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의 책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 -정재찬-
키케로는 친구인 아티쿠스를 위해 <노년에 대하여>라는 책을 저술했어.
대화형식으로 쓰인 이 책 첫 머리에 노년의 서글픔을 토로하는 스키피오에게 카토는 자기 안에 훌륭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않으면 노년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모든 시기가 힘겨운 법이라며, 행복의 수단을 자기 안에 가지지 못했기에 사는 게 재미가 없고 불평만 많은 투덜이가 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는데 그 말이 오래 남더라.
그리스인들이 꼽은 즐거운 삶의 조건은 첫째가 건강, 둘째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셋째가 부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모은 재산이었다고 하니 옛 사람이나 오늘날 우리나 삶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는 것들>이란 책은 7가지의 테마를 각각 2꼭지로 엮어 모두 14가지 삶에 대한 생각들을 시를 곁들여 조근조근 이야기하는데 시를 읽는 즐거움이 컸단다.
낯 선 시인들의 시가 가슴에 울림을 준 것은 내 삶의 마디마디에도 그 비슷한 기억과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 시를 어렵게 쓰지 않아 더 좋았어.
나를 유쾌하게 했던 시 중의 하나는 임희구 시인이 쓴 <소주 한 병이 공짜>
막 금주를 결심하고 나섰는데
눈 앞에 보이는 것이
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 병이 공짜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
날은 또 왜 이리 꾸물거리는가
이렇게 싹둑 베어내도 되는 것인가
짧은 순간 만상이 교차한다.
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
끊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한 둘이 어디 그냥 한둘인가
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
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불혹의 뚝심이 이리도 무거워서야
나는 얕고 얕아서 금방 무너질 것이란 걸
저 감자탕 집이 이 세상이
훤히 날 꿰뚫게 보여줘야 한다.
가자, 호락호락하게....
이 정도면 가히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랄 수 있겠으나 나는 이 시인의 얕고 얕음이, 세상에 호락호락함이 참 편하고 좋더라. 이 시인처럼 작심 사흘로 끝나버린 무수한 나의 의지박약에 자책하기 보다 '그래도 괜찮아' 토닥토닥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세렌디피티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어. 관련성을 발견하기 전에는 우연한 사실들의 나열에 불과해 보이지만 관찰을 잘 하면 우연히 얻은 정보들 사이에서 진실이 발견된다는 것!!
그래서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도 뭉클했어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 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1999년 문학동네에 실린 시니까 그 때는 도시락을 싸가던 시절이었어.
나를 돌아보니 나는 늘 시선이 나에게 향해 있었던 것 같아. 닫힌 시선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아. 그래서 이제라도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 보려구.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는 날들이 참 오래 되었다>는 주용일의 시도 몇 번을 되새김질 하며 읽었어.
나무학교에 나오는
세월은 안으로만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한 사람으로 나이들어가기를 꿈꾸어 본다.
작가는 그러더라 어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계속 커가는 사람이 되자고.
8월에 읽을 책은 아직 정하지 못했네.
안산에 사는 명숙이가 지인의 책을 추천(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민혜지음)했는데, 이 책이 도서관에 비치되지 않은 곳이 많아 좀 더 고민해 볼께.
혹 추천할 책 있으면 추천해주면 좋겠다.
책도 좋지만 숙희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듯 쓰는 글이 너무 좋아 큰 위안을 받는다 늘.
고마워 숙희야.
오랫동안 컴퓨터를 켜지 않고 지냈어.
오늘부터 도서관이나 박물관이 문을 연다고 했지?
책을 사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3월 이후 계속 책을 사고 있어.
숙희가 추천해 준 책은 함께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사서 정성껏 읽고 있어.
요즘엔 주위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누구의 말처럼 적진이 포위해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좀 마음에 힘이 없어지는구나.
걷는 시간만이 큰 위로를 줘.
일단 오늘은 이렇게만 쓰고 또 쓸게.
제목: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1장 밥벌이부터,돌봄. 건강.배움.사랑.관계. 7장 소유까지 이 모두가 제목처럼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에 들어가는듯.
첫장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그 안에 내가 들어있더라고~
작가의 나이보다 내 나이가 많으니
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인 것 같았어.
