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졸업 30주년을 계기로 친구들이 만나며 우린 스스로를 돗자리파라 부른 적이 있었지.
어디서든 돗자리만 깔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던.....
어제 줌에서의 독서 모임은 우리가 여전히 돗자리파임을 느끼게 했어.
40분의 시간이 후딱 지나고 다시 재입장하여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기엔 시간이 너무 짧더라.
이 코로나 정국이 끝나고 다시 마주하여 차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최재붕 교수가 쓴 <포노 사피엔스>와 월 듀런트의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두 권이었어.
<포노 사피엔스>는 스마트 폰 사용에 대한 나의 좁은 견해를 깨울 뿐 아니라 생각의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단다.
4차 혁명 시대가 시작되었다고하지만 그 변화를 막연하게 느끼던 우리가 코로나 19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시간들을 보내며 변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 속에서 스마트 폰의 영향이란게 얼마나 막강한가를 실감했기에 이 책에 더 공감했던 것 같아.
난 친구들에게 두 가지의 논제를 제안했단다.
첫째, 우리가 스마트 폰을 얼마나 슬기롭게 사용하고 있는지?
둘째, 문명의 표준을 바꾸어야 한다면, 우리가 그에 맞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 손주들을 돌보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우리 손주들의 폰 사용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전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각자의 견해였어.
우리 나이 또래에 비해 친구들은 이미 스마트 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고 있더라.
은행업무를 손 안에서 처리하고, 유투브를 통해 정보를 얻거나 신앙생활에 도움을 받고, 음악을 즐기는 등 일상생활에서 이미 그 편리성을 누리고 있더라구.
역시 똘똘한 할머니들이야.
그러면서도 우린 폰 사용에 대한 부정적 걱정으로 손주들에게 어느 나이에, 어느 정도까지 폰 사용을 허락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의 폰 사용에 대해서는 젊은 아들, 딸, 며느리가 더 보수적이라는 생각도 들더구나. 친구들은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손주들의 폰 사용에 대해 훨씬 너그러워진 것 같아. 그러면서 절제와 가치관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쉬워야 말이지.....
난 '내 안에 흥선 대원군이 있다'는 말이 재미있었어.
시대의 흐름을 쇄국으로 막아보려 했던 대원군의 결정을 훗날 우리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지?
포노 사피엔스들의 성공사례를 너무 뛰어난 사람들의 예로 든 최재붕 교수로 인해 사람들이 또 다른 환상을 꿈꾸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젠 재미가 행동의 동력같아.
마지막 학교 근무 때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던 젊은 과학선생이 있었어.
게임 마니아이기도 했던 이 선생은 게임을 수업과 매칭해 아이들에게 엄청 인기가 있었어.
그 재미없는 과학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으로 생각을 바꾸게 했어.
이제보니 그 선생님이 포노 사피엔스였나보다.
난 이 책에서 맘에 크게 와 닿았던 것이(윤순이도 같은 생각이었어) '미래 사회의 성공은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라는 점이었어.
BTS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아미라는 견고한 팬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잖아.
공감과 진정성없이 단지 기술적인 부분만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인문학이 필요하다는게야.
우리 아이들에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면 스마트 폰의 사용은 부작용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란 결론을 얻는다.
내 안의 대원군을 몰아내고 나 역시 폰 사용을 더 슬기롭게 하려고 공부하며 손주들과 그런 이야기를 자주 나눌 수 있는 스마트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를 읽은 친구들의 대부분은 일단 시대배경이 지금과 다르고(1930년대)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원래가 그런 것인지 말이 어려워 지루했다는 의견이었어.
나 역시도 이 책을 읽고 난 후 든 생각이 '삶의 이유를 왜 다른 이에게 물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었어. 그래도 소위 당대의 뛰어난 지성인들의 답변이 궁금하긴 했지만...
월 듀런트는 사람들에게 일곱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했단다.
1. 당신에게 삶은 어떤 의미인지
2. 무엇이 당신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지
3. 당신에게 종교가 어떤 도움을 주는지
4. 당신의 영감과 활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5. 당신을 노력하게 만드는 목적이나 원동력은 무엇인지
6. 당신은 어디에서 위안과 행복을 구하는지
7.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궁극적 가치는?
난 이 질문을 가끔 우리 자신에게 던져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다만 형이상학이 아닌 실존적 질문으로.....
듀런트는 비어드, 포위스, 모루아 그리고 79206 죄수의 답변이 가장 흥미로웠다고 하더군.
우리 친구들은 3인 여성의 답변에 가장 공감했대.
난 모루아와 네루의 대답이 내 마음과 많이 일치하더라.
재미있는 대답으로는 탐험가인 스테판손이 나를 살아가게 하고 힘을 주는 원동력은 음식이라는 실용적 답변이었어.
