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걸은 이야기를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
어느새 4년 전!
4년여의 긴 시간 동안 난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나?
나의 산티아고 길은 지극히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에게 소개하기가 좀 쑥스러웠고, 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더 머뭇거렸다.
마음속으로 올해 아니면 내년쯤 남편과 함께 다시 걸어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때는 정말 차분하게 내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써 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갑작스런 며느리의 취업으로 손주를 보게 되었고,
또 전대미문의 covid19로 인해 나의 꿈은 이제는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먼 일이 되어버렸다.
아! 이제는 더 엄청 멀어진 나의 산티아고 길Ⅱ.
그곳을 다시 다녀와 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친구들이 소소한 이야기를 홈피에 올리는 것을 보며 늘 부러웠다.
친구들 글을 읽다 보면 늘 “아! 맞다. 나도 저 기억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친구들의 뛰어난 글솜씨들은 나를 좀 주눅들게 했다.
어찌들 그리도 잘 쓰는지.
이정원이 공부하는 베네딕도회의 봉헌회처럼 나는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따라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고 애쓰는 프란치스코 재속 3회의 회원이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4년 전 내가 속한 글라라 형제회의 소식지에 기고했던 글을
그대로 옮겨 보려 한다.
다시 고쳐 써 보려 했지만 이미 그때의 감동은 가물가물해졌다,
친구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며 읽어주기를 바라며, 늘 애쓰는 홈피지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짧은 글이긴 하지만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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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 길은 스페인 북부지방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길이가 800킬로
미터에 달하는 도보 여행길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카미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순례”라고 하는 이유는 사도 성 야고보께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걸었던 신비로운 고대의 길에서
기원하기 때문이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여러 길이 있는데 나는 그 중 프랑스의 생장피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프랑스 길을 걸었다.
약 780킬로미터의 길 중 620킬로미터를 걸었는데 하루에 25킬로미터 정도 걸었고
높은 산은 사흘에 나누어 걸었으며 힘든 날은 10여 킬로미터만 걷고 쉬기도 했다.
걸음이 느리기도 했지만 제대로 전 구간을 걸으려면 두 달은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을 집을 떠나야 할 수 있는 일.
내가 없는 집에서 낮시간 혼자 계셔야 하는 어머니를 두고 ‘과연 갈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많은 갈등과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2일(2016년) 산티아고를
향해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왜 그리도 가고 싶어 8년을 꿈꾸어 왔는지, 무엇을 보고 싶었는지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그저 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출발한 길이었지만, 나는 그 길 위에서 왜 그리도 가고 싶어 했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 보고, 듣고, 느끼며 그 길을 걷고 6월 13일 집으로 돌아왔다.
길(스페인어로 카미노라 함)에서는 뒤로 갈 수가 없다. 오직 앞으로만 갈 수 있다.
힘들어도, 아파도, 쉴 수는 있지만 되돌아 갈 수는 없다.
마치 우리네 삶 같았다.
후회가 되어도 되돌아 갈 수 없는 지난 시간들처럼 말이다.
인천공항을 떠나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출발 지점인 생장피드포르까지 가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8년을 꿈꾸며 기다려온 것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참 먼 곳이었다.
예수님의 복음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는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
생장피드포르 성당 옆 로마다리 위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노란 화살표를 따라간다.
집의 담에도, 벽에도, 길에도, 나무에도 온통 노란색의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노란 화살표를 그릴 수 없는 곳에는 작은 자갈돌들
을 모아 길의 한 쪽에 화살표를 만들어 놓았다.
물론 길가에는 표지석도 있고.
생장피드포르를 출발하면 산티아고 까지는 그대로 걸을 수 있다.
간혹 도시에서 길을 잃은 적도 있지만 그때는 누구에게나 “까미노?” 하고 물으면
손으로 방향을 일러주니 말을 못해도, 글을 몰라도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
첫날 걷던 느낌은 아주 강렬했다. 출발 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꼭 연습했었지만
실전이 주는 감동은 정말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피레네에서 본 그 많은 야생화들,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도 있고 처음 보는 작은 꽃들이
산을 가득 덮고 있었다. 별이 가득한 하늘, 맑은 공기, 산꼭대기에서 만난 성모님은
나를 기다려 주신 듯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5일째 걷던 날 어마어마한 유채밭을 만났다.