목요일의 행복도 이야기.
요즘 난 목요일에 교구에서 시작한 선교사학교 라는 새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했어.
그 덕에 목요일이 행복하고 신선한 날이 되었단다.
우리 쌍둥이도 목요일마다 발레강습을 시작하고는 목요일을 그렇게 기다린단다.
덕분에 우리 딸도 쌍둥이랑 1주일 지내는 게 덜 힘든가봐.
이 책은 읽는 곳곳에 우리 생활이 직접 연관되어 있어서 잘 읽혀지더라.
그래도 2번은 읽었어.
처음 읽을 때 가장 맘에 닿은 시는 마지막 시야.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여기까지~
난 이 시를 읽고 친구를 찾아가야지 하는 마음보다,
고1 때 돌아가는 우리 아버지가 그리워졌단다.
친정아버지와 함께 1998년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그리워지더라고.
함께 오래 못한 아쉬움이 컸나?
나도 잘 모르겠더라.
주말에 온 딸에게 이 시를 보여주며"너는 어떤 느낌이니?"하니 걔는 또 나하고 다르더라고.
자기는 친구들에게 항상 먼저 연락하는 편이래.
어떤 친구가 자기를 찾고 생각해줄까?
그런 친구들이 누구일까? 생각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큰 장에서는 "공부"와 꿈에 마음에 끌렸어.
두 번째 읽으며 시와 함께 정리해보았어.
내일 목요일 공부로 복습하느라 다음에 이어쓸께.
숙희야~~
고마워♥
옥규야!
네 글보고 나도 적어본거야.
어서 만나서 나눔을 해야지...
우리 선교사학교 나눔은 카톡으로 해서 저녁 내내 카톡으로~ㅎㅎㅎ
평생 활자 중독자처럼 책을 끼고 살아온 내가
요즘은 아예 책을 외면하고 사는 바람에 독후감은 쓸 수가 없어.
내 머릿속에 가득 찼던 생각들을 버리러 다니느라 바빴다고 핑계를 대도 되겠지?
택도 없는 핑계 같지만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니까.
한번 마음 먹으면 꾸준히 밀고 나가는 뚝심있는 사람이 나는 좋더라.
설령 아무런 소득이 없어 보여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이
생각보다 엄청 힘들고 내공이 필요하다는 것 알아.
그래서 나는 숙희가 존경스럽고 정말 좋다.
독서클럽 대장님 ~
뒤늦게 길바람이 들어 다리 밑에서 노느라 책도 못 읽었지만
그대가 나눠주는 사유와 깨우침에 깊이 감동하고 감사하고 있다오.
봄에 엄마 입원해 있던 병실엔 다섯명의 환자가 있었어.
근데 옆 자리 환자가 힘없는 소리로 계속 우는거야. 딸이 나지막한 소리로 우는 엄마를 자꾸 나무라고...
나중에 살짝보니 환자의 나이는 72세, 말기 암 환우였는데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무의미해 요양원으로 이송이 결정되었다 하더라.
우는 환자의 마음도 이해되고 그런 엄마를 견디지 못해 하는 딸 마음도 모르는 바는 아니겠기에 옆에서 듣고 있기가 힘들었단다.
또 다른 환자는 91세 할머니로 간병하는 딸도 예순이 훌쩍 넘은 딸이었는데 거기도 요양원으로 이송이 결정났어. 딸이 엄마하고 나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만 들어보니 살면서 좋았던 일들을 추억하며 엄마의 인생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이었는가를 상기시키는 것이었어.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위했는지, 그거 기억 나?'하는 식의 이어지는 이야기들.
마지막에 딸이 손주를 봐 줘야 하는 자신의 현실상황을 말하며 끝까지 엄마를 돌봐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할머니는 다 안다며 괜찮다고 딸을 다독이고.....
주위에 아픈 사람이 많아 힘들어하는 옥규의 맘이 짠하다.
남의 아픔도 내 아픔처럼 아파하는 옥규를 곁에 둔 벗들이 옥규에게 많이 고마워하고 힘을 얻을거야.
옥규야, 걷는게 네게 위로가 된다면 그냥 걷는 것만 해도 돼.
희재 말처럼
머리에 채울 때가 있었다면 비워야 할 때도 필요하니까.....
