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독서모임은 줌에 처음 접속한 친구들이 있어서 더 반가웠단다.
독서모임 때마다 늘 함께 하는 친구들이 고맙고, 새로 참가한 친구들도 반갑고, 마음으로 동참하는 친구들의 응원에도 격려를 받는다.
그저 얼굴 보고 안부를 묻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데 좋은 책을 함께 읽고 느낌과 살아온 경험을 나누니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더구나.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
28개 강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감동을 주는 구절이 너무 많아 시간 진행상 친구들에게 각자에게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을 2~3개로 추려서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했지.
많은 친구들이 <숨마 쿰 라우데>를 꼽았어.
이 말은 최우등을 뜻하는 말인데, 유럽의 성적 평가 방식이 우리와는 좀 다르더라.
평가를 4단계로 나누어 최우등, 우수, 우등, 좋음으로 표현하는 그들의 방식에는 우리 나라에서처럼 양가집 자제가 나오지 않더라구.
무엇보다 평가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나로 비교하는 것이 좋았어.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말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경험때문이겠지?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 또 무언가에 숨마 쿰 라우데라는교수님의 말씀이 위로가 된다.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려 타인의 잣대를 따르다보니 오히려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신이 초라해 보였던 지난 경험들. 하지만 이젠 그런 우리에게 스스로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힘든 고비들 잘 넘기며 열심히 살아온 넌 이미 숨마 쿰 라우데라고...남에겐 너그러우면서 자신에겐 참 인색했던 우리였기에 그런 토닥임이 더 필요하다.
인주가 언젠가 본당 신부님께 받았던 보속이 아침에 일어나 양 팔로 자신을 안아주며 '넌 참 잘했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니 멋진 신부님이시다.
우린 <도 우트 데스>에 대해서도 공감했어.
네가 주기때문에 내가 준다는 이 라틴어는 서양의 give & take처럼 계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강의 말미에 던진 질문처럼
과연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를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도 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갖추는 것이 힘이 되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길이며 이건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에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
교수님은 챕터 마지막에 항상 질문을 던지시잖아? 단순한 듯 심오한 질문들!!
한 친구는 그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기 어려웠다며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았대
오랜 세월 내가 아니라 나에게 요구되는 여러 정체성에 맞춰 살아오다 보니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며 어떤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를 잊어버렸다는거야
나를 잃어버리고 산 시간!!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삶을 산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그럴거야.
우선순위에서 나를 항상 가장 마지막으로 두고 살아왔던 시간들에 익숙해져서 이젠 뭘 욕망하는지도 잊어버린건 아닐까?
앞으로 남은 생에선 나의 우선순위를 최우선으로 하고 살자구요.
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오 (당신이 잘 계시다면 저도 잘 있습니다)
윤순이가 고른 라틴어 문장이야.
코로나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간섭받기를 거부하며 스스로의 성에 자신을 가두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염려하며 <함께, 더불어> 안녕하기를 비는 마음을 담아 선택했단다.
사람들은 서로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지만 그 상처도 결국에는 사람으로 인해 치유받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너의 안녕이, 너의 행복이 곧 나의 안녕이며 행복임을 자각하게 된다.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어.
은혜 아들이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의 경험담도 인상깊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언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써의 언어의 역할을 배우는 것인데 우리는 언어가 가지는 소통의 기능보다 글자를 가르치는데 더 치중했다는 반성이 있었어.
'시간이 훌륭한 재판관이다'는 것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담도 있었다.
젊은 날에 우리는 변화에 대한 조급함이 컸던 것 같아.
정당하고 합리적 견해라 할지라도 내 의지만으로 타인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긴 시간이 필요했지.
무수한 실패와 깨어짐 끝에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면서 오히려 많은 부분이 해결되더란다.
사는 일엔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요구된다며 때론 시간에 맡기는 것이 답이라는 친구 말에 전적으로 동감. 특히 관계가 그렇더라.
그 친구는 유치함을 비웃지않고 위대한 유치함으로 볼 줄 알았던 저자에게 감동했대.
사실 어떤 일의 시작은 아주 사소하고 유치한 동기에서 비롯되는데 우린 그 유치함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포장하려 하잖아.
내 생각이, 다른 이의 생각이 유치하다고 부끄러워하거나 비웃지 말자.
오히려 그 유치함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 좋은 열매를 맺도록 응원하자.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이 문장은 로마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이라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교수님은 말씀하시더라.
