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월의 향수를 Bess Gees의 노래 'First of May'
http://blog.naver.com/beeteelli/222329213356 로 시작한다. 5월은 민태원의 수필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구절이 떠오르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병들어가는 지구는 엘니뇨와 라니냐로 신음 소리를 낸다. 5월인데 장마철처럼 연일 비가 내리고 때로 천둥과 번개, 폭우를 동반하며 요란하게 고통을 표현하는 것 같다. 그래도 농촌은 어김없이 자연의 시간대로 움직인다. 지금은 한창 모내기철. 내 어린 시절 모내기 때 마을 사람 서로서로 품앗이를 했다. 집집마다 사람들이 동원되어 못줄을 잡고 일렬로 줄에 맞추어 모심기를 할 때 왁자지껄하며 소란스러웠던 풍경이 떠오른다. 새참으로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를 논으로 가져가는 일은 맏딸인 내 몫이었다. 노란 양은 주전자를 갖고 술도가에 가서 먼저 술을 받아오는 심부름을 했다. 주전자를 들고 오는 길에 막걸리의 무게가 힘겹고 땡볕이 내리쪼이이면 갈증에 못 이겨 막걸리를 홀짝 조금 마셨던 기억이 있다. 새참을 가져가면 어른들은 “너 오다가 막걸리 마셨지?” 하며 놀렸다. 어른들은 어떻게 내가 막걸리를 마신 것을 알았을까?
이제 너른 논에 모심기가 한창이어도 사람소리는 안 들리고 한 대의 기계음만 들릴 뿐이다. 거의 한사람이 기계로 모심기를 다 한다. 모 심는 너른 들판이 적막하고 쓸쓸하다. 한편에서는 점차 논밭을 흙으로 메우고 사람들이 살 집을 짓는다. 논밭뿐만 아니라 꽃이 피고 나무가 무성하여 야생동물들이 넘쳐나던 이 산 저 산을 허물고 그 위에 사람들이 또 집을 짓는다. 그곳에 살다가 터전을 잃고 방황할 수많은 생물들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오래간만에 독서모임에서 추천한 소설책을 읽었다. 소설을 읽을 때 작가 신경숙의 표절시비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표절 건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그 전말과 논란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지만 학계가 아닌 문학계의 표절기준이나 그 징벌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신경숙의 남편 남진우(명지대교수)가 표절논란이 격렬했던 2015년 기고한 사과문 형식의 글을 상기해 보고 싶다. 그는 “작가들은 텍스트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때로 훔치고 빌리며 자기 고유의 텍스트를 실현한다.”, “표절은 이런 과정 중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상사 중의 하나다. 불행히도 표절의 안전지대는 없다.”, “무인도에서 글을 쓰지 않는 한 표절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길은 없다.” “어떤 작가가 주목을 받고 유명해질수록 그 가능성도 커진다. 발자크,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프루스트, 조이스, 카뮈, 헤밍웨이, 숄로호프, 이런 세계문학의 거물들이 다 평생 표절의 유령에 쫓겼다”고 했다. (주희연, 조선일보, 2015년 11월 29일자 문화·라이프면 참조) 남진우는 ‘표절킬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문인들의 표절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그런 남진우가 아내 신경숙을 변호하는 강변은 우리사회 각계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전형적인 내로남불식 변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째든 신경숙의 소설은 참 잘도 읽혔다. 나는 여전히 재미없는 책을 읽으며 속도를 내지 못한 채 한 권의 책을 몇 달 때로는 몇 년을 잡고 있기도 한다. 그래서 술술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재주가 감탄스럽다. 신경숙의 『아버지에게 갔었어』을 읽으며 마치 5부작의 흑백 기록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신경숙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채 먼지 한 톨로 사라질 익명의 아버지”의 “가슴에 잠겨 있는 고통과 침묵의 말들을 호호 불어서라도 건져 올려 죽음 저편으로까지 이어지게 하고 싶었다.” 고 했다. 몇 년 전 나 역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채 먼지 한 톨로 사라진 나의 아버지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시작했는데 남아있는 기억이 너무도 미미했고, 생존해 계신 고모나 작은 아버지께서는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해 별로 기억하는 것이 없어 실망스러웠다. 