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고 싶다.(윤경옥 시집)
경옥이가 첫 시집을 출판하였다.
어릴 때 학교를 대표하여 글짓기 대회도 나가고 가끔씩 몇 줄씩 만나는 글에서 경옥이가 시를 참 잘 쓴다는 생각을 했었다. 학교 졸업 후, 국어교육과에 진학하고,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끔은 이 친구가 시인이 되어 시집을 내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곤 했다.
그러고 40년이 흘러 우리 친구들이 모두 은퇴하게 되자 걷기 모임과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독서 모임이 자리 잡아 정독도서관에서 매달 둘째 주 화요일에 모이곤 했는데, 어느 날 경옥이가 왔다.
춘천에서 KTX를 타고 왔단다. 친구들 중에 대전, 아산, 천안, 공주 등....... 더 먼 곳에서 오는
친구도 많았는데, 춘천에서 왔다는 말에 참 먼 곳에서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경옥이가 참 반가웠다.
그리고 우리들의 “왜관 수도원 피정”에서 경옥이가 자기가 쓴 몇 편의 시를 읽어주어서 친구들을 감동 시켰다. 계속 시작(詩作)활동을 하라고 격려하는 친구들에게, 동시를 많이 썼고 시집도 발간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들의 제주 여행에서도 경옥이는 자작시를 낭독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경옥이는 이미 시인이었다.
그러고서 지난 8월 말에 그의 시집이 출판되었다. 우리는 앞다투어 시집을 신청해서 받아 보았다. 쉽게 읽고 지나가기에 아까워 한편, 한편 읽고 또 읽었다. 책갈피를 붙여서 표시해 두면서 아껴 읽었다.
이제 그의 시집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앞의 1부 <유년의 기억>은 동시들이다. 동시가 왜 예순 넘은 할머니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걸까? 경옥이가 우리와 같은 시간에 같은 경험을 하며 자란 시인이기 때문이리라.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세계가 결코 낯설지 않다. 그 눈의 순수함이 우리 속에 있는 순수했던 감각을 깨워주기 때문이리라.
첫 동시 「술래잡기」에서 어린 시절 우리가 비뚤어지지 않고 자랄 수 있게 우리를 숨어 사랑해 주던 그 어떤 얼굴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많은 형제와 대가족 속에서 따로 사랑 받기 힘든 시대였는데, 숨어서 지켜주고 토닥여준 분이 있었기에 우리가 잘 자랄 수 있었을 거다.
그 분이 경옥이에게는 아버지였고, 누구는 외할머니, 누구는 시집간 언니, 누구는 큰 오빠 등등.
「그 아이, 첫사랑」 이 시를 보면서 우리들의 어린 날 누군가를 좋아하여 설레던 그 경험이 떠올라 가슴이 짠했다.
사춘기 시절 우리는 짝사랑을 고백해 보지도 못한 채, 가슴에 담아 키우며 많은 사색을 하곤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요즘 아이들처럼 쉽게 고백하고 쉽게 헤어지고 하지 못하고, 두고두고 그리워하며, 줄장미 그늘에 앉아 시를 읽곤 했다.
경옥이의 동시 속의 아버지,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 친구는 모두 그리움이다.
그리움이면서 사랑의 기억이고,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우리들의 유년기와 통하기에 그의 동시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리라.
나는 그의 동시 「숨은 그림 찾기」가 참 좋았다.
숨은 그림 찾기
회갈색 나뭇가지를
들여다본다.
잎을 떨군 앙상한 가지들이
팔 벌리고 있는데
나뭇가지 속 깨알 같은 눈이
나를 보더니
구불렁, 선을 그리며 도망간다.
자벌레였네.
시원한 냇물 속을
들여다본다.
물빛이 투명하게 맑아
너른 모래밭이 훤히 보이는데,
도도록한 작은 언덕
툭-건드리니
꿈틀, 나비 같은 지느러미로 달아난다
모래무지였네.
