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12기 단톡방에 걸음 수와 꽃 사진을 올리며 인순이가 해당화 향기에 대해 말했다.
-해당화 향기가 너무 좋아. 향수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
그 이야기를 듣고 해당화 꽃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향기도 또한.
인순이가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거야.
해당화 나무를 검색해서 구매했다.
크기와 모양을 몰라 대충 여섯 주 정도 신청했는데.
얼마 후에 가야금이 들었나 싶은 상자가 배달되어 왔고, 너무 여러 가지로 된 말라비틀어지고 가느다란 해당화가 내 손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내버려 두었는지 뿌리가 완전 바싹 말라 엉켜 있었다.
정성을 다해 땅을 깊이 파고 물을 부어 두었다가 심었다.
그리고 며칠 후 강화 둘레길을 걸으며 해당화를 실컷 보았다.
갯벌과 맞붙어 있는 길에 온통 피어있던 해당화.
그 은은하고 순순한 향기.
그런데 어제 매일 습관처럼 꽃밭(이라기보담은 뭐;; 암튼)을 바라보는데,
그 가느다란 해당화 가지 끝에 앗! 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어머나! 자세히 보니 두 개나.
너는 비료는 안 주고 맨날 바라보기만 하냐? 그래도 난 꽃을 피운다는 듯.
오! 미안해. 고마워~~
심하다 싶을 정도로 꽃이나 나무 이름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이들수록 식물이 주는 기쁨과 위안이 점점 커진다.
몇 년간 농사랄 것도 없지만 어쨌든 씨를 뿌려 이파리가 나오고 모양을 갖춰가는 것들을 보며 짜릿한 느낌을 경험해 봤다.
식용 식물과 달리 꽃이나 나무는 무용해서 더 좋다.
아니 무용한 건 아니지.
그 아름다운 맵시나 향기.
마치 아기를 보듯 웃음이 절로 나는 꽃의 어여쁨이라니....
우연히 이소영이라는 분의 <식물 산책>이라는 책을 보고, 우연히 이비에스에서 목소리만 들었던 임이랑이라는 분의 <아무튼, 식물>이라는 책을 보았다.
<식물 산책>은 식물 세밀화를(엄밀하게 말하면 보태니컬 아트) 그리는 이소영 작가가
식물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많은 준비를 한 다음 상세하게, 말하자면 식물 해부도를 그리는 과정을 설명한 책이다.
원예학을 전공했고 그림은 그린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교수의 권유로 그리게 되었는데 그리다 보니 식물이 더 좋아졌고, 자기의 적성과도 맞았고, 그리다 보니 기능도 훌륭해진 것이었다.
그야말로 식물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기반으로 아주 담담하고 겸손하게 자기의 작업을 설명하고 그림을 보여 주며 식물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식물은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의 것을 움직이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뿌리내린 그 환경에 순응하고 긴 시간 동안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맞춰 스스로
변화한다. 그 변화의 결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 식물의 형태를 기록한다는 건 단지 겉모습을 그리는 게 아니라, 종의 역사, 다시 말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일일 것이다.-
작가의 말을 붙여 본다.
-“식물학자인 교수님이 새로운 종을 발견하셔서 식물세밀화를 요청하셨어요.
저의 식물세밀화가 담긴 논문이 미국학회에 발표되고, 새로운 종에 대한 검증 기간이 끝나고 2년 뒤 ‘속단아재비’라는 이름이 붙여졌어요. 이름이 없는 새로운 식물을 제가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고,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졌어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진달래’도 처음에는 이름이 없는 식물이었을 텐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이름이 생긴 것처럼 식물을 알리고, 기록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참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식물을 그린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식물세밀화를 그리고 싶다면 가장 먼저 식물에 대해 잘 알아야 해요. 나에게 맞는 식물도감을 하나 사서 공원이나 식물원 등에서 찾아보고, 관찰해 보는 것도 추천해요. 요즘은 식물원이나 수목원, 평생교육원에서 식물을 그리는 수업이 많아서 참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은퇴하신 분들이 취미 생활로 가까운 곳에서 찾은 식물, 내가 키우는 식물들을 굳이 식물세밀화처럼 그리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림을 그려서 나만의 식물도감으로 기록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독립출판물로 출간해도 좋고, 전시회 같은 걸 열어도 좋을 것 같아요. 또한, 식물세밀화가는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인만큼 열정을 가지고 임하시면 좋을것 같아요. 식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다면 식물세밀화로서 역량을 키워서 직업으로도 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식물>의 작가 임이랑은 어느 시기에 심한 불안 증세에 시달렸다.
