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에서는 블루라는 말을 좀 슬픈, 힘든, 우울한 이런 뜻으로 사용하나 보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요즘 정말 참는 것이 한계에 다달았다는 느낌이 들면서 화가 너무 나고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위해서도 물론 조심하지만, 대부분 모든 사람들이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극심히 조심하며 지내고 있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정말 이해할 수가 없고 울화통이 터져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확 던져버리기도 했다.
그런 행동은 거의 안 하는데 깜짝 놀라 어! 나 이상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확실히 이상하다.
난 모르는 것이 하도 많아서 이 상황이 뭐지?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거지? 어떤 게 진실일까 혼란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벌거숭이 임금님을 바라보던 어린아이 마음으로 돌아가 벌어진 상황을 가만히 쳐다보며 생각하려고 한다.
거기에 태풍까지 이어지며 여러 사건이 벌어지고 그에 따른 양 극단적인 말들이 아우성을 치니 더 머리가 복잡하다.
사람은 자기의 이익 혹은 관계가 된 일에 객관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상하잖아 하고 갸우뚱해지는 일도 있는데,
다 생각이 다르고 행동도 다르다.
사안에 따라 가족간에도 갈등이 생긴다.
이런 일들이 쌓이고 이어지며 불안을 조성한 것일까?
오늘 아침, 너무 마음이 안정되지가 않았다.
도무지 마음을 부잡을 수가 없었다.
수족이 묶인 것 같은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 이런 막막함에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여행에 관한 영상을 보거나 할 때면 이번 생에 저런 일이 정말 가능하긴 할까 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서오릉으로 갔다.
서오릉은 소풍 장소이기도 했고, 한동안 그곳과 멀지 않은 곳에 살았기 때문에 자주 간 곳이다.
하지만 늘 스쳐지나고 보고도 잊어버리고, 왕릉 아니 대부분 왕비릉이지만 그 능에 대한
내용을 잘 알지 못했다.
서오릉 둘레길은 둥그렇고 길게 위치해 있는 능 위 산쪽으로 길게 다듬어져 있는 흙길이다.
그다지 높지도 않고 적당히 길어 걷기에 좋은 곳이다.
만 보 정도 거리다.
바람도 시원하고 날도 선선해 땀도 나지 않은 좋은 산책 길에서도 나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한숨을 크게 내쉬며 우울한 얼굴로 걸었다.
그곳에는 경릉(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창릉(예종과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의 능), 익릉(숙종 첫 번째 왕비 인견왕후의 능), 명릉(숙종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세 번째 왕후 인원왕후의 능), 홍릉(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능)과 순창원(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원), 수경원(추존 장조(사도세자) 의 생모 영빈 이씨의 원), 그리고 대빈묘(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 장희빈의 묘)가 있다.
전에 왕비들의 수명에 대한 글을 읽고 깜짝 놀랜 적이 있다.
10대(12세나 13세), 20대에 죽은 경우가 너무 많았고, 서른을 넘어 간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장수한 사람도 있었지만.
오늘은 능 몇 개만 자세히 보자 하고 마음먹고 발길 닿는 곳에 있는 것부터 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세상에....
창릉의 주인공인 예종은 형이(덕종, 의경세자) 일찍 죽어 19세에 왕위에 올랐는데, 재위 기간이 1년 2개월이다. 즉 20세에(1468년) 죽은 것이다. 그 부인인 인순왕후 한씨는 1498년까지 살았으니 그 당시로선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있고 연산군 때 대왕대비의 신분으로 죽긴 했지만 참 생각하니 아연했다.
보통 세자빈으로 간택되는 건 일곱 살 정도이다.
정말 이건 무슨 인생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릉의 주인공인 덕종은 세자로 책봉되긴 했지만 왕위에 오르기 전 20세에(1456년)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나중에 추존된 것이다.
그럼 그 세자빈으로 책봉된(1455년) 소혜왕후는(나중에 인수대비) 평생을......
이건 또 뭐냐?
뭐 이런 인생이 있나 이런 생각.....
이 능은 특이한데 덕종은 추존된 왕이고 인수대비는 정식 대비였기 때문에 덕종의 능은 일반 묘의 형태이고, 인수대비의 능은 왕릉의 형태이다.
방향도 바뀌어 있고.
특이하네, 성별보다는 지위였다고?
왼쪽이 왕비의 묘고 오른쪽이 왕의 묘다.
높이와 규모가 다르다.
홍릉은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능인데, 평생을 숙종과 경종의 왕비를 극진히 모시며 소생 없이 66세까지 살았단다.
아니 이건 또 뭐라니.....
게다가 영조는 같이 묻히기로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영조 자리는 비어있고 혼자 있네.
영조는 두 번째 왕비 정순왕후와 동구릉에 있다.
순창원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원인데(왕과 왕비가 못 되어) 순회세자는 7살에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13세에 세상을 떠났고, 윤씨는 9살에 세자빈이 되었으니 그럼 11살에 혼자가 됐네.
마흔한 살에 가셨으니 이건 또 무슨 인생이란 말이냐.
수경원은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장조(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원이니 말 해 뭐 할까.
1남 5녀를 낳았는데 그 1남이 사도세자인 셈이다.
모진 목숨이라 69세까지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장수인데 그게 삶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빈묘는 그야말로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인 장희빈의 묘.
세상을 떠나던 나이가 43세였네.
아들인 경종에 의해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어 그나마 무덤 하나는 갖게 되었네.
여기에선 가장 작고 초라한 능.
에고 부질없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여기까지만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져서이다.
일평생 선대조 왕비들을 모시며 후손 없이 혼자 산 왕비의 묘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이라니.
기분이 묘하다.
세자빈, 혹은 왕비.
