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22장

6: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7: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 삼겠느냐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9 :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10 :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여호와와 함께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다니는 모습 속에서 '인자는 머리 둘 곳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의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예수의 그림자라도 밟고 다녔던 다윗은 참으로 가난하고 천한 자입니다. 

 

그의 피에는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에게서 태어난 베레스의 피와 아버지 롯과 딸에게서 태어난 모압 여인(룻)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일찍부터 돌로 쳐죽임 당할 목숨이였지만 다말이나 룻이나 율법이란 사망 권세에 함몰되지 않고 생명보다 나은 인자되신 여호와의 씨를 붙잡은 여인들이 됨으로서 예수 생명 족복에 들어간 자들이 됩니다.

 

그들은 아무리 살았다는 생명이 있다해도 여호와 없이는 죽은 생명이라는 것을 발견한 당대 의인들입니다. 여호와의 헤세드(인자)로 이어지는 예수 생명 계보에 오른 여인들의 공통점은 십자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것까지는 그럭저럭 수용하겠는데 천한 자라는 것에는 몹시도 미적거립니다. 영육간에 가난은 청렴 결백하여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다고 여기며 즐거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나 자신이 천하다는 것에는 자존심이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사울은 죽는 순간까지 천한 자가 되지 못하여 자결합니다.


수모와 굴욕의 생명으로 사느니 죽는게 더 낫다는 고상함의 잣대는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못박힌채 기다리고 계시는 수치와 굴욕의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날 기회를 놓치게 만듭니다. 만일 사울도 다윗처럼 나는 가난하고 천한 자라는 죄인 사상으로 충만했더라면 시기 질투에 시달리지 않고 젊은 청년 다윗을 자기보다 더 나은 이웃으로 여기며 본래의 자기 자리였던 평민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도자일수록 시기 질투로 오염된 모든 인간의 본색을 인정하기가 힘듭니다.속으로 감춥니다.자기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천한 자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데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자기로 인해 유랑하는 다윗과는 대조적으로 사울은 자기 고향 기브아 높은 곳 에셀나무 시원한 그늘에 앉아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사람을 위협하거나 죽일 수 있는 창이 있고 그의 곁에는 언제든지 명령을 내리면 추진할 수 있는 기동력으로서의 신하들이 서있습니다. 

이 모습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신하들과 백성들을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근데 신하 자리엔 요나단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한 율법 아래 있을지라도 사울 라인에 서서 생명을 죽이는 자가 있고 요나단(다윗) 라인에 서서 생명을 살리는 자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사울과 함께 가다가 사울의 불순종으로 인해 나뉘어 지는 시점이 오는데 그 시점 역활을 감당해야만 했던 자가 소년 다윗입니다.  이 때  여호와 앞에서 다윗과 언약을 맺음으로서 그의 편에 선 자가 요나단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사울 왕국의 종교성과 도덕적인 부패를 보며 미약하나마 나라의 새벽을 깨우는 다윗 편에 선  한 지파가 등장하는데 그가 곧 잇사갈 지파입니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역대상12:32

 

복음의 예수께서 오시기전인 율법시대에도 이렇게 율법문자를 깨트리고 사랑의 율법 정신으로 나라 사랑,민족 사랑을 위해 율법의 사망 권세을 상징하는 사울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죽이기도 하시며 살리기도 하시는 여호와를 의뢰하며 나라 살리기에 앞장 선 자들이 있었다는게 놀랍습니다.

 

이제 다윗이 유다로 왔다는 소식이 들리자 사울은 

그가 너희에게 밭과 포도원을 주었냐?천부장 백부장을 주었냐? 어찌하여 너희 중 그 누구도 다윗이  매복하여 자기를 죽이려해도 고발하거나 자기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가 없다 합니다. 피해망상과 우울증입니다.

사울이 회복되는 길은 오직 여호와가 미워하는 옛 사람으로서의 사울은 죽기까지  미워하되 여호와가 사랑하는 순종의 아들 예수를 예표하는 다윗은 죽기까지 사랑하는 걸 택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자기 지파 베냐민 사람들을 발탁하여 천부장 백부장도 삼고 밭과 포도원을 준 것은 사실이나 그것들 중 하나도 사울의 것은 없습니다. 백성들이 받친 세금과 왕의 권력으로 빼앗아 자기를 위하여 신하들에게 나눠준 것들인데 사울은 그것이 마치 자기 것을 준 것인양 자랑 합니다.

 

다윗을 쫓는 무리들은 다윗과 함께 환란과 가난과 마음의 원통한 눈물이 양식일 때도 있는데 사울을 따르는 신하들은 잘먹고 잘삽니다. 때론 우리도 왜 예수께서는 돈도 명예도 우리 교회에는 주지 않으실까? 좀 주시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인데라며 중얼거릴 때도 있습니다.

 

허나 아버지 일은 돈과 사회적인 힘으로 하는게 아니라 십자가의 유일한 아들 예수를 통해서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 멍에는 가볍고 쉽다고 하십니다. 물질이나 그외 다양한 힘들을 통해서 일하라고 하셨다면 교회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를 통해서 일하시기에 진실로 복음입니다. 이 포인트를 자주 잊기에 자주 들어야만 하는 복음의 포인트입니다.

 

신하 도엑이 사울 왕을 위한답시고 다윗에게 떡과 무기를 준 아히멜렉을 고발합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잘못 도와주면 나라와 백성들에게 큰 해를 끼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자들을 도울 때 깨어서 잘 분별해서 도와드려야 합니다

 

"11: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사울이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 14: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16: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신 엘리 가문의 심판을 이렇게 성취하십니다.(보라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란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삼상2:31~32).  여호와를 멸시한 아히멜렉의 증조부 엘리 제사장의 악을 삼 사대까지 값으리라고 말씀하신대로 이뤄집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 명분으로 진멸해야 할 아말렉의 소와 양들을 진멸하지 않고 숨겨 둔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귀히 여기는 자라면 제사보다 더 순종을 귀히 여겼을 것이며 여호와의 제사장들도 귀히 여겼을 것입니다  예배를 귀히 여기는 자들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22: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내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23: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나의 탓! 감동입니다

사실은 사울과 도엑 탓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하지 않았다면 놉 땅 아히멜렉에게 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그러나 다윗은 일체 변명 같은게 없습니다. 단 한마디 나의 탓이라 말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말과 함께 두려워말고 내게 붙어 있으라 합니다. 

정말 예수의 그림자를 밟고 가는 다윗이 아닙니까? 예수께서는 우리 죄를 나의 탓! 나의 죄로 돌리시고 죽어 주셨습니다. 그리곤 정죄가 없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때문에 두려워말라 나와 함께 있자고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고 하십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