글쓰기는 지지부진해졌고 나는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며 유진 초이(이병헌 분)가 고애신(김태리 분)에게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엔 누가 사는 거요. 백정은, 노비는 살 수 있소?”라는 대사를 할 때 나는 백정이나 노비만큼 힘겨운 삶을 살아내셔야만 했던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을 쏟았다. 그 분의 장남인 나의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이셨다.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전쟁의 참혹상 중에 기억나는 부분은 전쟁자체가 아니다. 20대 초반에 징병을 당해 참전하게 된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투는 해보지도 못한 채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갔다고 한다. 아사직전에 이른 병사들은 미군 탱크나 군용차량에 넣는 부동액을 훔쳐 먹고 사망하거나 부동액을 훔치다가 미군의 총에 맞고 사망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왜 목숨 걸고 부동액을 먹었을까? 어린 시절 나는 부동액이 무엇인지 몰라서 의아했다. 사람들이 부동액을 꿀이라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부동액의 주성분은 물과 에틸렌글리콜이라고 한다.
에틸렌글리콜은 그 달콤한 냄새와 맛과는 달리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다. 에틸렌글리콜은 50ml 정도면 개에게 치사량이며 고양이인 경우에는 티스푼 하나의 양이면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인체의 경우에도 약 두 스푼의 분량으로도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한다.(안윤호, 『의사신문』 2006년 12월 20일자 의료뉴스 ‘부동액에 대하여’ 참조)
기아만큼 병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전염병이었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 역시 전염병에 감염이 되어 죽은 시체와 죽어 가는 환자들 속에 던져졌다가 생존해 돌아오셨다.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을 때 한국전쟁 당시 전염병에 대해 자료를 수집해 보려고 했지만 그때 발진티푸스가 심각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었다. 그 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최근 6.25전쟁을 전염병이란 시각으로 조명한 책 『전염병 전쟁-한국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동아시아 냉전 위생지도』(이임하저, 도서출판 영희와 철수, 2020년) 소개를 보았다. 책을 읽지 않았지만 책 소개를 보니 한국사회에서 전염병이 가장 창궐했던 시기가 바로 6.25전쟁 때라고 한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어간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어린 남편이자 초보 아빠였을 젊은 영혼들이 구천에서 사무치는 통곡을 했을 것 같다. 나는 가끔 단군이래 최고의 시대를 살아가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비록 남북이 여전히 대치하고 있고 펜더믹 시대를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 전쟁과 기아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앞서간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다져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인숙아, 네 글을 읽으니 맘이 아려온다.
얼마전 철원에 갔었어.
도피안사 철불을 보려했는데
가는 길에 소요산에 올랐어.
소요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철원평야는
논에 물을 대서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답던지...
그런데 그 곳에서 수많은 전투를 벌이며 스러져 갔을 젊은 영령들을 생각하니
그 아름다움이 오히려 처연함으로 다가오더라.
전염병 전쟁 이었다는 소리를 들으니 3.1운동이 생각난다.
그 때도 스페인독감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지?
인구의 반이 독감에 감염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한 상태였다니
그 당시의 상황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우리 남은 삶은 어찌 살아야 하는걸까?
5.29 백신주사를 맞았어.
예방주사를 맞으면 유난히 많이 붓고 열이 났어서 염려했는데
2일 열이나 잠만잤는데 3일째 새벽 아 괜찮구나 싶더라.
예방주사인데 이리 열이나니 코로나 걸려서 죽는 사람들이 그리 많구나 싶었어.
남은 생은 감사하는 맘으로 살아야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