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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간단한 산책을 제외하고 집에 칩거한 지 두 달째다.

실은 12월 말에 다녀 온 캄보디아행 비행기에서 걸린 감기로 1월부터 꼼짝 않고

집에 있었으니 세 달째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정기적으로 나가는 일도 없는 나로서도 좀 지친다는 느낌이 든다.


1월 한달은 실컷 앓았고, 그 다음은 집에서 이것저것 하면서 별로 동요되지 않고 지내왔다.

도울 일도 없는데 이것 하나 못 하랴 하는 마음이었다.

또 나 때문에 민폐가 된다면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이기 때문에 기꺼이.

근데 요즘 뭐랄까, 누구를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뭔가 이 손발이 묶인 것 같은 분위기가 좀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제 연락한 어느 친구는 무척 지친 목소리로 좀 견디기가 어렵네요. 했다.

그 친구는 이른 나이에 명예 퇴직하고 아주 적극적으로 이런 저런 공부 모임에 나가고 있었는데,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만 하냐고 했더니 불안해서 그런가 봐요 했다.

그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으니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으며 걱정이 됐다.

어디 그 친구뿐이랴.


생각할 때 이렇게 시간이 많이 주어지면 책도 여유있게 읽고, 여러가지 일도 진득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물론 그러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이 모아지지 않고 책이 잘 읽히질 않는다.

서랍이며 장롱이며 광에 신발장까지 정리하고, 언제 먹을지도 모르는 저장식품을 만들고,

시간 걸리는 음식도 만들며 사이사이 산책도 했다.

쉬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지쳐서 누운 적도 여러 번.


아주 오래 전 무슨 비행기가 날아왔다고 갑자기 경계 경보가 울린 적이 있었다.

그때 언니네 식구들은 수영장에 가 있었고 난 그 집에 혼자 있었는데 .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이런 세상에 전쟁이 나면 숨으나 안 숨으나 다 죽을 텐데 도망가서 뭘 하겠으며,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뭘 해야 하지?

나는 주사 놓을 줄도 모르고 음식도 못 하고(그땐^^) 뭐 도움이 될 일이 전혀 없네.

이게 뭐람. 입만 살아서.....

그때 그런 생각을 하며 많이 놀랬다. 나의 실생활의 무력함에.


지금 나의 무력함에 그런 것도 한몫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고위험군에 즉 요즘 말하는 기저질환자에 속하니 얼찐거리는 게 오히려 민폐에 속하게 되었다.


요즘 일할 땐 팟캐스트로 소설을 듣거나 음악 이야기 같은 걸 듣는데, 갑자기 아이들에게 동화라도 읽어 주는 일을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가 들어 내가 이야기하는 걸.

그리고는 곧 풀이 죽었다.

이런 풀죽음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아니 사실 벌써 좀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게 그리 싫지도 않다.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지만, 계획했던 제법 긴 여행이 예정대로 진행되었다면 나는 지금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신나는 여행담을 사진과 함께 올리겠지.

취소라고? 2주 미리 떠나 이런 상황을 실감하지 못했던, 그래서 그 여행을 혼자(어쨌든) 다녀 오신 분이 이렇게 변해버린 상황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진짜 한 치 앞도 못 보는 게 사람이구나 하고.

싸게 예약한 비행기표와 숙소 등의 티켓은 전액 환불 변경이 안되는 상품이라 봄날 꽃잎처럼 날아갔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전혀 아깝지 않다.

같이 가기로 했던 분이 잘 다녀 온 것만 기쁠 뿐이다.


이 상황을 보며 많은 사람들처럼 느끼는 바 크고 감동하는 바도 크다.

미련할 만큼 정면 대응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

투명성이라는 말이 이렇게 신선하게 들리는 요즘.

피한다고 될 일인가 어디.


7 년째 투병하는 친구가 있다. 엽렵하게.

그 오랫동안 격리되었던 그 외로운 시간이 어땠을까.

아픔이 뼈에 새겨진다.

그에 비하면 이런 건 일도 아니다.


친구들

지금까지 잘 견딘 만큼 힘내서 또 따로 잘 지내 보자.

이렇게 만나지 못 하니까 우리 모임이 정말 얼마나 귀한 축복이었나 이런 생각하지?

손 자주 씻고.

나도 이거 정리하고 손 씻어야지.

그저 우리는 우리끼리 만나서 서로 힘을 주고 자신감도 얻고 그래야겠어.^^

서로 칭찬하다가 얘 이젠 헤어질 때가 됐다 하면서 말이지.

잘 지내~~


어설프게나마 기록을 해 두고 싶어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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