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능하면 하루에 만보 정도 걸으려하고 있다.
나 혼자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며 걷지만 주로 새로 피어난 풀꽃이나 나무에 시선을 주며 걷는다.
풀꽃 이름은 대충 알겠는데 나무에 피는 꽃은 아는 것이 적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집에 돌아와서 책이나 도감을 보며 확인해 보기도 한다.
가끔은 남편과 함께 걷기도 한다. 내가 풀이나 나무에 곁눈질을 많이 하는 바람에 걷는 속도가 느릴 때가 많아 답답해 할 때도 있지만 ‘서당 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꽃에 관심이 많은 아내 때문인지 몇 가지 꽃 이름은 확실히 알고 있다.
“이 꽃 이름이 무엇인감?” 내가 물으면
“철쭉이잖아.” 자신 있게 대답한다.
“오호~ 철쭉과 진달래의 차이점은?”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철쭉은 꽃과 잎이 같이 피잖아. 꽃잎 속에 점도 있고.”
“아! 이젠 많이 아시는데......”
이날 내가 서비스로 남편에게 동화를 들려줬다. 강소천의 ‘진달래와 철쭉’을.
마스크를 쓰고 걸으면서도 종알종알 떠드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퉁박은 주지 않았다.
진달래는 나에게는 그리움의 꽃이다.
국민 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빌려 주셨던 동화책의 이름이 ‘진달래와 철쭉’이다. 그 동화의 주인공 이름이 진달래고 철쭉이다. 남자 형제인데 형은 진달래가 피는 계절에 태어났다고 진달래고, 동생은 철쭉이 피어나는 계절에 태어났다고 철쭉이란다. 여자도 아닌 남자 아이들에게 꽃 이름이라니......
산골마을에서 살던 형제들이 한양에 와서 겪는 모험 이야기다.
난 매해 이 이야기를 산속의 아름다움을 한껏 부풀려 반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교사가 되어 첫 발령이 난 곳이 양평이었다.
시골에는 일가 친척 조차 없는 완전 도시 여선생의 좌충우돌이었다.
발령을 받아 학교에 인사드리고 다시 짐을 가지러 돌아가는 밤.
하늘엔 보름달이 휑하니 떴고 추수가 끝난 겨울 들판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그 해 4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아이들이 제법 말도 통하고 식물에 대해선 나보다 선생이었다. 이른 봄 노란 산수유를 처음 보았다. 온 동네가 산수유로 환히 빛났다. 그 찬란한 노란 꽃이 가을이 되면 빨갛게 열매를 맺어 장관을 이룬다. 그 해에 산수유로 인한 씁쓸한 경험도 하였다. 가을이 되면 각 가정마다 부업으로 산수유 열매 까기를 한다. 요즘 방송에서 보니 기계로도 까는 것 같은데 그땐 사람들이 일일이 손으로 깠다. 손이라기 보단 이로 씨를 빼는 것이다. 빨간 열매 속에 큼직한 씨가 있다. 이 씨를 빼고 과육만 모아 말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 씨 빼기를 하는 것이다. 놀기 바쁜 아이들이 이 일을 좋아할 리가 없지만 4학년쯤 되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는 옆 반 선생님께서 나에게 부탁을 하신다.
“선생님~ 아침 자습 시간에 아이들한테 산수유 열매 까기를 시켜도 될까요?”
‘집에서도 질리게 하는데 학교에 와서까지 열매를 까라고요?’
산수유 농사를 부업으로 하는 선배 선생님의 부탁이었지만 당돌한? 후배는 거절하였다. 그 후 한동안 그 선배 선생님과는 껄끄러운 사이가 되었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마을마다 애향단이란 조직을 만들었다. 5, 6학년이 앞뒤에 서고 저학년을 가운데에다 세우고 일렬로 서서 학교로 걸어오는 것이다.
어느 날 교실에 들어와 보니 책상에 한 아름 진달래가 놓여있는 게 아닌가? 걸어오면서 산에 핀 진달래를 꺾어온 것이다. 얼마나 기쁘던지. 여자 아이들은 기뻐하는 나의 모습이 좋았던지 가끔 하얀 조팝이며 찔레를 가져다 놓았다.
그 아이들에게도 ‘진달래와 철쭉’을 들려주었다.
학교에 딸린 조그만 양어장이 있었다. 햇살 좋은 날엔 미술 시간에 양어장 잔디밭에 앉아서 그림그리기를 하였다. 아이들이 그리기를 하는 동안 난 잔디밭 속의 풀꽃을 유심히 살펴보길 잘 했다. 비록 민들레, 제비꽃 등의 이름밖에 모르지만. 아이들이 이것저것 이름도 알려주고 먹는 나물이네, 못 먹는 나물이네 하며 도시 선생님에게 아는 체를 했다. 나물이라곤 도라지, 고사리 밖에 모르는 나에게 반 아이들이 고사리 꺾으러 가자고 하였다.
일요일 당직인 어느 토요일. 아이들과 고비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었다. 그 산은 고사리로 아주 유명한 산이었다. 아이들은 다람쥐처럼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고사리 있는 곳을 알려주며 잘도 꺾는다. 꺾은 고사리를 자취집 툇마루에 쏟아놓았다. 수북하였다.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나눠 먹으며 사제의 정을 나눴다.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은화야, 예쁜 네가 어쩜 맘도 이리 예쁘니?
양평에 너랑 진숙이 선배언니랑 발령받아
같은 시기를 같은 곳에서 지냈는데
그때 왜 나만 그리 적응을 못했는지...
그 아름다운 시기를 그냥 지나친 것이 아쉽다.
나는 지금도 매번 늦게야 알게 되고 깨닫는 것 같아.
그 순간을 왜 그리 알아채지 못하는지...
그래도 이즈음에도 양평 근처를 지나노라면
팔당 근처 새벽 강물에서 피어오르던 물안개도 생각나고
저수지에서 낚시를 한다고 밤새 앉아
밤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들 바라봤던 일,
물안개 피어올라 구름 속에 앉아있던 기분,
저수지 건너편 불빛이 아스라했던 느낌,
들로 산으로 나물 캐던 생각에 미소 짓게 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같이 공유할 추억이 있어 고맙다.
우리의 꽃선생님! 앞으로도 자주 글 올려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