인간은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기억으로 어떤 향기로 남게 될까?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얼마 전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경애 어머니께서 마지막까지 드렸다는 기도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
또 오늘이 우리 친구 명진이가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날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음의 순간을 맞을지니
현재를 살면서 매 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며 즐겁게 살자!
카르페 디엠!!
그 외에도 친구들의 좋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교수님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으로 마무리할께.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이래.
나는 매일매일 충분히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남은 생동안 간절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두 가지를 하지 않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교수님이 강의 첫 날 학생들에게 내 주었다는 과제 De mea vita!(나의 인생에 대하여)
우리들도 각자의 노트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하여 한 번 적어보면 어떨까?
뜻밖의 시간에서 이제껏 몰랐던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몰라.
내년 1월에 함께 읽을 책은
하정이 쓴 <나의 두려움을 여기 두고 간다>
작가가 덴마크 스반홀름에서 체험한 공동체 생활의 경험을 기록한 여행기야.
신영이가 추천해서 읽었는데 읽기가 쉽고 함께 나눔해도 좋겠다 싶었어.
사실 또 다른 제안이 있었어.
우리 동기 김인숙(이과) 신랑이 최근 미우라아야꼬의 책을 번역했는데
동기 독서모임에서 읽고 나눔을 했으면 좋겠다고 인숙이 경애를 통해 뜻을 전했어.
제목은 <자아의 구도>야
좋은 책 추천한 인숙이에게 고맙고 이 책은 2월에 함께 읽자.
연말이다.
코로나로 모든 관계가 멈춘 듯한 요즘이지만 마음만은 함께 잘 지내자.
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오 (당신이 잘 계시다면 저도 잘 있습니다)
12월 추천도서 한동일의『라틴어 수업』을 읽고 나니 만감이 교차된다.
하나의 언어를 가르치면서도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학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니...
긴 세월 강단에서 나는 매 학기 과목을 바꾸어 가며 교양과 전공 강의를 했지만 별로 남은 것이 없다.
한 가지 일도 이룬 것이 없다는 사자성어 一事無成이 머릿속에 맴돈다. ‘숨마 쿰 라우데’를 읊조리며
一事無成을 떨쳐버리고 스스로를 위로 하며 격려해본다.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의 약력을 보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가 어떤 연고로 변호사가 되었을까? 이에 대해 답은 「만일 신이 없더라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저자는 “우리는 최상의 법(자연법)에서 참다운 법의 원천이 형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이다. · · · · · · 어떤 것도 이성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성은 인간과 신에게 있는 것이며, 신과 더불어 최초로 인간에게 결합된다. 그러나 이성은 인간과 신 사이에서도 합리적이며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그것이 법이 되며, 우리는 법으로 인간이 신과 함께 결합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키케로의 『법률론』인용하여 답하고 있다. 저자가 법을 통해 신에게 가까이 가고 궁극에 신과 결합하고자 한다고 나는 이해했다.
개인적으로 종교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나는 「만일 신이 없더라도」의 내용이 가장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종교에 대해 상당히 합리적인 견해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슬람국가에 종교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지적한 부분을 보면서 이는 가톨릭의 입장에서 종교의 자유를 재단하고 있다는 한계성을 느꼈다. 이슬람국가의 허락되지 않는 종교의 자유만큼 기독교 근본주의 역시 배타성과 폭력성으로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슬람이든 기독교이든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조에 대한 권위를 내세우며 타협을 거부하고 상대방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는 악마의 종교요 무슬림은 악마의 자식이라고 외치고, 예수를 믿으면 천국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이 큰 영향력을 끼치면 이 세상은 어떻게 굴러갈까?