제주도의 유채밭은 그저 조그만 꽃밭처럼 느껴지는 그런 밭이었다. 그 속에 피어있는
빨간 꽃양귀비는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크레파스의 하늘색과 똑같은 색의 하늘과 노랑, 빨강...
“좋으신 주님, 찬미합니다.”
그 길을 따라 용서의 언덕(페르돈 언덕)으로 올라갔다. 용서의 언덕에서는 우리 자신이
미워했던 모든 이를 용서해야 한단다.
바람이 몹시 불어 눈도 뜰 수 없는 곳에서 내 마음 속에 미움이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 용서해야 할 사람보다는 내가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모두에게 용서를 구하고 기도하며 한참을 울었다.
길을 걷다 타우 십자가를 만났다.
지금은 반쯤 허물어져 한 쪽 벽만이 남아있는 성의 벽에 타우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고,
그 옆에서는 차에 손으로 만든 타우 십자가를 여럿 놓고 팔고 있었다.
스페인의 성 안토니오 수사님이 온 마을에 돌던 전염병을 물리치셨는데, 타우 십자가를
들고 마을을 돌면서 치유하셨단다.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타우 십자가를 집 벽에도 그려 놓고 걸고 있었다.
길을 걷다 만난 타우 십자가는 마치 사부님(성 프란치스코)을 뵌 듯 반가웠다.
어디를 가든 하나가 될 수 있는 우리는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순례가 중반을 넘어설 무렵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고백 성사였다.
그러나 그 먼 스페인에서 몇 마디 말 밖에 통하지 않는 내가 속시원히 내 잘못을 통회하며 성사를 보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음 속으로 하나씩 잘못을 적어가며 걷던 중 라바날 델 카미노라는 마을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곳은 철십자가가 있는 ‘이라고산’ 밑에 있는 마을로 다음 날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일찍 도착해 쉬기로 한 곳이다.
일찍 도착했으므로 조그만 수퍼마켓을 들러 장을 보고 밥을 하려는데 그 곳에 한국인 사제가 상주하고 계시며 부임하신지 열흘째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라바날에는 ‘베네딕도회’ 수사님들이 순례자들을 위해 운영하시는 쉼터 알베르게가 있고 조그만 성당에서는 성무일도를 노래로 하면서(그날 저녁기도와 끝 기도를 라틴어로 봉헌했음) 순례자들에게 기도와 쉼을 제공하고 있었다.
“좋으신 주님, 제게 꼭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며 기다려 주시는 주님!!”
나는 그 곳에 계시는 사제에게 성사를 보고, 돌을 하나 주워 철십자가 밑에 내려놓으며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봉헌하라는 보속을 받았다.
사제관을 나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만지며 돌을 찾았다.
그리곤 돌을 하나 주워들었는데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인간의 한 면을 보았다.
그렇게 울며 성사를 봐놓고 주워든 돌은 아주 작은 것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내일 넘을 산 생각에 무거운 것보다는 가벼운 것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이고, 예수님, 죄송합니다.!”
다음 날 길을 떠나며 나는 큰 돌을 주워 머리에 이고 산을 올라갔다.
신기하게도 돌은 떨어지지 않고 내게 붙어 철십자가까지 나와 함께 갔다.
철십자가 밑에는 많은 이들의 소원이 적힌 돌들이 작은 언덕만큼 쌓여 있었다.
어떤 이들은 소원을 적은 돌을 고국에서부터 가져오기도 한단다.
“제 죄까지도 사랑하신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돌을 소중하게 내려놓고 내게서 아픔을 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주님은 그렇게 나를 당신께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부르셨다.
멀리 산티아고 시내가 보일 때는 몹시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길의 끝이 다가왔다는 설렘과 기쁨과, 그리고 그동안 걸었던 길들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이 엉켜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그러나 오후로 넘어가는 뜨거운 태양은 몹시도 나를 지치게 했고,
아무리 찾아도 산티아고 성당의 종탑은 보이지 않았으며 달궈진 아스팔트와 쉼 없이
달리는 많은 차들은 결승점을 앞에 두고 지친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노란 화살표는 큰 도시답게(?) 찾기도 어려워 더듬더듬 헤매며 한참을 걷다가 좁은 길로
들어선 순간 작은 건물 뒤로 멀기는 하지만 웅장하게 드러난 성당의 종탑은, 눈물 나게
반갑고 언제 힘들었던가 생각도 안 날 정도로 내 발걸음에 힘을 주었다.
“저기다!! 바로 저기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길의 끝에 서니 감개무량했다.
