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회 - 아이러브스쿨 게시판담당 : 김영자
시간은 흘러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쉽고 아쉽고,
통탄스럽고....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삶의 끝에 도달합니다.
너무나 아쉬운 경우를 오늘 아침 맞닥트리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계가 언젠가는 발견될 수 있을까요, 영화 <Back to the Future> 속 이야기에서 처럼...
액운이 일어날 확률을 극복하고, 행복한 길로 들어서도록 조절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번에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동기 여러분도 참여해 보아요!
차를 몰 때, 내비를 잠간 잘못 보면... 다른 길로 빠져
제 길로 올라오는데 고생스러운 경우가 있지요. 어떤 때는 내비만 보고 달리다 보면 계속 쳇바퀴 도는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그렇더군요. 잠간의 결정이, 혹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 원래 짐작되던 인생길과 1도 정도 약간만 벌어지는가 싶더니
점점 더 벌어져 나중엔 하늘 땅만큼 차이가 나는 수가 있더라구요. 원상복구 하려면 피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엄청난 각오와 인내와 여기에 따른 하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주의 에너지가 감응하여 도와줘야만 제자리로 올라 올 수 있습니다.
1) 잠간의 방심으로 비만해진 경우도 그렇지요.
몸무게를 줄이고, 날씬한 상태로 돌아가는건 무지 어렵습니다ㅎㅎ 잠간 방심했던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지요. 몰랐으니까요.
예를 들어, 발레 훈련을 하다가 그만 멈추면 살이 오르더군요 (나의 언니 중고 시절). 아마 모든 운동 훈련이 그렇겠지요.
2) 정말 예기치 않은 경우에 벌어지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 때, 왜 우리 집에 불이 났을까?
-왜 그때, 아버지는 사기를 당하셔서 우리집은 이토록 어려워졌을까?
-왜 그 때, 교통사고가 나서.. 나는 이렇게 되었을까.... 등등
아쉬움을 남기고, 도도히 흘러가는 인생의 시간들......
둘째에게 정리해 준 너의 글을 우리도 볼 수 있을까......
보기를, 스토리를 듣기를 희망합니다! (독일어로 올려 줘요)
이제는 오픈 되어도..... 어머니께 누는 되지 않을 듯함.
우리 집 이야기도 마찬가지.
모두 까발리면 부모님께 누가 되려나?.... 허지만 어머니는 늘 세상에 비밀은 없다 하셨고,
성경에도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한다고!!
나도 우리집 이야기를 최고의 드라마감이라 생각하고 김수현 작가를 한번 만나볼까.... 도 생각했었지ㅎㅎ
마릴린 먼로의 걸죽한 목소리로 듣는 River of no Return이 흐르기 시작하면
그저 뜨거운 눈물이 흐르지요, 그때로 되돌아 가서 원인이 된 자잘한 일들이 제거되고, live happily ever after 였으면 좋겠다.... 하고.
희자야,
너의 노력은 보상을 받을거야. 언제? 어떻게? 그건 모르지.
분명 따님들의 엄마사랑을 통해서...
대학 3학년 때, 교정에서 우연히 만난 인천선배가 제게 귀뜸을 해주었습니다.
인천 막걸리 집에서 네 동생을 봤다!
엥? 청천벽력이었죠. 동생은 이쁜 고3 수험생인데.....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대한서적 위 빵집에 매일 와!
인천에 내려간 나는 빵집에서 기다리다가 산뜻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오리알처럼 이쁜 내 동생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영욱형이 귀뜸해 준 말이 동생과 나의 삶이 어긋나기 시작한 시초였습니다.
내가 누나가 아니고 형이었다면..... 타일러서 안되는 일이라면, 치고박고까지 했겠지요만... 따듯한 마음만 가지고는 돌이켜질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 이제 생각났어요, 오랫만의 기억입니다.
바로 카르멘 같은 스토리 (어젯밤 TV에서 오페라 카르멘을 방영하여 밤새 그것 보았다는 지인의 말에 옛일이 생각남)
동생은... 막걸리집 아가씨들이 너무 불쌍했고, 그녀들을 술집으로 내몰은 가난을 평안의원이 어찌어찌 몰아내고 없애주기를
바랐었습니다. 제가 그녀들을 만나 봤는데.... 술집아가씨라고 무슨 표가 없어요. 여염집 고2,3같은 어린 아가씨들이었습니다.