심장이 뛰고 땀이 흐르고 사람이 무섭고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상담을 받아 보라는 권유에 긍정하기는 했지만 상담을 위해서는 또 누군가를
만나야 하기에 그것조차 너무 힘들어 가까이 하지 못했다.
그때 자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생장하는 식물을 우연히 몇 개 기르게 되었고, 그 속에서 너무나 큰 위로를 받으며 불안 증세가 완화되어감을 느낀다.
그리고는 <어마어마한 식물과의 삶>이 시작된다.
목소리도 좋은 이분의 팟캐스트(팟빵) 방송이 있다.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팟캐스트 방송 <식물 수다>를 듣는 것도 참 재밌다.
산책할 때 들으면 아주 좋다.
팟빵 앱을 깔고 식물 수다 이렇게 치면 나온다.
호불호가 있지만 ^^ 난 참 재밌게 읽었다.
꽃을 좋아하는 우리 친구들은 아마 좋아할 것 같아서 추천해 본다.
-나의 작고 어여쁜 해당화.
시작은 미약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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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후배의 글이야.
언제 글이 올라오나 기다리기도 하지.
읽어 봐요.-
해당화
박 찬 정(14기)
머뭇거리기만 하고 말을 못 한다. 꺾꽂이 할 가장귀 하나 얻고 싶어서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열린 대문으로 안마당을 기웃거린다.
올 봄에도 때를 놓칠 성 싶다.
그 집 안마당에는 봄부터 연이어 꽃이 핀다.
이른 봄 수선화가 피었다 지고 나면 튜립이 피고, 연산홍이 질 무렵 철쭉이 흐드러진다.
늦봄 넝쿨 장미가 피었다 지고 난 뒤 낮은 담장 한쪽에 해당화가 피는 걸 몇 해 전부터
눈여겨보았다.
올해도 훔쳐보는 것으로 끝인가 보다.
해당화 한 그루 심고 싶다는 말에 남편은 가시가 많아서 마당에 심기에 적당치 않다고
일축했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해당화 한 그루 심고 싶은 아주 오래된 기억을 남편이 알 리 만무하다.
이태 전 칠월 일본 북단 왓카나이와 그 주위 섬 례분도와 이시리도를 여행했다.
북위 45도와 46도 사이에 걸려 있는 왓카나이 구릉지에는 해당화가 무리지어 피어있다.
오호츠크해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거센 바람 탓에 키가 크지 못 하고 서로 엉켜 자란다.
바람이 사정없이 흔들어대도 해당화 홑꽃잎은 파르르 떨기만 할 뿐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랜 세월 그 환경에 놓이면 감당하면서 살게 되는 모양이다.
그곳 토산품 코너에서 해당화 씨앗 한 봉지를 샀다.
마당 한 쪽에 심었으나 싹 틔우지 못 했다.
잘 키워 꽃 피면 왓카나이에서 거제도에 건너 온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그려 보려던 꿈은 이루지 못 했다.
나는 해당화 한 그루 심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하고 많은 꽃 중에 유별나게 해당화를 좋아 하거나 꽃과 나무 가꾸는 일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해당화 한 그루 심을 땅이 이 나이 되어서 마련된 것도 아니다.
아버지 마음과 형편을 이해하는 나이가 된 것뿐이다.
열여섯 살 먹던 해 기억이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 언젠가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의 한가지였다.
그때 아버지의 연세보다 지금 내 나이가 훨씬 많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한 달 후 식목일이다.
학교에서는 해마다 식목일에 나무 심기 행사를 한다.
운동장과 이웃 학교 경계 언덕에 심는다.
학교에서 준비하는 묘목 외에도 개인적으로 묘목을 가져 와 기념식수 하기도 한다.
학교에 기념식수 하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식목일 아침, 우리 집에 있는 해당화 나무 밑동에서 포기 가름을 해서
가지는 짤막하게 잘라내고 신문에 둘둘 말아 주셨다.
우리 집 마당에는 해당화 외에도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돌배나무, 철쭉,
장미나무도 서너 그루 있었는데 하필 가시 막대기 같은 해당화 나무를 주시는지 불만스러웠다.
차마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리지 못 하고 가지고 갔다.
그 당시는 고교 입시가 있던 때였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당시 일류고교다.
신입생의 기념식수는 선민의식의 표현이며 자긍심을 심어주는데 큰 의미를 두었다.
신입생 모두가 묘목을 가져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묘목은 대부분 화원에서 사 온 관상수다.
뿌리 쪽을 동그스름하게 새끼줄로 감았거나 마포로 싸여있다.
신문으로 둘둘 말아 노끈으로 질끈 묶은 나의 해당화와는 겉보기부터 차이가 났다.