시를 읽으며 나뭇가지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허리 굽혀 냇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경옥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내 어린 모습이다. 그 세심한 관찰의 눈, 그 눈에 비추어진 아름다운(?) 미물의 모습, 아이의 눈으로 보아야만 아름다운 것이다.
이런 자연에 대한 사랑이 이 시집 전체에 흐르고 있다.
글이 길어져서 2부<접어둔 편지>, 3부 <자전거를 타는데>, 4부<길 위에서>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친구들에게 미룬다. 다른 친구들의 감상도 함께 나누고 싶다. 나도 나중에 더 쓸게.
경옥이의 시를 읽으며 느낀 것은 요즘의 우울한 코로나19 상황으로 많은 시가 극단적으로 가벼워지거나 우울이 깊어져 어둡거나 하는데 비해서 전반적으로 흐르는 그리움의 바탕 위에 따뜻한 사랑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옥이의 시를 읽으면 잔잔한 그리움과 행복이 솟아난다는 것이다.
우리 친구들 중에 이미 책을 낸 친구들이 많이 있다.
정옥이, 정원이, 희재, 인숙이, 경숙이, 그리고 경옥이......
그밖에도 많이 있을 거야. 그런데 지금 상황이 우리를 만나지 못하게 하니 이렇게 홈피에서 만나는 거니까 혹시 친구들 중에 먼저 글 낸 친구들 서운해 하지 말기를~~
늦은 밤, 아버지가 술이 얼근해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골목 입구로 들어설 때 들리는 노래는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이었다.
그 소리가 들리면 내 동생과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했다.
또 있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소~~'
'에야노 야노~~야, 에야노 야~노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심상치 않은 증세에 할 수 없이 검사를 받으신 아버지는 예상대로 어려운 병임을 알게 되셨다.
여든세 살.
이만하면 됐다고, 어떤 치료도 받지 않고 지금 그대로 지내겠다고 하셨고,
형제간에 갈등이 있었지만 그렇게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가시기 전까지 일상을 유지하며 지내셨는데, 어느 날 쓰러지셨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극통에 시달리다가 의식을 잃었다.
의식이 없던 일주일.
조용하고 맑은 빛이 들어오는 인하대병원 1인실.
당번이 되어 아버지를 보던 날,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할까 하다가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아버지와 특별히 친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상할 정도로 굉장히 자유롭고 편안한 사이여서 아버지 앞에서 어떤 질문을 해도 어렵지 않았고, 따라서 행동도 자유로웠다.
말하자면 나의 치기와 방종이 허용이 되는 어른이었다.
내가 손에 안 잡히는 딸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일년 내내 밤마다 어린 소년처럼 우는 아버지를 보고
내가 그렇게 마음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주무시라고 늘 등을 토닥토닥 해드렸으니까.
아버지 가까이 앉아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이상할 정도로 실타래처럼 노래가 연이어졌다.
평화롭고 아늑했다.
아버지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그 다음 날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만히 안아드렸다.
따뜻했다.
-은혜의 좋으신 어머니
애도의 마음을 보냅니다.
윤경옥의 시 <아버지>를 옮겨 본다.
아버지 윤경옥
민들레 노란 꽃이 사방에 피어
밤길 환한 봄밤이거나
달빛이 더욱 푸르고
귀뚜라미 오래도록 우는 가을 저녁이거나
멀리서 '보리밭' 노랫소리 유장하면
그건 나의 아버지
그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었더라면.
'보리밭 사잇길'이 아니라
작고 낮은 집들이 겸손하게 엎드린
골목길을 슬쩍 휘청이며 걸어오시는데
우리는 맑으면서 우렁우렁한 노랫소리가
골목을 울리는 게 부끄러워 몸을 숨기고
일장춘몽의 한세상
아득한 꽃향기 같았던 아버지
포로수용소 담 밑에도 제비꽃,
가끔 그의 기억 속에 돋아나고
세월은 창문 너머로 지나갔는데
외줄 타듯 고단했던 짧은 생을 건너
아버지, 어디로 가셨을까
오늘 밤에도 별 하나가
우리를 내려다본다.