동생은 절규했지요. 왜! 크리스천들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그녀들을 도와주지 않는가?....라고. (저는 대학3학년이었고,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던지... 그런 식으로 도와주는게 아니라던지.... 뭐 변변히 대응할 실력이 아직 없었던 때임)
그녀들을 도와주지 않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진 채로 동생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마수가 뻗쳤습니다.
대학에서 서클가입을 서클선배들이 독려했다는데.... 그 모임 이름은 仁嶽회!
어느날 보니 술을 먹으며 동생은 종이에 人惡회...라고 쓰고 울고 있었습니다. 아마 나쁜 짓을 하는 단체인 듯.
탈퇴가 불가능한 단체인지... 동생은 군 입대를 자원하였는데, 이후
탈영 등 우리 집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단어들이 점점 익숙해 졌습니다.
ㅎㅎ 그 뒷처리는 모두 대학생인 내가 쫓아 다니며 했고, 어머니는 놀라서 때마다 쓰러지시곤 했습니다.
그때로부터 50년이 흘렀네요~
저는 잃어버린, 사라진 내 이쁜 동생을 찾기 위해 지금,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이젠 찾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열심히 찾을 겁니다.
동생을 찾고 만나 부등켜 안고 눈물 흘리는 그날까지......
(ㅎㅎ 그나마 감사한 일은.... 올케가 정말 훌륭한 여성이라는 것! 살림 잘 하고
현모양처이며, 어디에도 없는 절세미인이지요~
그리고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내 동생은 유전자가 대단히 완벽하게 태어났어요. 우선 생김새.. 테리우스 형이지요,
머리는 또 얼마나 좋아요. 운동신경은 너무 걸출하고, 노래를 부르면 모두 넘어갑니다. 물려받은 신앙을 돌이키기만 하면
남은 반생을 공허하지 않게 튼실하게 다시 건축할 수 있겠다... 싶어요.)
추석명절 연휴 나흘째; 오늘 밤 10시반에는 TV N에서 그 유명한 <기생충>을 방영한다고 하니
아직 보지 못한 나는 그 시간만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 영화를 세번이나 본 룸메가 늦은 밤 혹 출출해 할까봐 잔치국수 말을 준비도 해놓았어요.
대가족의 제사와 차례를 도맡아 하던 때가 지나가고... 이제는 시부님도 안계신데다가, 제사와 차례를 시부님께서 마지막에 사셨던
나주 집에서 모시고 싶다고 막내가 원하니 (=나주에서 식당 운영, 배재대학교 졸), 큰집인 우리는 돈 보내고, 시간 맞춰 큰형이 내려
갔다 오면 됩니다. 원래 7형제이지만, 2째와 4째는 뱅쿠버에 이민가 살고, 6째는 바르셀로나에 이민가 사니; 국내에 있는 사람은
1-3-5-7뿐입니다. 고명따님(5째)은 명절에 오지 못하니, 다 모여야 1-3-7 세집뿐입니다 ㅎㅎ
즉, 저는 free 하게 되었답니다.
며늘이 명절 반찬 만들어 오고, 나도 손주 먹일 것들 만들거나 재료를 사서 보내는 것이 나의 명절이랍니다.
어제는 며눌이 갈비찜과 나물7종 조금씩, 또 새우전과 동태전, 잡채를 만들어 왔구요, 나는 애기가 잘 먹는 조기와 어묵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명절 기분 내느라, 호박전과 알쌈(=화평동 집의 특색있는 전 요리; 계란물로 타원형처럼 pan에 두르고 간을 한 다진 쇠고기를
새알심처럼 빚어 가운데 놓고 익어가는 계란물을 접으면, 마치 작은 만두같이 됨; 단 새알심 다진 쇠고기 직경이 1cm정도, 계란반달은
직경 5cm 미만 *다진 쇠고기 갈아놓은걸 사면 기름이 너무 많아요. 살코기 부분으로 사서 갈아달라고 해야 합니다)을 부쳤고 송편은
진즉이 사두었습니다. 손주가 크면 나도 손주와 함께 익반죽으로 송편 빚으며 손주를 가르쳐야지요 ㅎㅎ.
그리고 한강공원에 나가 마스크 없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가족들끼리 강바람 쏘이며 소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였습니다.
