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에 함께 읽은 책 김훈의 <자전거 여행>
한 시절 느림의 미학이 사람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잖아?
그 덕에 슬로시티라던가 슬로푸드같은 관광상품도 개발되고 말야.
기억이란 참 묘해
전에 테드 창의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서 기억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생각이 나네.
내 경우엔 왜곡된 기억도 많지만(특히 우리 조카와는 같은 경험에 대해 서로 다른 말을 할 때가 많아. 주로 내가 준 상처로 기억하더라.) 앞 뒤 연결없이 어느 한 장면만 생생하게 떠오를 때가 있는데, 왜 그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을까 의아할 때가 있어.
여행도 그래.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기억중엔 전혀 의미를 두지 않았던 시간이나 장소에 대한 것일 경우도 있더라.
짝사랑의 추억 참 좋다.
두근거림과 설레임을 마지막으로 느꼈던게 언제였을라나?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은 민망하게 화끈 달아올랐던 서툴지만 순수했던 그 시절들말야.
가끔 설레임이 없어 편하다는 생각과 함께 더 이상 설레일 것이 없다는 서글픔이 같이 드네.
젊은 날의 추억을 소환해 준 네게 감사!!!
‘자전거여행’이란 제목을 보는 순간 낭만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김훈의 에세이집 『자전거여행』을 읽어보니 낭만이란 단어와는 무관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옥규의 청춘시절 자전거에 대한 추억이 무모하지만 낭만과 모험이 느껴져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내 기억 속에 김훈은 신문기자였다. 기자의 이름을 기억한 것을 보면 아마도 신문에 실린 그의 글이 인상 깊었나보다. 세월이 흘러 김훈이 소설가로 꽤 명성을 얻었지만 소설에 관심이 없어 소설책을 읽을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그의 소설 『남한산성』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인구에 회자되니 그 시대를 연구하던 한사람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읽어 보았다. 소설을 보면 마치 그는 타임머신을 타고 아비규환의 전장으로 가서 때로 왕이 되었다가 때로 신하나 민초가 되기도 했다. 소설가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이 비극의 역사를 현장감 있게 그려냈다. 영화로 제작된 ‘남한산성’ 역시 원작소설의 느낌을 수준 높은 영상미로 보여주었다. 이번에 에세이집 『자전거여행』(2000년) 과『자전거여행∙ 2』(2004년) 두 권을 읽으면서 김훈이 얼마나 꼼꼼하게 현장을 답사하고 폭넓은 지식과 깊은 사유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글 속에 담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사유의 깊이와 높이가 다르니 어떤 대목은 읽어도 그 뜻이 와 닿지 않고 어렵다” “관념과 사유를 내려놓고 그냥 보이는 대로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숙희의 독후감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김훈의 글쓰기에 내 생각을 하나 더 추가한다면 수사적 표현이 많다고 느꼈다. 그런 표현들이 의미의 효과를 더해 주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의미의 효과를 반감시킨다고 나는 생각한다. 관념과 사유 그리고 수사적 표현이 나름 절제된 장으로 『자전거여행』(2000년)「망월동의 봄 - 광주」와 「꽃피는 아이들 - 마암분교」를 꼽고 싶다. 「망월동의 봄 - 광주」에서 아직도 마르지 않은 광주의 피눈물이 보이는 듯 했고, 「꽃피는 아이들 - 마암분교」이야기 속에서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가 연상되기도 했다.
『자전거여행∙ 2』를 읽으면서 나는 두 차례 작가에게 불쾌했다. 하나는 「산하의 흐름에는 경계가 없다 - 중부전선」(65~74쪽)에서 홍수 때 임진강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북한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브래지어에 대해 4페이지(71~74쪽)나 할애해 상세하고도 장황하게 늘어놓은 설명이다. 그는 “그 낡은 브래지어는 나에게 성적 존재로서의 북한 여성을 처음으로 일깨워주었다.” “아군 관측소에 전시된 북한 여성의 낡은 브래지어는 살아서 가슴을 꾸미는 성적인 여자의 체취를 풍긴다.”라고 하며 그 브래지어 사진까지 실었다. 여성속옷을 언급한 것에 뭐 그리 발끈 하냐고 할 사람도 있다. 에세이집 두 권은 물론 소설 속에서 김훈이 여성에 대해 할애한 지면은 인색할 정도로 많지 않다. 그런데 여성 속옷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장황하고 긴 설명과 ‘성적 존재’, ‘성적 체취’를 연결시키는지.....
한 시사주관지와 가진 대담에서 김훈은 남성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페미니즘은 ‘못된 사조’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 여자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안한 거야. 여자를 사랑하고 편하게 해주고. (웃음)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남자가 다 책임지고. 그게 가부장의 자존심이거든.”
