 통해 인간이 인간을 왕으로 삼는 비극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죄가 얼마나 컸으면 이스라엘을 먼지처럼 티끌처럼 열방으로 흩으셨을까요?

허나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버린 대신 주님의 예표인 다윗을 택한 것 같이,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를 밝히 드러내보이시기 위해 이스라엘 국체를 1948년 5월에 다시 부활시킨 것을 봅니다

내 속에는 이렇듯 하나님으로부터 마땅히 버림받아 산산이 흩어져야 할 왕도 아닌 것이 왕노릇 하는 사울이 존재합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온갖 수단과 정열을 쏟는 사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사울을 증오하게 됩니다

그 증오심으로 나는 내 혼과 내 목숨을 미워하며 내 생각들을 부인합니다

사울이 그일라로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 다윗은 판단과 판결의 왕이신 여호와를 상징하는 에봇을 찾습니다

다윗은 사울처럼 왕이란 합법적인 보좌에 앉아서 스스로 판결짓지 않습니다

판단과 판결의 자리에 스스로 앉는 자는 사울처럼 화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일각을 다투는 상황이 오면 내 속에서도 길길이 날 뛰는 야생마 한 마리를 봅니다

허나 그런 지경에서도 모든 상황 판단과 판결을 여호와께 묻는 자가 바로 마음이 온유한 자입니다

 

그일라 사람이 자기를 사울에 붙힐 것이라고 말씀해주시자 다윗은 그 자리에서 즉시 떠나는 것을 봅니다

나도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날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세상 왕에 넘겼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는 순간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행보가 드러나면 사울에게 붙잡혀 죽을지 알면서도 말씀대로 대적 블레셋에 침략당한 그일라를 구원해주는 것을 봅니다. 다윗의 자기 생명 부인입니다

또한 그들을 구원해주었음에도 자기 업적에 연연하지 않고 에봇이 들려주는 말씀대로 속히 그곳을 떠나는 것을 봅니다. 다윗의 자기 부인입니다

 

이렇게 자기 생명을 증오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다윗 앞에 뜻밖에 벗이 나타납니다

우리를 친구라 불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인 요나단이 나타난 것입니다

요나단은 분명 아버지 사울과 함께 왔을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 일어나 다윗이 있는 수풀로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요나단의 자기 생명 부인입니다.사울의 눈에 발각되면 죽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말씀을 줍니다.말씀이 육화된 예수안에 함께 있는 요나단입니다

말씀이 있기만 해도 좋은 벗인데 하물며 말씀이 육화된 벗이야!

요나단이 한 일은 언약의 재확인입니다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도록 말씀을 준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요나단의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면 할 수록 말씀은 내 속에서 세력을 가지고 내 육체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 현상을 두고 우린 말씀의 육화라 일컫습니다

우린 직분 여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자기를 앞세워서는 안되는 자들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이 질서를 무시하는 자들로 인하여 영계는 항상 혼란합니다. 앞서고자 하는 내 탓입니다

 

요나단이 떠난 후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또 다윗을 신고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또다시 하나님을 자기 틀에 끼워맞추는 것을 봅니다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스스로 왕된 자의 자화상입니다. 여호와께서 긍휼히 여기는 자들인 고아와 과부들을 곁에 두고

우린 우리 보기에 좋은 사람들을 섬깁니다. 그가 밭과 포도원과 직위를 줄까 하여 섬깁니다

 

자기를 에워싼 사울과 그의 군사들을 보고 다윗은 다시 또 사울을 두려워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더욱 더 힘있게 의지하라는 말씀을 그립고 반가운 요나단으로부터 받아 먹은지 얼마 안된 시점인데도

사울을 두려워하는 다윗을 보면 인간은 구제불능입니다. 이는 날마다 묵상하며 말씀을 먹는 내 한계이기도 합니다

허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을 긍휼히 여기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길 자를 정하시는 것도 당신 주권이십니다

 

그 긍휼의 현장이 <셀라하마느곳>입니다. 사울이 이제 막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그야말로 문과 문빗장 사이에 갇힌 다윗인데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그곳에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대적 블레셋의 침공 소식을 듣게 만든 것입니다

칠 년전 묵상을 펌하며 읽는 이 순간 저희를 우범지역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긍휼의 현장으로 삼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나 이 역시 제 생각일수도 있으니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내가 죽도록 내 생명을 미워하고, 내가 죽도록 내 생각을 부인하고,

내가 죽도록 내 의지를 거세시키고자 해도 끝까지 떨어져나가기를 거부하는 것이 바로 내 혼입니다

끝까지 판단과 판결의 자리에 앉으려는 사울 왕 못지않은 나-

끝까지 내 생명을 미워해도 말씀보다 더 내 혼의 목숨을 챙길 수 밖에 나-

이런 내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과 별거할 수 있도록 분리의 든든한 바위가 되어 주십니다 

동시에 도피의 든든한 바위가 되어 주십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