일본사람, 미국사람 등 외국인 가족도 있어 남편도 나도 개량한복 입고 공원에 간 생색이 좀 났습니다. (며늘은 그간 스타벅스에서
받아 모아놓은 간이 접의자 4개 또 돗자리까지 알뜰하게 가져 왔네요.)
내 한복은 주로 <단>원장이 만들어 준 것인데... 어제 입은 것은 인사동 <선바람>이라는....
가게 앞을 지나다 그만 마음이 빼앗겨, 한참 고민하다가, 비싼만큼 아껴입고 나중에 며늘에게 물려주자... 했던 것.
헌데 며늘이 저렇게 늘씬하고 키가 클 줄은 뜻밖입니다.
긴 연휴.... (가족의 사진 & 사진액자)를 정리하며 지냅니다.
오늘, 추석 연휴 끝나고..... 10월 5일 월요일입니다.
조간 동아일보를 집어든 순간 깜짝 놀랐어요.
저처럼.... 동생을 잃어버린 이야기가 커버스토리입니다. 10월 5일, 6일 양일간의 특집입니다.
사업이 망하고... 어찌할 길 없어 자취를 감춘 사람들
이네들은 수십년 세월이 흐른 후, 보고싶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돌아가지도 못하고....
또 반대편에선, 저처럼... 동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무지 많네요. 거의 수천명.... 어쩌면 수만명이 되겠지요
우리 모두 인생길이 초행이라... 나의 niche를 빼앗겼을 때 (혹 잃었을 때) 어찌할지 모르고 쩔쩔 매지요.
자신의 의지를 확대해야 하지만 쉽질 않으니 이럴 때 꼭 필요한 것이 종교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가족의 사랑도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스스로 버리지 말고, 섭리하는 우주의 power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매어달리는 것입니다.
유튜브에 보면 <The Secret>, 그리고 관련한 오프라 윈프리 쇼- (대담 프로)가 있지요.
자신의 niche를 잃은 사람들에게 일독, 강추합니다.
강물이 흘러내려 가는 방향이 있듯이
시간도 일방통행
코로나 때문에 생각치 않은 시간이 생겨
그간 미루어 두었던, 딸 들이 궁금해 하던 집안이야기를 적어 보았지
독어로 쓰자니 힘들었지만 나대로 열심히 써서 작은 딸에게 수정부탁했어.
요즘 시험도 있고 알바 하니 시간 나면 봐 주겠다해서 기다렸지
그게 초 여름이었는데 통 무반응.
아마도 관심이 없나 하고 궁금하던차 딸이 메세지를 보내왔다.
딸: 엄마, 이건 기가 막힌 드라마 이야기야. 드라마에 들어가야할 조건이 모두 들었있어. (쟝르 를 주욱 적어 보냈다.)
나: 미안해, 좋은 얘기만 쓰지 못해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다 그렇네
딸: 아니야, 이걸 읽고 나니 엄마가 더욱 사랑스러워
나: 고마워. 빨리 교정해서 보내줄래?
딸: 좀 더 기다려 줘... 내가 바빠서
나는 항상 엄마 한테 다정스럽지 않은 딸이었는데 내 딸들도 그렇다. 날 닮았는지...
엄마가 돌아가신후 많이 후회 했다. 좀 시간을 내어 엄마랑 다정하게 얘기 해본 기억이 없어서.
엄마는 수줍은 성격에 말이 없으시고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해 주셨는데
상해에서 살다가 광복후 한국에 돌아오셨기에 엄마에겐 한국은 마치 타국이었다.
나도 타국 스위스 살면서 자주 엄마 생각을 했지.
그런데 시간은 되 돌릴수 없고 강물도 한번 흘러내려가면 되 돌아 오지 않듯이 이미 늦었다.
두 딸에게 하는 말: 너희들 나중에 나처럼 후회말고 궁금한것 있으면 엄마에게 다 물어봐
두 딸에게
자주 만남을 청하고
음식도 해서 돌리고
아무일이 없어도 전화하고, 나는 매일 매일을 적극적으로 살려고 노력해 본다.
자식도 형제도 친구도 자주 교제가 없으면 멀어지는데
지금 세상이 좋아 매일 매일 글을 받고 보낼수도 있으니 참 좋다.
잡을수 없은 인생의 시간, 몇자의 글로 순간을 추억으로 접어두는 것도 좋겠다.
순애야, 좋은 의미의 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