정숙이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2번을 읽었구나.
같은 시를 두고 네 느낌과 딸의 느낌이 달랐다는게 재밌다.
나도 젊었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시에 대한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랐을 것 같아.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를 나도 너처럼 짠한 마음으로 읽었단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등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는 불 빛아래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밤 새 목련지는 소릴 듣고 있을 정경이
떠올라 마음 아팠단다.
사는게 뭐라고 '나중에...'로 변명하며 미뤄온 일들이 나이든 우리에겐 너무 많잖아.
희재야
그냥 책을 읽을 때보다 독후감을 쓰려니 더 찬찬히 글을 읽게 되는 것이
내겐 소득이라면 소득!!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지 못한다고 미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숙희가 이끄는 온라인 독서모임을 보면
난 ' 한알의 밀알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라는 생각이 들어.
고맙다.
숙희와 옥규와 희재와 정숙이의 글만 읽어도 좋다.
곡선의 힘 -서안나-
남한산성을 내려오다
곡선으로 휘어진 길을 만난다.
차가 커브를 도는 동안
세상이 한쪽으로 허물어지고
풍경도 중심을 놓아 버린다.
나는 나에게 한참 멀어져있다.
나는 곡선과 격렬하게 싸운다.
나를 붙잡으려
내가 쏟아진다.
커브 길을 돌아
나에게 되돌아오는
몇 초 동안
나의 슬픈 배후까지
슬쩍 열어젖히는
부드러운
곡선의 힘
289쪽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 덕에 삶의 굽이굽이를 넘고 내 자신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마치 나선을 돌듯, 뒤뚱뒤뚱 돌고 도는 듯했지만, 그럴 때마다 반복해 제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단계 한단계 성장해 올라왔던 것이죠.
그걸 우리는 다 올라와서야, 혹은 다 내려와서야, 내려다보고 돌아보고 나서야 깨닫고,
아름다웠노라 말하는 것 아닐까요.
인생에 직진은 없습니다.
에둘러간 곡선이 그리도 고맙고 값진 겁니다.
시와 함께 이 글이 맘에 들었단다.
지금 "아름다웠노라" 말할 수 있음이 너무 행복하다!
그 굽이굽이를 무사히 넘긴 건 역시 사랑의 힘이겠지!
5장 사랑에서
사랑은 서로 길들이고 인내하고 생각하며 책임져야 하는 것이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하는 거라는 말이 나와.
훌륭한 시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네.
요즘 나에게는 하느님 사랑이 그렇단다.
지난해 독서모임을 시작할 무렵부터 "삶의 의미"를 묵상하고 있었어.
마침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독서모임을 하며 좋은 시간이 되었단다.
특히 왜관 피정에서는 좋은 기도 주제로 희망을 안고 왔단다.
가톨릭신자인 나는 신앙에서 삶의 의미의 답을 찾고
그 사랑을 알아가기 시작했어.
얼마전부터 "선교사학교"라고 교리 .선교 공부를 시작했단다.
손주들에게 하느님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꿈이 있었거든.
이번 기회에 교리교육을 열심히 배워 쉽고 재미있게 애기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려한단다.
나에게 기회를 주시면 성당에서 봉사할 수 있으면 더욱 은총이고~~
어쨋든 지금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더딘 슬픔
황동규
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 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무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마저 놓치지 않으려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게
더디게 가는 봄.
올봄 엄마가 천국에 가셨다.
엄마를 쉽게 보내드릴 것 같았다. 처음엔.
30년도 더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집을 다 마련해 놓았으니 이사를 가자’며 엄마를 데리러 왔다고 말씀하셨다는 동생의 꿈 얘기를 들었을 때,
엄마가 아버지를 따라 천국에 가셨구나하는 확신이 들어 많이 울지도 않았다.
마지막 몇 달 음식을 드시지 못한 것이 많이 안타까웠지만 내 할 도리를 어느 정도 한 것도 같고 장녀로서의 의무감에서 놓여나는 안도감도 있어 모든 장례절차가 순조롭기만을 간구했다.