곧 물러날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트럼프는 선거기간동안 자신은 장로교 교인이며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느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다. 자본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거대한 부를 누리면서도 세금을 회피하고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도 하지 않은 사람이 4년간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트럼프는 호텔 · 대학 · 카지노 · 스테이크 심지어 포도주 병에도 자기 이름을 새겨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했지만 "오직 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한 트럼프는 자기 자신을 숭배하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Trumpism으로 경제 호황을 누리게 된 미국인들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남성 1위로 트럼프를 뽑았다. 모택동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미국인을 보며 “존경심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제정책에서 나온다.”고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모든 이들을 깔보는 듯한 오만한 표정과 눈길, 선동적인 언어 구사, 추한 과거 행적은 물론 인종차별을 부추겨 폭동을 야기하고, 대선불복을 선언하며 계엄령 운운하는 그의 광기에 환호하는 미국인들. 영원할 것 같던 로마제국도 몰락은 외부의 적이 아닌 내적 붕괴가 그 원인이었음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종교가 무어냐고 물으면 다신교라고 답한다. 이 대답에 한 지인이 자신은 비겁하게 여러 신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며 나를 비웃었다. 그런데 그는 무슨 일만 있으면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서 자신의 일을 의논하고 점쟁이의 조언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나는 그 지인에게 점쟁이에게 아부하는 것은 비겁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침묵하고 말았다. 때로 과학자인 리차드 도킨슨이 쓴『만들어진 신』같은 책에 매료되는 나 자신을 보면 다신교가 아닌 무신교인가?
특정 종교를 비방할 의도는 없었음을 밝히고『라틴어 수업』 「만일 신이 없더라도」 끝부분 “혹여 필자의 이와 같은 생각에 불편한 분이 있다면 나른한 오후 범부의 개꿈과도 같은 상상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해줬으면 합니다.”를 인용하여 내 생각을 대신하고자 한다.
나는 독서를 편식하듯 했다. 그동안 필요하거나 좋아하는 책 위주로 읽어 왔기에 우리 동기 독서모임에서 추천하는 책들을 통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독서모임을 열심히 이끈 숙희의 노고에 감사하며 저자 한동일(신부님? 변호사님? 교수님? 저자는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선호할까? 궁금하네 )이 좋아서 듣고 또 들었다는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에 거울>을 링크 걸어 놓는다.
https://www.youtube.com/embed/FZe3mXlnfNc"
내가 사는 곳에는 어제 밤부터 내린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고, 강추위로 눈꽃도 피어나 간만에 보는 설경이 아름답다. 이제 2020년이 하루 남았네.
새해에는 우리가 누렸던 귀하고 귀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송구영신! Happy New Year!
"https://www.youtube.com/embed/l_l2JHja9hA"
숙희야 이번 달에도 좋은 책을 안내하고 생각 나누는 자리를 만느느라 수고가 많았구나.
너의 수고로 우리 친구들이 이렇게 좋은 시간을 함께 하고, 또 바라보니 그야말로 복 짓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고마워한다.
줌을 활용한 세 번째 모임이었지?
친구들의 성의에 감동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아! 이 책은 무조건 갖고 있어야지 생각했어.
책을 읽고 난 후 어느 기간 갖고 있다가 후루루 골라서 누군가에게 보내거나 주거나 하거든.
그런데 아무래도 이 책은 책꽂이에 두는 것보다는 권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어.
이번에 이 책을 다시 기쁘게 구입했단다.
난 이렇게 딱딱한 표지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감수하기로 했어. 그럴만한 책이니까.
이 책을 보면서 두 가지가 계속 생각났어.
하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이고, 하나는 한 학기 동안 들었던 신영복 선생님의 수업이야.
<수레바퀴 아래서>는 읽고 난 후 가슴이 너무 아파서 다시 집어들 마음이 들지 않았던 소설인데 이 책 덕분에 다시 들어 앞부분을 읽어 보았다. 라틴어라는 소재 때문이었지.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그 당시 라틴어는 신에게로 가는 문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모든 능력과 지력이 인정되는 열쇠. 그래서 극소수만이 가질 수 있었던 기회.
신영복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일은 내 일생의 정말 최고의 홍복이었어.
수업의 내용도 그러했지만, 전체적인 수업의 계획과 구도, 연관성, 전체적인 맥락이며 부드러운 유머 속에서 느껴지는 통찰이랄까 그런 거에 너무나 느낀 바가 많았거든.
시종일관 가슴이 뻐근하게 아팠지만.
한동일 선생님의 수업도 그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반성이 많이 들더라.
우리가 요즘 참 이상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회오리 같은 생활에서 이제 겨우 벗어나 맘껏 나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시기가 되었는데
어떻게 규정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은 우리를 좀 어리둥절하게 한다.
숙희 덕분에 다시 읽은(그러나 처음 읽은 것 같은^^) 책에서 하나를 골라 읽어 본다.
베룸타멘 오포르테트 메 호디에 에트 크라스 에트 에쿠엔티 디에 암볼라레
-사실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