그들로 인해 그들의 친정집은 권위가 얼만큼 올라갔을까?
성장을 하고 무거운 머리 장식에 부러질 것 같은 목을 버티며 아무도 보지 않는 눈을 내리깔고 서 있는 어린 여자아이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의 삶의 무게가 긴 세월을 넘어 확 느껴졌다.
갑자기 내 고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면을 사 먹을까 짜장면을 사 먹을까 집에 가서 만들어 먹을까 이렇게 맘대로 고를 수 있는 자유도 있고 말이지, 마스크만 쓰면 그래도 돌아다닐 수 있고 말이지.
답답하긴 하지만, 언제는 힘 안들었어? 싶기도 하고.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나 원 참....
개미 같은 민초 인생이지만, 여행은 못 가지만, 그래도 작은 일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어디냐.
아니,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게 어디냐.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김밥 재료를 사 갖고 와 일주일간 계속 김밥만 해 먹어야지 생각한다.
왕비는 이렇게 못하지.
나의 고민과 근심은 왜 내 김밥의 옆구리는 늘 터질까? 왜 김밥 속이 가운데로 가지 않는가로 바뀌었다.
일단 걸을 일이다.
걸으며 보고 생각하니 이런 쓰레기통 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9월 6일 오후 7시를 기해 태풍 '하이선'이 접근함에 따라 태풍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중대본 비상대응 수위도 가장 높은 3단계를 발령했다.
태풍이 비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록해 둔다.
난 요즘 넷플로 삼국지를 보고 있거든.
영상으로 보니 책 읽을 때랑 또 다른 재미가 있네.
마침 헌제 유협이 조비에게 황제 자리를 선양하고 제후로 봉해져 배를 타고 수도를 떠나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유협이 조조의 딸인 자신의 황후에게 다음 생엔 제왕가로 시집오지 말라 하고 황후는 유협도다음 생엔 제왕가에 태어나지 말라며 서로 부둥켜 앉고 우는 대목이 짠하네.
동탁에 의해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곽사, 조조, 조비에게 농락당하며 늘 전전긍긍 좌불안석으로 살아온 유약한 유협에게 내내 짜증이 났지만 한편 그의 인생에 측은한 맘도 들더라.
평생을 책에서만 본 강산을 이제야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오히려 조비에게 감사한다며 강산을 통째로 조비에게 바친 자신은 한의 영토에 묻힐 면목이 없다고 스스로 수장을 선택해 죽더구나.
권력이 뭔지......
작은 자유나마 누리며 내 발로 걷고 내 맘대로 시간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태풍이 강릉쪽으로 빠졌다고 하네.
정말 다행이야.
우리 모두 닥치면 하는 거지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으니
잘 해결되고 얽히며 또 풀리며 세월이 가겠지.
일산에서 수원으로 통근하던 인숙아
잘 지내니?
이렇게 폐쇄되어 유쾌한 인숙이의 말을 듣지 못하는 일이 아쉬울뿐이다.
천년의 근심이라......
그래 사람이 참 나무만도 못하다.
옥규 안녕? 앙증맞은 보라색 꽃에 홀려서 들어와보니 옥규가 쓴 글로 안내하네~ㅎ 서오능 나도 친구들과 가끔 걷던 곳인데 옥규글에서 만나니 또 가고 싶다. 그곳은 능이 있는 곳이라서 그럴까? 햇볕이 쨍한 여름에도 어딘지 습하고 그늘이 많았어. 걷기엔 그만한 곳도 없다 싶었지. 내 친구는 힘든 일 있을때 마다 벽제 공동묘지 주위를 걷고 온다 했어. 죽음을 생각하면 온갖 시름이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네. 벽제 공동묘지보다는 왕릉이 훨 낫지 싶다~ㅎ 요즘은 경로우대라 주민증만 내밀면 그냥 패스~ 능도 둘러보고 걷기에 무릎에도 부담없고 나오면 각종 식당에 카페에 ~ 요즘 갈만한 곳이지만~ 혼자 걷기엔 거기까지 가기도 그렇고 친구 불러내기엔 하두 재난 문자가 떠서 꼼짝 말라니 주저되고~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능의 이야기를 옥규땜에 공부했네. 그 옛날 왕비들에 비하면 우리 삶이 낫다 생각하고 그냥저냥 이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려보자.
언니 안녕?
일산에서 사실 때는 서오릉이 가까워서 아무래도 자주 가실 기회가 있었겠죠?
벽제를 걷고 온다는 친구분 재미있네요.
메멘토 모리라는 의미인가 보죠?
여기에 써서 그렇지 또 금방 잊어버릴 거예요.
하지만 그날 느꼈던 감정은 남겠지요.
맞아요, 능은 산책하기엔 좋지만 등이 서늘하긴 하죠.
그래도 왕릉은 비현실적이라 좀 나은 편이지만 공동묘지의 느낌은 좀 다르더라고요.
현충원에 가도 그렇고요.
춘선이가 대전 살 때 늘 산책하던 대전 현충원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하면 그런 곳 아닌 곳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죠?
학교도 그랬고, 수많은 아파트 자리도 그렇고요.
우리 방에 오셔서 감사합니다 언니.^^
서오릉은 역사가 있고 공기 좋은
서울 은평구와 고양시 덕양구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중년의 모임은 수다와 걷기에 좋은 곳이야.
여러 번 가 보았지만 백골이 진토 되었을 능의 주인들의 삶을 옥규처럼 애잖하게 생각해 보질 않았어.
100년도 못살 것을 1000년의 근심을 갖고 사는 오늘의 나를 반성한다.
2020년 10호 태풍 '하이선 '의 위력을 보면서 그저 가슴을 쓸어내릴 뿐.
피해 없이 순하게 지나가 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