“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위하고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 <한겨레 21, 2000.9.27>
김훈의 글과 말에서 느낀 불쾌감은 나만의 것은 아닌가 보다. 김훈이 소설 속에서 묘사한 여성관이나 여성의 은밀한 부분에 대한 표현은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그가 밝힌 답변을 보자.
“내 소설에는 여성이 거의 안 나오거나 나오더라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아요. 여자가 나오면 쓸 수가 없어요. 너무 어려워요. 여자를 생명체로 묘사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어떤 역할과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묘사하는데 나는 매우 서툴러요.” <뉴스1, 2017.6.7>
답변이 교활하다. 그의 성인지 감수성을 보면 오늘날 자칫 미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자전거여행∙ 2』의 「권력화 되지 않은 유통의 풍경 모란시장」(232~245쪽)의 식용견에 관한 내용을 보고 나는 구토증을 느꼈다. 개장국이 혐오식품이란 이유로 보신탕 혹은 영양탕이란 미명으로 바뀐 것은 외세를 의식해서였지만 이제 반려견을 자식처럼 여기는 세상이 도래하여 모란시장에서 펼쳐졌던 잔혹한 식용견 문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그래도 내가 사는 동네에는 아직도 식용견을 사육하고 복날이면 개장수들이 개들을 사간다. 혹자는 개가 소나 돼지 같은 가축과 무엇이 다르냐고 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다만 소나 돼지를 반려동물도 기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제 1000만인이 넘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그 중 절대 다수가 개를 반려동물로 키운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안다. 개들이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김훈이 식용견의 일반적 특징이라며 “식용견의 눈에서는 외계를 경계하는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식용견의 눈빛은 순하고 초점이 분명치 않아서 개가 어느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236쪽)라고 묘사한 내용 보고 나는 불쾌를 넘어서 분노를 느꼈다. 그가 개를 알고 말하는 것일까? 개들이 개장수에게 팔려갈 때 두려움과 공포로 사시나무 떨고 지르는 비명을 들어보았는지? 그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혼절하는 개를 보았는지? 묻고 싶다. 그는 우리에 갇혀 곧 도살당해 사지가 찢겨질 식용견의 가공할 공포를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무심하게 본 것은 아닐까?
『자전거여행』의 시작과 『자전거여행∙ 2』의 마무리를 보면서 나는 작가의 인생관이자 작가의 철학적 사유의 바탕에 불교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의도하고 썼는지 아니면 우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작가는 『자전거여행』의 첫 장을 여수 향일암에서 시작한다. 향일암은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처 중에 하나라고 한다. 관음(관세음)보살은 미륵이 출현하기 전까지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그리고 『자전거여행∙ 2』의 마지막은 장은 안성의 미륵여행으로 마무리한다. 미륵은 현재는 보살이지만 내세에 부처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미래의 부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륵보살이기도 하고 미륵불이기도 하다. 미륵신앙은 미륵보살이 이 세상에 미륵불로 출현하여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는 신앙이다. 끝으로 안성 돌미륵을 보고 제목을「인간의 마을로 내려온 미륵의 손」이라고 명명한 것은 작가가 세상의 구원을 구도하는 마음처럼 보였다.
그리고 광릉 숲 속 연못에서 던진 “이 어인 일인가!”(『자전거여행∙ 2』 「여름 연못의 수련 이 어인일인가!」라는 문구는 작가 자신에게 던진 화두이자 중생에게 던진 화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태어남은 어인 일이고, 수련의 피어남은 어인 일이며, 살아서 눈을 뜨고 수련을 들여다보는 일은 대체 어인 일인가? ” (156쪽)
제목 “이 어인 일인가!”에서는 느낌표를 찍고 본문 “대체 어인 일인가?”에서는 물음표를 찍었으니 이 어인 일인가? 내 질문에 대한 답은 나 스스로 찾아보련다.
“ 여자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안한 거야. 여자를 사랑하고 편하게 해주고. (웃음)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남자가 다 책임지고. 그게 가부장의 자존심이거든.”
“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위하고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 <한겨레 21, 2000.9.27>
이게 사실이라고?
오! 놀랍다.
와우 오프라인에서 독서모임을 했다면 이럴 때 찌찌뽕을 외쳤을거다.
난 북한 여성의 브래지어를 전시한 군에 대해서도 고개가 갸웃했지만 여기에 긴 글을 덧붙인 작가의 사설에도 불쾌한 기분이 들더만 이유가 있었네.
난 김훈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에 그를 응원했었는데, 여성에 대해서는 이런 야비하고 편협한 생각을 가졌었네.
개 엄마인 너와 난 개가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지를 알잖아.
이 사람이 쓴 소설 중에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개>는 개의 입장에서 인간세상을 쓴 책인데, 개를 그토록 오래 관찰하고 이해한 사람의 말이라고 하기에 모란시장 식용견에 대한 묘사는 납득이 안가.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너도 그랬구나'하는 반가움이 너에게 성큼 다가가게 하는구나.