-경옥아, 우리에게 좋은 시를 읽게 해 줘 고마워.
앞으로도 많이 읽게 해 줘~
아름답고 아련한 동년의 추억과 인생철학이 담긴 시집을 출간한 경옥이에게 축하를 보낸다.
윤순이가 꼼꼼하게 잘 소개를 해주었네.
우리는 모두 왜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
마침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한다.
‘내가 되고 싶은 나’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고 싶다.
중략
우리 모두, 우리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고 싶다> 중에서
그런데 나는 그 마음을 알 수가 없어 오늘도 오락가락 갈 之자로 걷는다.
오락가락 그것이 내 마음인가 보다. ㅎㅎㅎ
경옥이의 시 ‘술래잡기’가 내 마음에 콕 들어와서인가
시집을 읽는 내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졌어.
옥규처럼.
경옥이 마음속엔 항상 아버지가 함께하는 듯했어.
서로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았지만 같은 시대를 지내온 우리는
많은 것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고 있구나하는 동질감을 느끼며 읽었어.
부모님에 대한 생각, 자연을 보며 느끼는 감정 등
나는 표현을 못했지만 읽으며 공감을 많이 했어.
그래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 하고.
‘길 위에서’
-중략-
잎을 떨구고, 떨고 있는 벚나무 곁에
솔숲은 수묵화처럼 검푸른 겨울인데
긴 다리 건너가며 뒤돌아보면
삶은 길처럼 이어져 평온하다.
바닷마을 카페에서는 커피를 끓이고
우리는 커피 향이 풍기는 사소한 일상에
위로 받으며 안도하며
걸었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간다.
이 시 요즈음의 내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
경옥이의 시를 읽으며 가족을 다시 생각해 보고,
삶을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을 가졌어.
고마워~ 경옥아.
경옥인 어려선 조숙한 철학자같더니만 나이들어선 오히려 눈 맑은 아이의 맘을 느끼게 한다.
네 안엔 무수한 나이대의 경옥이가 함께 사나봐.
2부 <접어둔 편지>에 실린 시에서는 그리움과 함께 시인의 무한 상상력을 느낄 수 있었어.
어느 젊은이의 죽음은 왜관 수도원 피정 중에 부원장님이 보여주신 동영상을 보고 쓴 시라
더 친근하게 다가오더라. (정원이가 애 많이 썼어. 동생 내외까지 조수로 부리면서.....하나라도 더 경험하게 해 주고 싶어 부원장님께 조르기도 하고말야. 다시 생각해도 너무 고맙다!!)
맘 아픈 사연이었어.
그 젊은이는 자기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지.
독서모임을 이끌기도 하고 엄마와 마지막 여행도 가면서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던 모습이 떠오르네.
젊은이가 세상을 뜬 후 친구들이 모여 그를 추모하며 생전의 그의 모습을 즐겁게 나누던 장면도 인상깊었어. 짧았지만 또렷한 삶의 흔적을 남긴 젊은이가 커 보이더라
네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목숨은 때로 왜 이렇게 가벼운가? 싶지만
난 가볍게 살고 싶다.
2장에서 내가 좋아한 시는 <오월의 밀밭에 종달새 되리>야.
기억을 잃어버리며 물살에 홀로 흔들리는 작은 섬이 된 할머니
현실과 상상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세월의 무게도 줄어들면서
가벼워진 할머니가
오월 밀밭의 종달새되어
하늘 높이 날아갈 꿈을 꾸며 다시 아기처럼 순한 모습으로
손가락 물고 잠드신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진다.
순환하는 인생이여!!!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싶더라.
자화상을 읽으며 경옥이가 참 열심히 잘 살았구나 싶었어.
먼 길을 걸어 묵은 술처럼 깊어지고 산철쭉처럼 향기로워 진 너를 본다.
시집 출간 다시 축하한다.
시 한편 한편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어.
깨어있어야 시를 쓸 수 있겠다고 말야.
시인이 친구라니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