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이 되면 12기 단톡에 친구들이 그날 걸었던 걸음 수가 적힌 앱 사진을 올린다.

그 앱은 걸었을 때 그 걸음 수에 따라 밥을 주는 모임이라든지, 동물을 도와주는 모임이라든지 여러 비슷한 단체에 기부를 하게 한다.

친구들은 그 기부가 좋아서 더 신나게 걷는다.


친구들의 걸음 수를 보면서, 올려 준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봄을 공유한다.

친구들이 내 걸음을 기뻐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힘을 내기도 한다.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오늘은 게으름을 피워야지 누워 있다가도 아이고 나도 걸어야겠다, 혹은 아무리 걸어도 칠천 보밖에 안 되네 그만 걸을까 하다가도 그래도 만 보 채워야지 하고 불끈 힘을 내기도 한다.


그 전에는 걷는 일을 힘들어하고 좀 두려워했던 친구들이 걷기 시작하면서 가볍게 만 보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자신감을 얻고 보람도 느끼는 모습을 보는 일이 즐겁다.


또 이곳 저곳에 사는 친구들이 올리는 경치나 꽃 사진을 보는 즐거움이 무엇보다 좋다.

꽃 이름을 몰라 꽃을 올리고 이거 뭐니? 하면 곧 꽃 박사들이 나타나 거짓말처럼 설명을 해 준다.

그래서 요즘엔 걸을 때 더 정다워 보이는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얘야, 내가 네 이름 안단다 뭐 그런.


거의 2월부터 시작된 격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격리는 더 지속될 것 같다.

많이 좋아진다 해도 적당한 거리두기와 생활방역은 이어져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마스크를 안 쓰면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 들 정도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버스나 지하철에 탈 수 없는 이런 상황은 지금은 당연하고 자연스럽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참 특별한 일로 기억될 것 같다.


먹고 만나고 움직여야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이런 눈에 보이지 않으며 위협하는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난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히며 시작한 방역 정책이라든지 대응,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한국의 의료보험이나, 두려움 속에서도 성실을 다하는 의료진이며(국민의 의료비를 국가가 지불하는 시스템에서의 의료진은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형태의 의료진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컴퓨터 왕국의 신속한 신경망이며, 소수의 그러나 너무나 위험했던 이탈자는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모든 힘든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자가격리를 하고 거리두기를 지속하는 대단한 국민들이며.

이런 것들이 이런 불확실한 상황을 버텨갈 수 있게 해 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5월 말 현재 글쎄 한 사람일지는 모르겠지만 자기의 동선을 감추고 일상을 유지하려고 했던 이 때문에 53일 전의 위험한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되었다.

만남은 다시 멀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공공에 대한 도덕은 부딪치며 큰 혼란을 낳는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생명이라는 주제 앞에서 간단히 정리되기도 한다.


이로 인한 경제적 난관은 또 언제까지 이어질런지....

택시 기사도 하고 결혼식 사진사도 하고 이런 이야기들이 그냥 기사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살금살금 열리던 학교도 다시 폐쇄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은 있었지만 하나의 상징으로 읽었던 <페스트>가 SF가 아니었어를 절감하는 요즈음.


그 속에서 우리는 걷고 있다.

<걸어도 걸어도>가 아니라 <걸으니 걸으니>가 되기를 바라며.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