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요한20:5~12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 예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주사
귀신으로부터 놓임을 받은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돌이 옮겨진 것을 <봅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가서 알리니 요한과 베드로가 무덤으로 달려가는데
요한이 더 빨리 달려가 먼저 구부려 무덤 안을 <보기만> 합니다
근데 베드로는 좀 늦게 왔으나 무덤에 <들어가 봅니다>
마리아가 본 것은 무덤에서 돌이 옮겨진 것입니다
요한이 무덤 앞에서 구부려 본 것은 세마포 놓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본 것은 세마포가 놓인 것과
머리를 쌌던 수건이 세마포와 함께 있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인 것입니다.
그때서야 요한도 베드로처럼 가 무덤 안에 들어가 이 둘이 함께 본 것은 예수의 시체가 없어진 현장입니다.
성경은 이 세 사람의 상태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을
아직 알지(체험하지)) 못한다고 설명해줍니다.
저들이 믿게 된 것은 마리아의 말대로 시신은 없고 빈 무덤만 있다는 것입니다.
시신의 머리를 쌌던 수건과 몸을 쌌던 세마포 그대로 놓여 있는 걸 보지만 부활은 생각조차 못합니다.
이 세 사람이 취한 행동의 어떠함을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도 이미 부활하신 예수임에도 그 부활의 주를 경험하지 못한 행동들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선 요한과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이 진짜임을 믿고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만일에 이들이 부활하신 주를 체험했다면 자기 집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실망하고 있는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부활의 주를 만난 생생한 기쁨을 증거했을 것입니다.
부활 생명이 자연적인 육의 생명과 확연히 다른 점은 절망한 자와 아픈 자와
외로운 자를 찾아가 인류의 참소망이신 예수를 증거하는 성령의 권능이라는 점입니다.
제자들도 부활의 주를 직접 보았지만 주께서 승천하사 아버지께 영광 받으신 증거로
지상에 보내주신 성령의 권능을 받기 전까지는 새창조의 역사를 이룰 수 없었다면 우리야 더하지 않겠습니까?
각기 자기 집으로 간 두 제자와는 달리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시체 예수가 없다고 웁니다.
시신을 찾아 시체 예수를 붙잡고 만지며 향품을 정성껏 발라 드리는 섬김을 부활하신 예수께서 과연 원하실까요?
부활의 주께서 원하시는 섬김은 주께서 우릴 사랑함 같이 서로 사랑하며
세상에 가서 열매 맺되 항상 열매가 있도록 아버지께 항상 구하는 것입니다
내 돌짝밭 같은 성품에서 항상 성령의 열매가 맺힐려면 항상 아버지께 예수 이름으로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록 일곱 귀신은 떠나갔지만 마리아는 예수를 사랑함에 썩어져 없어질 시체 같은 세상을 염려하듯이
섬기는 것을 봅니다. 마리아에게 섬김과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주가 죽었다는 건 사실상 자기 죽음입니다
누구라도 자기가 그토록 섬기며 사랑하던 예수가 시체가 되었다면 결국 자기 죽음을 직면한 듯이 오열하게 됩니다.
마리아가 이제껏 끔찍이도 사랑하며 섬겼던 예수는 마리아의 혼(목숨)과
결탁된 자기 예수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베드로도 이제껏 자신으로하여금 야망의 꿈을 꾸게 했던 전능한 예수가 아닌
너무나 낯선 무력한 예수를 보았을 때 자기 예수가 죽어지는 과정을 통곡으로 간신히 건너와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더이상 울 기운이 없을정도로 운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 봄으로 두 천사를 보게 됩니다.
마리아나 요한이 구부려 무덤 안을 바라본 위치는 무덤 밖으로 동일한 장소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것을 봅니다
왜 누구는 현상세계의 수건과 세마포를 보는가 하면 누구는 영적세계의 천사들을 보는건지 그 비결이 있는 것일까?
사모하여 구하는 자에게 아버지께서는 주시기도 할 것이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원하는 바대로 각자에게 주시는 은사가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예수의 부재로,
그것도 예수 시체의 없어짐에 혼자 낙심하여 울고 있는 마리아를 그냥 두시지 않으십니다.