숙소를 찾아 짐을 풀고 광장을 향해 나섰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인지 순례자 사무소는 이미 문을 닫았고, 광장으로 향하는 골목길은
순례를 끝내고 기쁨에 구경나온 사람들,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늦은 시간 이었지만 광장 한가운데 누워있는 사람들...
그 속에 나도 있었다.
웅장한 산티아고 성당을 바라보며 광장 한가운데 앉아 지난 시간들을 기억해 보았다.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신 야고보 성인이 스페인의 산티아고에 묻힌 기적처럼 지금 내가
이곳에 앉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며 생각해 보니 주님께서는 떠날 준비를 할 때부터 늘 함께 계셨고, 기도 속에서 함께 하셨으며, 나와 함께 걸으셨다.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기도였고 주님과의 좋은 기억이었다.
우리의 삶도 사부 성 프란치스코를 본받으며 예수님께로 가는 순례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기도하다가도 짜증내고, 힘들 때는 모든 걸 내려놓고 쉬기도 하고, 신이 날 때는 콧노래 부르며, 가끔 울기도 하면서 가는 길.....
나는 모든 사람이 이 길을 걸어 보며 주님과 함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주님, 부족한 제게 이리도 큰 은총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늘 기도하며,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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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길만이 내 길-이라고 하더라.
더구나 순수한 신앙으로 가슴이 꽉 찬 인주의 걷는 소리가 그대로 우리 마음에 들린다.
야곱이 걷던 것처럼 순례자의 자세로 걷고 싶다고 했지?
단 하루도 다른 숙소에서 자지 않고 알베르게에서만 자던 일도, 성당에 들러 묵상하던 일도, 돌아와 족저근막염에 걸릴 정도로 힘들었을 텐데도 꾸준히 참고 걸었던 일이며 참 인주다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존경심이 든다.
우리 모두 가끔 걷고 걷고 그저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지?
그럴 때마다 머리에 떠오르는 곳이지.
꼭 종교와 관계 없더라도 말이지.
인주가 순례를 마치고 두 팔을 펼치고 찍은 사진을 보고 가슴이 설레어
그 다음 해 꼭 같이 다녀 온 친구도 있지?
그저 기억으로만 남기에는 아까워서 늘 기록으로 남겼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
인주야
고맙다.
우리에게도 희망을 주니 말이야.
이렇게 매일매일 우리가 함께 걷고 있으니 언젠가 더 먼 길을 함께 걸을 수 있겠지?
기분 좋다.
언제였던가?
산티아고 순례를 꿈꾸고 언젠간 나도 걸어보리라 했었던게?
그러던 어느 날 인주가 "나 순례갈거야!"해서 "와, 좋겠다."하며 엄청 부러워 했었지!
그리고 다녀 온 후 꿈결처럼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대단하네. 그런데 나는 언제나 가볼까?
그래서 산티아고길에 관련된 책과 영화들을 열심히 찾아 보았었지.
내가 순례길을 떠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네가 그랬던 것처럼 그동안 내 삶을 돌아보며 철철 눈물을 흘리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울고는 싶은데 눈물이 안나. 그저 바람일뿐...
요즘 걷기도 하고 등산도 다니며 언젠가 갈 것을 대비해서 연습 중이다.
"힘들어도, 아파도, 쉴 수는 있지만 되돌아 갈 수는 없는 길.
마치 우리네 삶 같았다."
"8년을 꿈꾸며 기다려온 것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참 먼 곳이었다."
이 글귀들은 특히 가슴을 울리며 너의 깊은 내공을 느끼게 한다.
멋진 인주야, 고마워!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고
나도 다시 꿈꿔볼란다!
매 순간 걷고 또 걸으며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고 있지만
삶은 아름답다고 느끼고 싶다.
인주야, 위업을 이루었구나. 대단하다. 작년에 네가 산티아고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잠깐 들었지만 글로 보니 새삼 감동이다.
나는 종교가 없는 사람인데도 왠지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오고 싶다는 소망를 줄곧 품고 있었단다.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면서-
얼마 전에는 순례하는 사람을 영화 형식을 빌려 찍은 다큐를 보면서, 역시 내게는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냥 꿈으로만 간직하기로 하였는데, 오늘 네 글을 보니, 쉬엄쉬엄 가 보면 어떨까, 이런 무지개 같은 소망이 또 모락모락 피어오르네.
인주야 좋은 글 잘 읽었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