안 가지고 온 애들도 많은데 괜히 가져왔다고 후회했다.
언덕 끄트머리에 큰 그네가 있고 이웃학교와 경계담장이 있다.
그 후미진 곳에 구덩이를 파고 심었다.
심은 나무에 ㅇㅇㅇㅇ년 ㅇㅇㅇ 기념식수라고 팻말을 박아 놓는데 나는 그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심은 나무가 볼품없고 부끄러워서 나무심기가 빨리 끝나기만 바랬다.
그리고 해당화를 심은 일조차 잊었다.
다음해 유월, 우연히 그 근처에 갔다가 후미진 곳에 화사한 분홍빛 꽃이 핀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 보니 지난 해 내가 심은 해당화였다.
그 척박한 곳에서 살아 있는 것만도 대견한데 두어 송이 꽃을 피우다니.
나는 가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해당화 나무를 덥석 끌어안았다.
볼품없는 묘목을 주셨다고 아버지를 원망한 일, 심고 돌보기는커녕 잊고 있었던 일들이
눈물 나도록 미안했다.
생물 선생님을 모시고 가서 보여드리고 꽃이 진 후 옮겨 심은 곳이 교사 뒤편 화단 끝이다.
몇 년 후 학교에 가보았더니 해당화 둥치가 굵어지고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있었다.
꽃이 피면 얼마나 화사할까 궁금하지만 나는 지금 너무 멀리 와 있다.
상상으로 떠올려 본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차별 없이 섬세하게 이해하는 아버지가 열여섯 살 먹은 딸에게
짤막한 가시 막대기처럼 묘목을 해 주신 까닭은 무엇일까?
장미나 철쭉에서 포기가름을 해주실 수도 있는데 굳이 해당화 나무를 주신 까닭도 궁금하다.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데 이미 먼 길 가신지 오래다.
내 나름대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해당화는 말이다. 까다롭지 않단다.
척박한 땅이나 바람에도 잘 견디지. 예전에는 해안가 마을의 방풍림으로 심었단다.
해당화꽃은 한번 자지러지게 폈다가 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피고 지길 여러 번 하는구나.
잔가시가 있어서 아무나 함부로 대하지 않고 빨갛게 익은 열매는 사람 몸에 좋은 약성도 있으니 좀 좋으냐? 그리고 말이다. 곁가지가 많으면 새로운 땅에 뿌리 내리기에 힘겹단다.
낯선 땅 적응하려면 제 몸집을 줄여야 하거든.
네가 세상 살아봐도 그렇지 않더냐?’
저도 찬정이 글을 기다려요
쫄깃 쫄깃한 맛나는 글이요~ 임이랑님은 이름에서 밭이랑이 떠올라요 식물수다와 밭이랑 임이랑님 식물수다라는 제목만 들어도 평온해져요
젊은 날에는 사는게 바빠 나의 학창시절도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나이드니 문득 그 시절이 그립고 뒤돌아보게 되고 친구들도 찾게 되더라.
내 기억 속 모교는 원형건물, 분수가, 줄장미, 옥상에서 보던 노을, 그리고 내가 심었던 운동장 가의 나의 나무......
식목일에 나무를 심고 각자의 나무에 명찰을 달고 돌보게 하던 것은 참 좋은 교육이었어.
나중에 학교에 가 보니 그리워했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낯 선 건물이 서먹하기만 하더라.
찬정후배 덕에 나의 나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3년 내내 나의 나무였는데 학교 졸업 후 한 번도 찾아보지 못했던 그 나무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해당화를 보면 빛깔과 향기와 함께 찬정 아버님의 말씀까지 생각날거야.
추억을 함께 나눠준 후배에게 감사!!!
옥규야~
어쩜 해당화 꽃 색이 저렇게 예쁘냐.
그렇게 향기가 좋다고?
그럼 해당화꽃 향수도 있을텐데~ 아직 없음 특허신청해서 향수를 만들어볼까나?~ㅎ
난 옛날엔 샤넬 5쓰다가 그다음 플리쳐 쓰다가 요즘은 이터니티 향수를 쓰는데
해당화로 향수를 만들면 어떨지 궁금하네.
그 나무를 구해와서 심는 너의 삶의 열정도 어여쁘다.
그림 그려본 적 없다는 작가는 또 어쩜 식물 세밀화를 저렇게 예쁘게 그렸을까?
잠재의식 속의 나를 발견해서 표현한다는것도 엄청난 삶의 기쁨일꺼야.
은퇴후의 삶을 보람있게 잘 보내는거 같아 보기 좋다.
옥규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