코로나 19로 우울한 사람들이 많다더라. 너무 심오한 질문도 내려놓고 무심히 살자.
숙희야
너의 마음이 잘 드러난 독후감 잘 읽었어.
정말 고마워~
부부가 자전거를 타는 친구가 있는데 늘 이렇게 말하더라.
자전거 타기가 부부가 같이 하기 제일 좋은 운동이래.
왜냐면 하루종일 같이 있어도 아무 말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래^^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탄 거는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
아가페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서클에서 활동을 했는데 아마 봉사 서클이었을 거야.^^
봉사한 기억은 없는데;;(하긴 나중에 거의 대부분 아이들이 그곳에서 야학 교사를 했지)
아무튼 일주일에 한 번을 만난 거 같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생길 때였고, 또 일년 차이 선배가 엄청 어른으로 보여 그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을 때였기도 했지.
그 시절 인생이든 이성이든 이러저러한 우리의 배고픔을 충족시켜 주던 좋은 모임이었어.
짝사랑 대마왕이었던 나는 그 와중에도 정신없이 짝사랑에 빠져 드러내지도 못하고 애꿎은 공책에만 죽어라 좋아하는 선배 이름을 도배하면서 지내기도 했는데...
우리 언니가 내 공책을 보더니 에구.... 이렇게 공책에 구멍내지 말고 차라리 말해라 했던 기억도 난다.
어떻게 됐냐고?
하이고 내용 없다지 뭐.
늘 그랬어 ㅎㅎ
늘 뭔가를 했는데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하나는 기억이 난다.
그것은 자전거 여행.
여행이라기엔 그렇지만 암튼 동인천에서 출발해서 서곳(아마 맞을 거야)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 오는 거였어.
문제는 자전거를 그날 처음 타 봤다는 거지.
남자애들이 자전거는 그냥 타면 되는 거라고 그랬어.
균형만 잡고 발을 구르며 앞으로 가면 된대.
그래서 그렇게 했어.
다른 처음 타 보는 애들도 모두 그렇게 했어.
자전거는 다 어디서 났을까.
어쨌든 결국 모두 다 자전거를 타고 서곳까지 갔어.
먼지 풀풀 나는 길을 따라 위험하게 삐뚤빼뚤거리며 갔다는 거 아니니.
게다가 거기에서 밥도 해 먹었어.
사진도 남아 있는데 내가 쌀을 씻는지 샘물에서 냄비에 물을 담고 웃고 있는 사진이 있더라고.
또 하나의 사진은 자전거를 하나씩 손으로 잡고 먼지와 땀에 절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단체 사진이야.
어떻게 갔다 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그날부터 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지.
스무 살 때 대헌학교 꼭대기에 올라가서 자전거를 탔는데 그 긴 내리막을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죽으려고 작정을 했던 거지.
브레이크가 잘 듣지도 않는 고물 자전거를 타고 그 긴 언덕을 내려올 생각을 하다니.
시작하자마자 큰일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생각보다 경사가 심했고, 예상대로 브레이크가 전혀 말을 듣지 않았어.
선택은 하나.
아래까지 내려가 운이 좋아 차가 오지 않는다면 오른쪽 골목으로 꺾는다,
하나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린다.
그런데 거의 다 내려올 때 쯤 보니 아래에서 트럭이 올라오는 거야.
그래서 자전거에서 뛰어내리며 장렬히 경사길로 엎어지며 미끄러졌지.
그때 남대문에서 7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산 청바지가 다 찢어졌어.
나도 좀 다쳤을 텐데 그건 기억도 안 나고 청바지 아까웠던 기억만 난다.
그때부터 난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이 되었지.
그 이후로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어.
김훈의 문장은 그 결을 따라가기가 힘들 때가 있어.
어떨 때는 한숨이 쉬어질 정도로 가슴을 치기도 하는데, 어떨 땐 그야말로 한숨이 쉬어질 정도로 마음에 닿지 않을 때가 있어.
요즘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이번에 김훈의 글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더라.
가끔 문장에 대한 그의 집요한 집착이 버겁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
요즘 신문에 가끔 나오는 그의 짧은 단상은 정말 좋더라.
사람됨이 훌륭하구나, 이런 사람, 이런 생각 좋다 이렇게 느끼며 읽곤 해.
함께 슬퍼하며.
먼지와 함께 꾸준히!!! 달리던 그의 자전거 길.
아무 사유 없이 그저 달리기만 했어도 좋았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작가의 운명이겠지.
덕분에 자전거 생각을 해 봤다.
책을 읽으면서도 자전거 생각을 많이 했다.
인류가 만들어 낸 물건 중에서 난 자전거가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거든.
다음 책으로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