또, 버나드 쇼가 '젠장, 내가 어찌 알겠소? 그런 질문에 뭔 의미가 있단 말이요?"라는 답변도.
1930년대 대공황기에 살면서 그들이 말한 삶의 이유와 기쁨, 가치가 대체로 일과 가족, 친지, 자연에서 느끼는 순간적 감동이란 점에서 오늘날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해 본다.
삶의 의미가 거창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그게 뭐가 되었든 어제보다 조금 나은 나로 살아가면서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 더 깨끗해 질 수 있다면.....쓰레기를 덜 만들고 살아야겠다.
이제 달력이 한 장 남았네.
12월에 함께 읽을 책은 한동일 교수가 쓴 <라틴어 수업>을 추천한다.
서강대에서 수업한 내용을 모은 책인데 마음에 울림을 주더라.
첫 강의에 24명이 수강했는데 강의가 소문나면서 200명이 넘는 청강생이 모여들었고 출판 제의를 받아 나오게 된 책이야.
우연히 한동일이란 분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삶과 글이 일치하는 분이라 더 매력이 가더라.
좋은 책으로 한 해를 훈훈히 마무리 하기를 바라면서 친구들아, 꼭 함께 읽자.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는 도무지 읽혀지지가 않더라.
친구들도 비슷했다니 위로가 된다. ㅎㅎ
가끔 내가 난독증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이 있거든.
그럴 때는 살짝 두렵기도 하고 주눅이 들기도 해.
번역문은 그렇다 쳐도 한국 소설도 그런 게 있어서 놀랄 때도 있단다.
다음 달에 읽을 <라틴어 수업>은 한 문장 한 문장 어찌나 마음에 다가오던지 밑줄을 엄청 그으며 읽었고, 먼 곳에 사는 분께 소포로 보내기도 했는데, 다시 읽어 보니 전혀 모르겠고, 처음 보는 책 같더라.^^
이래서 매번 책을 처음 읽는다니까~
암튼 숙희야 고마워~~
숙희야~~~ 줌으로 함께 했던 친구들 항상 대단하다 생각해!
최재붕교수 강연은 TV에서 처음 접했는데
너희가 생각했던 것 처럼 스마트 기기에 대한 생각과
게임에 빠진 아이들에 대해 좀은 너그러워지는 계기가 되었어.
한편 생각하면 인간이 사는 이유 중 하나는 행복하기 위한 것인데
게임을 하며 행복을 느낀다면
너무 빠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정도에선 괜찮겠구나 했어.
이것도 좀 그런가?
이분이 다음책으로 <포노사피엔스 코드>를 내셨는데
이책의 표제는 '내마음의 표준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명에 적응하는 일'이다.
이 책에선 문명의 교체 시기에 도래한 펜데믹이 오히려 세상을 바꿀 기회 라면서
9가지 코드를 말해.
1. 매타인지 -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알면 한계가 사라진다.
2. 이매지네이션 - 생각의 크기가 현실의 크기를 만든다.
3. 휴머니티 - 자기 존중감은 모듬 사람의 권리다.
4. 다양성 - 다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5.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 - 모든 부는 디지텅 공간으로 모인다.
6. 회복탄력성 - 냉정한 낙관주의자의 길을 간다. 공감의 폭에 따라 회복탄력성도 증가한다.
7. 실력 - 데이타가 한사람의 모든 것을 증명한다.
8. 팬덤 - 가장 큰 권력의 지지를 받다.
9. 진정성 - 누구나 볼 수 있는 투명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사람은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회 전체를 관통한다고 보긴 어렵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진정성에 무게를 둔 것이 놀랍다.
진정성이라는 것은 삶 전체에서 묻어나는 향기와 같은 것이라며
인생이 일관성을 갖고 진정성을 유지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많은 '생각' 이란다.
그런데 포노사피엔스의 약점 중 하나가 진정성 보다 검색을 중시해서
생각의 훈련을 의도적으로 많이 해야한다며 'JYP엔터테인먼트'의 예를 들려준다.
'진실,성실,겸허'가 'JYP엔터테인먼트'의 추구가치인데
유교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덕목이다. 라고 하는 대목에선 이사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숙희야, 고마워! 덕분에 많은 생각을 했어!
'진실,성실,겸허'를 생각하며...
다음엔 별일 없어서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책이 있어.
제목은 생선남 - 생각을 선물하는 남자
김태원이라는 젊은 이의 글인데 재밌게 읽었어
거기 실린 내용중에 OTL에 대한 부분이 있어
헐이나 봵, 짤처럼
젊은 애들이 기분이 바닥을 칠 때, 좌절감을 표시하는 약어인가봐
생김새가 좌절해 무릎꿇고 엎드린 사람처럼 보여
작가는 이 모양새에서 O를 떼면 TL이 보인다며
이것을 '틀'로 보는거야
틀이 많으니 창의적 생각이 억압되어 좌절할 일이 많은거라구...