사실 이 장면은 묵상할수록 눈물나는 천상의 사랑입니다.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요한20:13
이 말씀은 마리아처럼 사랑하던 자의 부재로 인한 통곡과
전혀 일어날 확률이 없는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을 방관치 않고 찾아 오시는 하나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사랑의 어떠함을 맛본 자는 하나님의 인격체로서
사랑의 부재와 상실감에 오열하는 자에게 다가가 소망을 주는 자가 됩니다
교회를 힘 다해 섬겼음에도 아직도 밤과 새벽 사이 미명의 어둠속에 갇혀 한숨과 눈물과 상실감과 염려 고통속에
있는 마리아들을 볼 때 다가가 새 창조의 말 건넴으로 부활의 주와 컨넥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사역을 할 것입니다.
사실 마리아의 오열과 애절한 간청은 정말 부질없는 염려이며 감정의 사치라고 얼마든지 치부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를 섬기며 사랑한 성도의 염려와 통곡을 넓은 가슴으로 귀히 대접하사 그녀에게 천사를 보내시며 부활의 주를 보내심에 인색하지 않으심입니다.
이런 주님을 경험한 자들은 실로 소자와 같은 형제 자매들에게 소홀할래야 소홀 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요한20:14~17
다 아시는 주님이시지만 마리아와 같은 마음으로 먼저 말 건넴을 시도하시는 주님 앞에 서면 가슴이 환히 열립니다. 어떤 말을 쏟아 내어도 다 받아 주신 후
당신께서 제게 꼭 필요한 말씀을 들려주시는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제게 꼭 필요한 말씀은 저를 이름으로도 알고 제 심령을 다 아시는 주는 죽은 신이 아니라
사망 권세를 짓밟고 승리하사 영원히 사시되 제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 사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동산지기인 줄 알아서 자기 염려를 털어 놓습니다. 태초의 동산지기였던 아담과 이브가 범죄함으로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여인의 후손이 원수의 머리를 짓밟게 될 것이라는 복음 하나 가지고 동산 밖으로 쫓겨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로 다시 우리 마음과 가정과 지역 사회의 동산지기로 회복시킬 수 있으신 분입니다
시체를 가져 갔으면 자기가 가져갈 것이니 어디 두었는지 갈켜달라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곧 부활의 주로 응답해주십니다.할렐루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한20:17~18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최초의 부활은 물론 승천 소식까지 전하라는 임무를 주십니다.
당시의 법규상 여인의 증거는 효력이 없습니다.
예수 부활과 승천하심의 증거를 왜 여자에게 가장 먼저 주셨는가 묵상해봅니다
이것은 원수에게 먼저 꾀임을 받아 오랫동안 우리는 저주와 사망의 굴레는 물론
여자는 그 위에 가부장적인 전통 아래 사회적인 인격체로 보지 않았던 옛시대의 막이 내렸음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는 여인의 후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하심이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당신께서 승천하실 것을 계시해 주십니다.
제자들에게는 이미 다락방에서 말씀해주셨지만 부활의 몸으로 알려주시기는 마리아가 첫번째 수혜자입니다
승천이 왜 이렇게 중요하냐면 십자가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 아들을,
이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위하여 영광 받게 하려면 부활과 승천이 함께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하셨지만 아직 승천은 못한 상태입니다.
허나 부활의 주는 승천의 주가 되심도 의심없이 믿기에 이제는 마리아에게도 가르쳐 주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나를 너만의 예수로 붙잡을 것이 아니라 내 형제(제자)들과
유대인과 유대 땅은 물론 온 민족과 온 열방의 땅과 땅 아래와 하늘의 주로 붙잡으라고 하십니다.
내 아버지가 그들의 아버지도 되신다는 걸 붙잡으라 하십니다.
내 형제들이 네 형제들도 된다는 것을 붙잡으라 하십니다
그 시대의 남자들이 얼마나 여자들을 개무시했는데 그런 자들을 예수사랑으로 내 형제로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참 순종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께서 내리신 명령이니 더이상 비좁은 생각과 가슴과 시선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때의 마리아 이후 수많은 마리아 교회들이 그런 마인드로 살다 갔습니다
그 결과 지금 온 열방의 교회들은 예수께서 가신 승천의 길따라 하늘 아버지께로 갈 날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