내가 결혼 초부터 써오는 가계부엔 금전 출납 뿐만 아니라 그날에 있었던 행사나 생각과 느낌을 적어 놓은 메모가 있다. 요즘 그 가계부를 보아야 할 일이 생겼다. 그 기록들을 살펴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동안 어느 정도 엄마를 이해했으리라 자부하며 살았었는데 그 행간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엄마의 바쁘고 고단한 삶과 외로움이 묻어나오는 것이었다.
장례식에서도 잘 울지 않았던 울음이 쏟아졌다.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도 새삼스럽고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 구절에도 눈물이 난다.
엄마를 보내드리고 아주 더디게 이제야 슬픔이 차오른다.
은하의 글을 읽으며 오랫만에 엄마를 떠올려 보았다. 42년전 마당에서 물 한바가지 뜨시다 쓰러져 그 길로 숨 한번 몰아쉬고 돌아가신 엄마. 나는 믿어지지 않는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에 살 수 없을 거 같았다. 밥 한번 내 손으로 차려드리지 못 하고, 옷 한벌, 신발 한 컬레. 사드리지 못했는데... 그런데 다~~잊고 살다가 큰아이 결혼식 가는 찻속에서 엄마가 애썼다 해주실 거 같았어. 은하가 아직 많이 엄마 생각이 나겠지. 고운 눈물 흘릴 때 엄마가 손 잡아 주시고 계실거야. 눈물이 나더라
시는 독특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순간 확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다고 할까?
시를 늘 읽지는 않지만 읽고 있는 산문에서 얼핏 스치는 시 한 구절이나
맘 잡고 읽는 시집에서 가슴을 쿵하고 치는 문구를 볼 때
정말 시는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시를 한참 읽다 보면, 그리고 그 시의 강한 힘을 느끼다 보면 일상을 시로 표현하는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바로 오늘 아침
차게 먹기 싫어 그릇에 미리 담아놓은 자두를 본다.
비가 오고 있어
그 물기 좀 머금었을까
좀 싱거울지도 몰라
완벽한 모양에 색이로구나
한입 깨물어 제대로 된 맛이 입에 들어올 때
미안하구나
모자란 사람이 이렇게 제대로 된 걸 씹어먹다니
ㅎㅎ 역시 시를 읽는 즐거움이네.
윤경옥이 그리운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시를 우리 단톡방에 올렸지?
술래잡기 윤경옥
엄마에게
야단맞은 날
나는
철이네 굴뚝 옆에 숨는다.
아궁이의 따스한 불빛
하늘에 별이 총총하도록
엄마는 나를 찾지 못한다.
언제나
나를 찾는 술래는
일마치고 돌아온 아버지
하늘의 별빛보다
아궁이 불빛보다 더 따스한
술래가 된
우리 아버지
숙희 덕분에 좋은 책 읽으며 글 산책 잘 했어.
착한 동네 오빠 같은 작가가 순하고도 솔직한 얘기와 더불어 시를 안내해 주니
정말 편안하고 즐겁더구나.
고마워 숙희야~~
다음에는 김훈의 자전거여행 1, 2권이라고?
2권은 벌써 빌렸어.
1권은 아직 없더라.
길이야 아무 데나 있는 거니 1권이든 2권이든 무슨 상관이겠어?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으며 그 문체에 살짝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글은 어떨지 모르겠다.
요즘 신문에 짧은 글을 쓰는데 인생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
숙희 이야기처럼 잘 늙어가는 것도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잘 읽을게~~
롱펠로우의 일화
하루는 친구가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롱펠로에게 말했다.
'이보게, 친구. 오랫만이군. 그런데 자네는 여전히 젊군 그래. 그 비결이 뭔가?'
롱펠로가 답했다.
'저 나무를 보게나. 이제는 늙은 나무지. 그러나 저렇게 꽃이 피고 열매도 맺는다네. 그것이 가능한건 그래뵈도 저 나무가 매일 조금이라도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도 그렇다네. 나이가 들었어도 매일매일 성장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다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연을 본받고 순리에 순응하며 겸손하다.
이 세상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병에 걸리는 것을 피할 수는 없으나 걷기를 통해 오늘을 건강하게 사는 것은 얼마든 가능하다.
할 수 있는 것들도 다 하지 못하고 사는데
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느라 오늘을 놓치며 사는 어리석음은 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