틀을 깨는 것은 선물의 포장지를 뜯는 것처럼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설레는 일이란다
생각의 틀 깨기!
신영이 글 읽으니 그 글이 떠오르네
덧붙여 난 빅데이터나 SNS는 여전히 불편해
빅데이터가 때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아 오히려 두려울 때가 있어
'어떻게 아는거지?' 하면서....
사생활 공유는 아직은 낯 선 개념이네
<Linux just for fun>이라는 책을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적 있어.
우리나라 제목은 <그냥 재미로>였고.
정말 모르는 분야의 책이었고 읽어도 자세한 내용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흠뻑 빠져 재밌게 읽었고 심지어 감동도 받았어.
뭔가 내가 모르는 컴퓨터의 세계에 대해, 그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의 관계 또는 선택에 대해 아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지.
돈의 세계와는 조금 다른 면에서 말이야.
하도 오래 전에 본 책이라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데 이런 것은 기억나.
이 사람은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그래서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는 북유럽 출신 젊은이였는데, 혼자 많은 시간을 할아버지로부터 배워 알게 된 컴퓨터의 세계로 들어가 <놀게> 되지.
말하자면 혼자 구조나 프로그래밍을 연구하는 거야.
그리고 모르는 것을 그 비슷한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며 <공유>해.
물론 무선으로.(처음에 이거 읽으며 이게 무슨 말일까 했어)
그 사람의 기본 마음은 아는 것을, 소중하고도 무한한 정보를 무료로 함께 나누자였어.
아니 무료로여야만 한다는 거였지.
자본주의의 속성을 경계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두려운 예감이었을 수도 있고.
난 그 마음이 참 놀라웠어. 이런 게 참 배움이란 거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어.
난 유튜브로 최재붕 교수의 비교적 긴 강연을 두 번 들었는데 재밌는 예가 많아 잘 이해가 되더라.
거기서 나오는 김태훈이라는 사람 이야기.
AI에게 이세돌이라는 기사가 겨우 1승을 거두고 그 다음 전세계 모든 기사들이 졌잖아.
이미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나타났다는 거 말야.
그때 그 기술의 개발자가 80퍼센트의 기술을 무료 공개했다지?
나머지 20프로는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어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고.
이 분야의 젊은이들은 너무나 즐거워하며 나머지 20프로의 프로그램을 풀기 위해 경쟁을 했고.
결국 김태훈이라는 사람이 이 숙제를 다섯 가지 방법으로 풀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무료로 공개했다는 거지.
왜냐면 자기도 그렇게 혜택 받으며 배웠으니까.
그리고 그 놀라운 능력에 감탄한 다수 세계적 기업의 입사 권유를 물리치고^^ 그가 입사한 회사는 공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는 것.
게임은 마약이라는 생각에 나도 아무 근거도 없이 동의했고, 아이들이 게임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세계가 멸망하겠다는 생각도 했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 했어.
아니 게임 자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지.
이 책을 읽으며 또 방송을 들으며 내 생각이 근본적으로 많이 바뀌는 경험을 했어.
인터넷 세계가 뇌의 기초가 되는 1990년 이후의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냐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도 무슨 근거로 그것에 대해 그렇게 무조건 비판적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단다.
무지가 미덕은 아니잖아.
몇 년 전에 무슨 인터넷 관계 사업을 벌인 아이와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를 아는 사람이 자기 회사의 제품을 사 주려고 하는 게 결과적으로 자기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더라.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
웃기네, 교만하기는.... 이 정도로 생각했지.
몇 년이 지났고 오프라인 가게가 한 개도 없는 그 회사의 운영이 지속되는 걸 보며 아! 내가 정말 전혀 모르는 어떤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져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해.
숙희 덕분에 좋은 책을 잘 읽었어.
권유하지 않았다면 일부러 보지는 않았을 거야.
온 생활이 인터넷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우리도 너무나 많은 부분이 그 세계에 포위되어 있다고 생각해.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두려움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조금만 궁금해도 얼른 검색해 보잖아.
책으로 가야 하는 손이 자꾸 폰으로만 가고 말이지.
하지만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먹을 건 스스로 아는 것처럼 이런 인터넷 생활도 뭔가 자중하고 절제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어린 아이들, 젊은이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조금은 유연해졌다는 거.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어떤 역사를 만들어갈까에 대한 궁금증이 더 깊어진 것.
그게 이 책을 읽은 나의 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